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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A Oct 14. 2024

고슴도치

Acting like a hedge hog

아야!
내가 안 했어.

튀어나온 돌부리에 툭 걸린 새끼발가락이 아파 R이 외마디 소리를 외친다.

앞서가던 Q가 반사적으로 답한다




Q는 그 일이 일어났던 해에 12살이었다고 했다.

라면에 밥 말아먹었다는 얘기를 할 때와 같은 표정을 하고 있어, 건성으로 듣다 흠칫 놀랐다. 이미 앞에 뱉어진 문장들 반절은 날려먹고 마지막 문장을 들었을 뿐인데도 그랬다. 차마 다시 말해달라고 할 수가 없어 Q가 뱉은 문장들이 떨어진 곳으로 찬찬히 돌아가보았다.


돌아가는 머릿속을 들킬까 눈알조차 살살 굴렸던 R의 12살에는 소각장에서 타고 있는 고무장갑을 건져내서, 수지피혁잠바에 던지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가 궁금했던 날과, 이제 막 자라기 시작한 가슴, 미처 브래지어를 장만하지 못한 채, 운동회를 준비한답시고 소매 없는 운동복을 입고 학교운동장을 달리던 날, 남자아이들이 수군거리는 이유를 알지 못했던 날들 정도가 있을 뿐이다.


R은 돌아가서도 찾지 못하고 놓친 문장들을 듣기 위해 Q가 먼저 말하고 싶어 하기를 기다려서 한 번에 하나씩 물었다.


그 이야기 속의 Q는 법정에 섰다. 검은 옷 입은 사람들이, 아직 데려갈 때가 안된 한 아이의 입을 저승사자들처럼 바라보고 있다. Q의 엄마도 같은 공간 안에 있다.

증인은 그날 거기에 있었나요?
네.
증인은 그 현장을 목격했나요?
네.
강제로 행해진 것처럼 보였나요?
......

12살의 증인 Q는 살아남을 적당한 진실과 적당한 거짓말을 알지 못했다.

판단할 수 없는 것을 판단할 수 있는 척하지 못했다.

Q는 생채기가 없는데도 먹어야 했던 강력한, 엄마가 평생 먹어온 진통제가 하루는 자기 때문이라고 믿었고, 또 다른 날엔 자기 때문일리가 없다고 믿었다. 

그러는 사이 하루에 하나씩, 피부 아래로 뾰족한 고슴도치의 털을 하나씩 세웠다.


어쩔 수 없었어.
너라도 그랬을 거야.
내 잘못이 아니야.
어쩔 수 있었을까?
너는 달랐을까?
내 잘못일까?


벽에 던진 질문은 언제나 다시 튕겨져 돌아왔다.


Q는 없는 듯이 사는 방법을 택했다. 그 방법이란 것이, 가능하면 완전하게 살아서, 누구에게도 불려 가지 않고, 누구의 비난도 미움도 사지 않는 방법으로 사는 것이었다. 하지만 Q뿐만 아니라 누구라도, 탓하기 좋아하고, 비난하고 불평하기 좋아하는 이들을 피해서 살 방법이 지구에는 없다. 지구를 다 돌아보지 못했으니 확정할 수는 없으나 적어도 아직은 그걸 아는 사람을 만나본 바가 없다.

그러하니 Q도 별 도리가 없다.


그래서 피부 아래로 하나씩 세워온 뾰족한 고슴도치의 털이 시도 때도 없이 올라온다.

R의 발에 걸린 돌부리가 Q와는 아무 관계가 없을지라도.


R은 Q에게 네 잘못이 아니라는 말을 시도 때도 없이 해주는 것 말고는 아직 다른 방법을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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