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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캬닥이 Mar 03. 2022

초보 운전 숙련기 -2

재작년 봄에 초보 운전 숙련기라는 글을 썼다. 근교로 이사 가는 상황에 대비해 등하굣길에 미리 운전을 배우는 이야기였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운전을 놓지 않았다면 더 이상 초보운전이 주제인 글도 없었을 텐데. 안타깝게도 주차를 하다가 옆 칸에 주차된 벤츠의 번호판을 아래로 살짝 내리고 말았고, 18년 동안 한 번도 오른 적 없었던 시부모님의 SM5 보험료를 최초로 올린 충격에 운전을 그만두었다.

 

당장은 운전을 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집과 학교는 자전거로 20분 걸리는 곳이었다. 졸업하고 찾은 직장은 3분에 한 대씩 있는 파란 버스를 타고 30분이면 갈 수 있었다. 날이 좋을 때는 자전거를 탔다. 한강을 끼고 자전거로 출근할 때면 내 인생 벌써 성공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흘러갔으니 여전히 성공한 인생이어야 했다. 서울 내 출근길이 경기도에서 서울로 바뀔 것도 3년 전부터 염두한 일이었다.


출근길은 버틸만했다. 종점에서는 언제 타도 앉을 수 있었다. 퇴근길은 그렇지 않았다. 종착지가 종점인 사람에게 자리를 양보해주는 상냥한 투시 능력자가 서울에 있을 리 없다. 회사와 집 사이에는 한 번의 환승과 27개의 역이 있었다. 슬슬 퇴근길 경험치가 쌓여서 종점 아홉 역 전에는 앉을자리가 생기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날은 이미 18역을 서서 왔기 때문에 빈자리가 생겨도 반갑지 않았다. 잠깐의 인생 성공을 느끼게 해 주었던 자전거는 집과 역 사이를 연결하는 교통수단으로 전락했다. 퇴근길 그 고생을 하고서 또 20분을 걸어 집에 오고 싶지 않았다. 비가 오든 눈이 오든 자전거를 탔다. 싸구려 헬멧을 핸들에 걸어놓고 옆 앞에 묶어두었다. 하루에 열 시간 넘게 바람을 맞아서 그런지 하루에 2km를 타는데도 2주가 지나면 삐걱거렸다. 주말마다 체인을 닦고 기름칠을 새로 하면서도 자전거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어느 금요일이었다. 업무가 끝났는데도 퇴근이 하기 싫었다. 한 시간쯤 하염없이 직장 주변을 돌아다녔다. 집에는 가야 한다고 스스로를 타일렀다. 몸을 지하철로 밀어 넣으니 그 시간에는 앉을자리가 있었다. 자리에 앉아 내내 중고차를 찾았다. 그날 저녁에는 자전거를 닦으며 중고차 유튜브를 들었다.


그러니 일주일도 안 되어 차를 산 것은 충동구매가 아니었다. 충동구매는 즐겁기 위한 소비에나 어울리는 말이다. 즐거움을 위한 소비를 할 때는 가격에 비례한 숙고가 필요하다. 고통을 피하기 위한 소비에 숙고는 필요 없다. 여력이 되는 이상 고민이 낭비다.


다음 주에 인생 첫 차를 샀다. 쏘울로 골랐다. 2008년 피터 슈라이어가 기아에 왔을 때부터 내 드림카는 쏘울이었다. 처음 골랐던 오래된 쏘울이 검색 끝에 젊은 쏘울로 바뀌기는 했다. 이건 충동구매가 맞다. 길에 있는 쏘울마다 눈여겨보던 내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색상의 쏘울이라면 마땅히 내가 끌어야 했다.


월 주차권을 끊고 출근만 하면 되었다. 문제는 '초보 운전 숙련기' 1편을 쓴 이후로 운전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집에서 회사는 왕복 50km였다. 재작년 연습하던 10분 거리 등하굣길과는 도로의 종류마저 달랐다. 2년 만에 다시 운전대를 잡았다. 차의 크기와 차선을 유지하는 감은 남아있었다. 차선을 바꾸고 교통 신호를 읽는 법을 되새겼다. 이제는 내비게이션 보는 방법과 고속 주행을 익히고 있다. 전용 도로에서 속도는 상대적임을 깨달았다. 흐름에 방해되지 않으면 규정 속도 근처가 안전하다고 타이른다. 이성이 두려움을 이기는 만큼만 액셀을 밟는다.


다행이라면 이것도 새로운 기술을 익히는 일이라는 것이다. 하다 보면 늘고, 늘면 기쁘다. 기술과 더불어 머릿속 지도도 촘촘해졌다. 내 머릿속 서울 지도는 7년 간 지하철 노선도였다. 자전거를 타며 한강과 개천을 추가했다. 서울을 떠나고서야 자동차 전용 도로를 그렸다. 슬슬 외곽 순환이니 강변북로이니 하는 단어가 귀를 타고 흘러나가지 않는다.


혼자 출근할 수 있기까지는 글 한두 편 쓸 소재가 쌓일 것이다. 운전할 때마다 크고 작은 사달이 나니까. 초보 운전 숙련기는 적어도 3편은 나올 것이다. 그래도 그 정도 사건을 겪고 나면 근교 출퇴근이 일상인 직장인이 될 것이다. 이따금 운전하다 소동이 일어나도 글 쓸 생각도 없이 잊어버리는 일상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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