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oonA Sep 16. 2024

들이댐, 글이 됨

초등 6학년 때 좋아하는 남자아이있었다. 첫사랑이었지 싶다. 뽀얀 피부에 축 처진 선한 눈이 좋았다. 내가 그 아이와 짝을 해야만 하는 이유를 정성껏 쓴 일기_당시 과제_를 제출했고, 담임선생님은 일기에 적힌 내 마음을 훔쳐보신(?) 소감을 달아주신 후. 거기에 그치지 않고 나의 '들이댐' 작전이 성공할 수 있도록 애써주셨다. 교실 한쪽에 쪼르륵 앉은 남자아이들을 향해 달려가 원하는 짝을 낚아채는 다소 엽기적인 방식의 짝꿍 정하기가 선생님 노력의 여러 산물들 중 하나였다. 100m 달리기 기록이 우리 반에서 제일 좋았던 나를 염두한. 이러하니 떤 아이들에겐 고역인 일기 쓰기가 나에게는 소원을 말하는 요술램프였다. 기회를 빌어 유구한 역사의 '들이댐'의 출발이 있게 해 주신 담임 선생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중학교 땐, 예쁜 편지지에 편지를 정말 많이 썼다. 바로 옆, 혹은 바로 뒤에 있는 친구들인데도 지를 썼다. 당시 용돈의 상당 부분이 편지지를 사는 데 쓰였다. 지금도 당시 친구들로부터 받은 편지들을 보관하고 있는데 가끔 꺼내어 읽으면 교실이 눈앞에 펼쳐진다. 점심시간은 아직도 2교시나 남았지만, 쉬는 시간에 도시락을 일찌감치 먹은 아이들 덕에 교실 가득한 어묵볶음과 콩자반 냄새도 맡을 수 있다. 새로 산 편지지 위에 편지를 쓸 때만큼은 좀 전 역사시간에 쓰나미처럼 덮쳐오던 졸음이 떨쳐진다. 사각사각, 뽀드득뽀드득 '오늘 우리 같이 걸어서 집에 갈래?'라는 캘리그래피처럼 예쁘게 적힌 문장 위에 손을 얹으면 그 친구의 표정도 그려진다. 그때 우리의 최대 관심이자 두려움 친구를 사귀고 우정을 유지하것이 분명하다. 수십 통의 편지들은 쑥스럽다하면서도, 부끄럽다하면서도 이렇게 서로에게 '들이대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너를 잃을까 두려워.
나는 혼자 남을까 두려워.

이 시점에서 아쉬운 것은 내가 보낸 편지들을 볼 수가 없다는 점. 


고등학교에 입학해서는 스치기만 해도 터지는 여드름만큼이나 터지는 감수성으로 편지 쓰기는 더욱 활발해졌고, 교내 문학 동아리 활동도 시작했다. 백일장을 주최한 곳의 입맛에 맞는 주제들, 예를 들면 '무궁화' '서울'과 같이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 없는 주제들을 받아 들고도 곧잘 상도 받고 장학금도 받았다. 전교회장선거에 선거참모를 자원해서 선거 유세 문구를 쓰기도 했다. 이번엔 전교생에게 '들이댐'이다. 희망 전공으로 문예창작과를 꿈꾸기도 했다. 하지만 그 꿈은 입에 풀칠이 어렵다는 주변의 조언과 기울어가는 집안 형편에 사치스러운 꿈이 되어 '나중에' 리스트로 미루어졌다.


비록은 전공이 글쓰기는 아니었어도 대학교 때도 글쓰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가입했던 봉사 동아리실에는 회원 모두가 공유하는 방명록이 있었다. 전공이 다른 회원들이 드나드는 시간이 달라 마주치기 어렵더라도 방명록으로 서로 안부를 묻고 챙기자는 의미로 시작된 짧은 글쓰기. 이내 나는 그것을 내가 좋아하던 그에게 마음을 전달하는 도구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내가 쓰면 그림을 잘 그렸던 그는 그림으로 답했다. 잊고 지낸 그 설렘이 떠오른다. 좁은 집에 둘 곳 없어 다 버리고 없는 초등학교 때 일기장처럼, 그 방명록도 졸업한지 십수년이 되어 다시 들춰볼 방법이 없다. 어제 일도 가물가물한 기억력에 그때  내가 뭐라고 썼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동아리방을 들어서면 제일 먼저 방명록을 집어 들며 두근거리는 마음은 생생하다.


대학을 졸업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해야할 일 체크리스트에 목록지우듯이 Check! Check! Check! 인생을 당시 유행하던 플랭클린 다이어리 쓰듯이 하면 되는 줄 알았지 뭔가. 밥 지을 때 마지막에 꼭 필요한 뜸 들이기, 요가 마무리에 꼭 있어야 하는 송장자세 같은 건 모두 사치였다. 

그러던 20대에 마침 스마트폰이라는 게 생기고, 싸이월드가 생기고, 페이스북이 생겼다. 종잇장을 이어 붙여가며 쓰던 일기장, 바로 뒤에 앉아있는 친구에게 쓰던 정성스런 편지, 한나절을 기다려야 답을 볼 수 있는 동아리방의 방명록이 주던 낭만을 뒤로하고 글을 쓰면 즉각 들이대지는 신세계가 펼쳐졌다.


'들이댐'의 결과는 초침이 넘어가기도 전에 볼 수 있었고, 여기저기에 쏘아 올린 글들이 사방으로 흩어졌고, 글의 길이도 점점 짧아지고 산만해졌다. 그러다, 언젠가부터 구글 캘린더에 일정을 기록하는 일과 수업일지를 적는 것 외에는 글을 쓸 시간이 없을 만큼 바빠지기 시작했다.

'아자아자', '파이팅', '할 수 있다.' '너무 힘들다.', '나만 이런가.', '할 수 있나'  

이런 말들이 주를 이룬 포스팅들이 난무했다.


글을 읽어도 자기 개발서 아니면 '아들은 왜?'와 같은 육아서들, 글을 써도 푸념과 넋두리로 가득했던 30대를 나는 습작 인생의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다시 볼 수 없는 그전의 글들과는 달리  당시의 글들은 광활한 인터넷의 바다에 부유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 그리고 이곳.

축축하게 곰팡이 진, 잃어버린 10년의 마음을 애리조나 볕에 널었다. 잠시 한눈파는 사이 쭈글쭈글 푸석해져 버렸다. 분무기로 물을 뿌려 공을 들여 곱게 펴고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오래 걸렸다. 마음을 축소하고 외면하는 오래된 습관이 마지막까지 애를 먹였다.


수업일지의 귀퉁이에도 마음이 있고,

아이의 선생님께 전하는 노트에도 마음이 있고, 이혼공증서에도 마음이 있다.

쉴새없이 굴하지 않고 들이대고 있는 내가 있다. 들이대는 자의 글을 듣고 읽어주는 누군가가 있다고 믿는 내 마음이 있다.


들이대면 글이 되고

글이 되면 들이대진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