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를 마주하는 집단의 이야기
생명과학 실험을 두 어절로 요약하면 '액체 옮기기'다. 무릇 생명 현상이란 물속에서 일어나는 일, 입에 침이 마르면 맛을 느끼지 못하는 것도 같은 원리이다. 실험실에서 액체를 옮길 때는 특수한 도구를 쓴다. 양이 1mL보다 적으면 마이크로 파이펫을 쓰고, mL 단위에서는 파이펫 에이드를 이용한다. 이보다도 양이 많으면 다른 사람들 안 보는 틈에 병이나 튜브 째로 옮기기도 한다.
액체를 옮기는 일은 생명과학 연구자의 기본 소양이다. 배울 때는 불안해도 서너 달 지나면 익숙해진다. 한 번 손에 익으면 의식하지 않아도 알아서 손이 움직인다. 밥을 먹기 위한 젓가락질과 비슷한 일이다.
학부를 마치고 어느 연구소에 입사했다. 다닌 지 한 달도 안 됐을 때, 회의 시간에 사람들 앞에서 3분 스피치를 하라고 했다. 주제는 자유였다. 부서원의 발표 역량을 키우겠다고 만든, 회의마다 한 명씩 돌아기며 말하는 자리였다. 신입사원은 보통 새로 맡은 일이나 회사를 다닌 소감을 말한다고 했다. 무슨 내용을 할지 고민했다. 스피치 자리에서 파이펫 에이드 다루기가 어려우니 파이펫 에이드 교육을 시켜달라는 이야기를 했다.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우습게 보였을까 싶지만, 당시에는 파이펫 에이드가 힘들다 못해 무서웠다. 대학교 전공이 생명공학인데도 생명과학 실험을 제대로 한 적이 없었다. 학부에 실험 과목이 있었지만 대부분 조교가 시범을 보이는 것으로 끝났고, 실습을 해도 조별로 진행해서 무언가를 직접 할 기회는 별로 없었다. 한 학기 배운 내용도 방학 지나면 잊어버리는데, 한두 번 실험 경험으로 기술이 쌓일 리 없었다.
마침 내가 들어간 회사는 대학생들에게는 '마이크로 파이펫 시험을 칠 정도로 혹독한 회사'로 악명이 높은 곳이었다. 그런 곳인데도 파이펫 에이드에 대해서는 아무 지침이 없었다. 파이펫 에이드란 그만큼 쉬운 도구였다. 눈금 달린 대롱에 액체를 담는 일이니, 눈이 달렸으면 헷갈릴 리 없다고 여겼을 것이다. 그러나 실험을 해본 적 없던 나는 제대로 눈금을 보는 법도 몰랐다.
연습용 실험도 한두 번이었다. 매일 5시간 이상 하는 실험이 모두 실전이었다. 기다란 벤치 앞에 고참 연구원과 나란히 앉아있으면 쉬운 손짓도 어긋났다. 실험 특성상 파이펫 에이드를 젓가락 다루듯 써야 했다. 내 파이펫 에이드에서는 액체가 뚝뚝 새고 파이펫 주둥이는 플라스크 밖으로 삐져나갔다.
3분 동안 '중요한 실험에 학부 졸업생을 뽑은 건 너희들이니, 손해를 줄이려면 기초 중의 기초라도 알려주고 단련해달라'는 주제로 발표를 했다. 부서에 '파이펫 에이드 문제'가 화두로 올라온 순간이었다. 반전이 있었다. 조사를 해보니 연구소에 있는 파이펫 에이드의 상태가 좋지 않았다. 몇 개는 배터리가 오래된 탓에 충전을 해도 힘이 달렸다. 파이펫 에이드에서 액체가 뚝뚝 새어 나온 건 신입사원의 서투름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 일화가 자기 계발서에 나왔다면, 이야기를 끝내고 교훈을 꺼낼 차례가 되었을 터이다. 문제란 정의되기 전까지는 존재하지 않는 것. 조직의 문제를 발굴하기 위해서는 이제 막 진입한 초심자에게 자유롭게 발언할 기회를 주어라. 개인이라면 일을 처음 시작할 때에는 모든 잘못을 자신의 미숙함에 돌리지만 말고 구조적으로 보아야 한다, 따위 말이다. 그러나 현실은 자기 계발서 챕터처럼 깔끔하게 끝나지 않는다.
부서장은 관리의 대가로 명성이 높은 사람이었다. 그는 파이펫 에이드의 배터리를 바꾸는 데에서 멈추지 않았다. 파이펫 에이드마다 번호를 달았다. 파이펫 에이드마다 배터리 교체 기록지가 생겼다. 파이펫 에이드 배터리가 몇 시간 만에 떨어지는지 알아내기 위해 누군가는 파이펫 에이드의 스위치를 테이프로 묶어 하루 종일 지잉지잉 소리를 들으며 일을 했다. 내가 부서를 떠날 즈음 부서장은 '모두가 액체 눈금을 보는 기준이 다를 수 있다'는 깨달음까지 다다랐다. 그리하여 모든 실험의 표준화 절차를 수립하려 했다. 한 사람이 실험하는 동안 두 명 이상 감독하며 옮기는 액체 양이 정확한지 확인하고, 기계와 기계 사이 사람이 실험하는 시간을 최대한 동일하게 맞추고자 했다. 야심 찬 표준화 절차가 완성되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신입사원이었던 나는 다만 선배 사원들의 일이 늘어난 데 죄책감을 느꼈다. 안 그래도 일이 많은 회사인데, 별 일도 아닌 걸로 입을 놀리다 존재하지 않았던 문제를 만든 셈이었다. 이후에는 문제가 있어도 최대한 내 선에서 일을 끝냈다. 해가 지나 새로운 신입사원이 들어왔다. 후배 사원이 실험실 배치에 문제가 있다고 말했을 때, 나는 말해봐야 일만 커지니 조용히 있으라고 대답했다. 이후로도 여러 가지 사건이 있었다. 봐줄 수 없는 문제를 넘기는 나와 별 것도 아닌 문제를 키우는 연구소, 어느 쪽도 보기 싫어 회사를 나왔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산다고, 퇴사 후 대학원에 들어왔다. 먼지 가득한 실험대와 제자리 없는 파이펫 에이드가 그렇게 지리멸렬하게 보일 수 없었다. 학생들은 파이펫 에이드를 잘 다루게 되는 서너 달만에 회사를 다니던 나만큼이나 문제를 무시하는 데 익숙해졌다. 한 달에 한 번은 실험실 청소를 하자는 의견이 다수결로 부결되었을 때, 3년 전 회사도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부서장은 훌륭한 중간관리자였다. 연구실 대다수 사람들은 졸업 후 회사를 갈 터였다.
현실은 복잡하다. 일화 하나로는 교훈을 찾기도, 잘잘못을 따지기도 어렵다. 집단의 혁신과 개인의 귀찮음 사이 어딘가에는 선을 그어야 한다. 어떤 집단인지에 따라 선의 위치는 달라진다. 비단 실험하는 곳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