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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A Sep 24. 2024

난닝구

여름이 한창이었다.

4살쯤이던 나는 시골 조부모님 에서 한달정도 지내게 되었다.

할머니, 고모와 함께 갔던 계곡 나들이에서 내가 흰색 무지 민소매 티셔츠_한마디로 난닝구_입고 실개천에서 풍덩거리는 사진이 있다. 솜털 가득한 흰 피부에, 눈덩이가 하도 소복해서 웃으면 눈이 안보이는, 국그릇 엎어놓고 자른듯한 바가지 머리를 한, 내가 봐도 귀엽고 작은 내가 있다.

'아들이에요?'

지나가는 사람들이 이렇게 묻기 시작한다. 


엄마는 내가 시골집만 다녀오면 다른 아이가 되어서 돌아왔다고 회상하셨다. 그을린 얼굴에, 거칠어진 손등에, 짧게 자른 더벅머리에... 그리고 한동안

 '아들이에요?'

라는 질문을 심심치 않게 들었다고 하셨다.


중학교를 갔더니, 남학생, 여학생 구별없이 상고머리를 하는게 교칙이었다. 그렇게 해서 남자애들과 여자애들이 구별이 어려운 수준을 만들어, 해결하고픈 문제들이 얼마나 많이 해결되었는지 궁금하다. 머리를 짧게 하고 힘을 못썼다는 삼손의 이야기를 너무 믿었던걸까... 좌우지간  무자비한 교칙 덕에 나는 그때도,

'아들이에요?'

라는 질문을 많이 들었다.


토실함을 감추고 싶어서 옷을 항상 넉넉한 사이즈로 입고 다니고, 머리는 상고머리에, 목소리는 허스키한 나를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젊은 엄마들은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는 아이한테 망설임없이 '형이야' 라고 다. 그러면 아이는 나를 '형'이라고 불렀다. 구구절절 설명할 시간도 없이 엘리베이터문이 열렸다.


시장을 가면, 시장 상인들이 나를 보고,

아들이구나~ 큰아들이구나~

라고 했다. 그러면 엄마는 손을 허공에 휘저으며 '아니에요, 딸이에요.' 그러셨다. 그러면 파를 봉지에 구겨 담던 아줌마의 눈빛이 마구 흔들렸다. 미안함인지 민망함인지, 둘다였겠지. 그러면 나는 그냥 웃었다. 그 다음 말이 더 두려웠다. 민망함에 아무말 대잔치하는 분들도 많았기 때문이다.


그 중 가장 충격적인 기억으로 남아있는건 감기기운으로 병원진료를 받으러 갔을 때였다. 잠시 앉아 있는데 진료실에 들어온 의사, 망설임없이 상의를 훌렁 젖혀서 청진기를 데려다 내가 여자인것을 알고 멈칫했던 그때였다. 웃어야 하나, 울어야하나 아주 잠깐 고민은 했다. 버럭 화라도 내야하나 괜찮다 해야하나. 화를 잘 못내는, 좋은게 좋은거다 하던 나는 의사선생님도 놀랬겠다싶은 생각에 그냥 웃었다. 의사잖아. 길 가던 남자 아니잖아. 그랬다.




미국에서 이메일을 쓸 때, 자기 이름 옆에 He/She/They를 표시해두는 사람들을 간혹 본다. 다양한 국적, 출신의 사람들이 모여있는 나라라서 이름만 봐서는 성별을 구별할 수 없으니 그렇다고 이해했다. 그런데 어느날 자신을 'They'로 표시하는 이가 있었다. 또, 일주일 전까지 'She'였는데 'He' 바뀐 이도 있었.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청소년들에게 'He/She/they'스스로 선택해서 표시할 수 있도록 해서 찬반 논쟁이 거세게 일기. 얼마 전에는 백신접종 예약을 하려고 받은 질문지에 생물학적 성별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봤다. 이게 뭘 묻는건가 싶었다. 후천적인 선택말고 태어날 때 부여받은 생물학적 성별무엇이었냐는 질문이라고 했다. 이 질문에는 '후천적 너의 선택을 존중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고 이해했다. 부여받은 생물학적 성별과 나의 선택을 분리하는 이 신박함이라니.


아들이에요?

이 질문과 생물학적 성별을 묻는 질문사이의 거리는 얼마나 될까?


It's the same for women not being thin enough or men not being rich enough. It's just what our culture would have you believe. Don't believe it.

From 'Tuesdays with Mor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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