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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A Nov 27. 2024

딱 두 잔

영화 'My Old Ass'를 보고 문득...

주말 저녁, 아이가 잠이 들면 집 앞 편의점에 가서 매실주 한 병을 사 왔다.  좀 쓰자 싶은 날엔 병 안에 금가루 비슷한 것이 들어있는 것으로 사 와서 호사를 누릴 때도 있었다.


입이 찮다고 자꾸 말하니까, 눈은 앞으로 쏟으려눈물을 뒤로 삼킨다. 그렇게 뒤로 흐른 눈물은 모여서 꾸덕해지고, 마치 변비처럼 마음을 더부룩하게 한다. 그럴 때 관장하듯 매실주 잔이면 딱 좋았다.


얼마 전, 요즘 아마존 프라임에서 반응 좋다는 영화 'My Old Ass'를 보았. 달짝 씁쓰드리한 그날 매실주 맛이 목구멍에서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열 여덟살의 주인공'Elliot'을 찾아온 서른 아홉 버전의 'Elliot'이 스무 살 어린 자신에게 이렇게 말한다.

The only thing you can't get back is time.

바보처럼, 무모하게, 자신 있게, 과감하게, 너답게 살아.


열여덟 살, 'Elliot'의 남자친구 'Chad'그녀에게 이렇게 말한다.

You know, to think that there was a time when you were out biking around with your friends, pretending you were getting chased by zombies, you were just all dirty and sweaty and having the best time and then... you went home and parked your bike in the garage and went to bed, not realizing that that was the last time you were ever going to get to do that.

그땐 바보 같았는지 몰라도, 돌아보면 그때였기에 할 수 있었던 일들이야.

지나고 나서야,
그때였기에 할 수 있었던
일들임을 깨닫는다고...


에이, 이 나이에 뭘.
그때가 좋았지 뭐.
내가 그걸 어떻게 해.

이러다가, 10년 뒤에 누가 이렇게 묻는다면?

실컷 해보았는가?
원 없이 해보았는가?
망설임없이 해보았는가?
겁 없이 해보았는가?

스물에, 서른에 그리고 마흔...

아니, 그때도 못했다면 지금이라도.


서른 살의 내가 매실주와 함께 쏟아낸 외로움과 고단함이 이 영화로 인해 떠오른 이유는, 서른아홉의 'Elliot'이 열여덟의 'Elliot'에게 한 것처럼 지금의 내가 그날의 나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이 생겼기 때문이다.


매실주 두 잔에 온 몸이 붉어진 걸, 한탄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괜찮아.
아무도 너의 수고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사람들을 원망하는 것도 괜찮아.
나만 제일 힘든것 같다고 투정하고 푸념하는 것도 괜찮아.
그때였기에,
괜찮아.
잘하고 있어, 너답게.
그리고 의심하지 마.
다 괜찮을 거라는
누군가의 말을.


장기하의 '해'가 글마침에 어울릴 것 같아 붙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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