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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캬닥이 Aug 15. 2019

과학 꿈나무가 실험실에서 배울 것

실험실 인턴 활동을 하면서도 한 구석이 불안하다면

오늘도 과학 꿈나무는 과학자를 꿈꾸며 지식을 쌓는다. 방학 과학 캠프든 그 유명한 하이탑이든, 무언가가 이들 가슴속에 과학의 씨앗을 심었다. 마음속에 과학이라는 싹이 움튼 이들에게 대학은 학문을 하기 위해 가는 곳이다. 대학에 들어온 과학 꿈나무는 수강 신청을 할 때마다 마음이 설렌다. 듣고 싶은 강의가 너무 많다 보니 시간표 한가운데를 차지한 전공 필수 교과목이 원망스럽다. 진로 고민이라고는 국내 대학원에 갈지, 유학을 갈지 정도다. 


꿈나무 주변에는 앙상한 과학 고목이 있다. 대학원에 들어간 선배들이다. 몇 년 전에는 이들도 과학 꿈나무였다. 고목의 꿈은 낙엽이 되어 떨어진 지 오래다. 고목들은 꿈나무에게 대학원에 올 생각일랑 말라고 자조한다. 어째서 과학 꿈나무들 중 열매 맺는 이는 소수요, 낙엽 지고 앙상해진 나무는 숲을 이룰까.


과학 꿈나무는 이런저런 연구실을 알아보다 인턴 활동을 하기로 한다. 방학 때나 수업이 적은 한 학기에 연구실에 접촉해 연구를 체험하는 것이다. 연구실이 생각했던 바와 달랐다면 다른 연구실을 찾아가면 된다. 연구실 입장에서도 입학하려는 학생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하니 입학을 묻는 이들에게 반드시 시키는 과정이다. 꿈나무는 몇 개월 인턴 활동을 즐겁게 끝낸다. 마침내 교수도, 랩 사람들도, 실험 주제도 좋은 연구실을 찾아냈다. 과학 꿈나무가 꽃을 피워내는 여정이 시작할 참이다. 꿈나무는 열매를 맺을 수 있을까? 



인턴을 하더라도 연구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완전히 알기는 불가능하다. 연구실 인턴으로 하는 일은 단순 작업이 대부분이다. 실험실 체험을 하는 대가로 대학원생 논문 읽을 시간을 벌어주는 셈이다. 생물학 실험실 인턴은 병을 씻고 파이펫 팁을 꽂거나 간단한 용액을 섞는다. 5분짜리 설명으로 한 시간은 채울 일들이다. 생물학 연구실만 이렇지도 않다. 심리학과 친구의 인턴 경험을 들은 적 있다. 노인의 신경 활동을 측정하는 연구실이었다. 인턴의 일이란 전화번호부를 훑으며 노인들에게 이번에는 꼭 오시라 또박또박 전화를 하는 것이었다.


과학 꿈나무는 고작 잡일을 하려고 여기까지 왔나 회의가 들기도 한다. 훌륭한 과학자도 가장 잡스런 일에서 출발했음을 기억하며 생각을 지운다. 지금은 사람들이 어떤 실험을 하는지가 궁금할 뿐이다. 보통 대학원생은 자기 프로젝트를 설명하길 좋아한다. 꿈나무는 무럭무럭 자라는 나무의 말을 들으며 자신이 어떤 실험을 할지 상상해본다. 운이 좋은 꿈나무라면 간단한 실험을 해볼 수 있다. 실험을 배우며 꿈나무는 선택을 확신한다.

그러나 인턴 활동만으로는 연구가 무엇인지 결코 알 수 없다. 지금 해보는 실험이 연구자 체질을 판별해주지는 않는다. 지금은 실험을 '해볼' 뿐이지, 대학원에 입학해 자기 연구 주제 안에서 목적에 맞는 실험을 '하기' 까지는 아직 멀었다. 


분자생물학에는 대장균에서 플라스미드 DNA를 추출하는 실험이 있다. DNA를 준비해서(DNA preparation) DNA 프렙이다. DNA를 얻는 양에 따라 미니 프렙부터 기가 프렙까지 달리 부른다. 대학원생 실험 몇 번 보면 자신도 할 수 있을 성싶다. 프로토콜에 따라 시료에 시약을 넣고 원심분리기를 돌리니 이 정도면 대학원에 들어와서 실험을 해도 되겠다 생각이 든다. 그러나 프렙은 연구 과정 중 일부일 뿐이다.


실험실에 흔히 있는 원심분리기


먼저 연구자는 연구에 필요한 DNA를 설계한다. 이후 DNA를 실제로 플라스미드로 조립하는 서브클로닝(subcloning)을 한다. 조립한 DNA를 대량 생산해 세포 형질 전환으로 집어넣는다. DNA가 세포 속에서 단백질을 만든다. 그 단백질이 어떤 기능을 하는지 관찰한다. 관찰하는 방법은 단백질의 기능에 따라 달라진다. 이제 시작이라는 말로 문단을 마치겠다. 프렙은 이중 DNA를 생산하는 단계에 해당한다.


단백질이 예측한 효과를 내지 않으면 프렙을 포함한 모든 일을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 마음속에는 이것이 정말 될까 싶은 생각만 맴돈다. 시간이 지날수록 다른 연구실에서 이미 끝낸 작업은 아닐까, 실험 다 하고 논문을 쓰고 있지는 않을까 불안감만 깊어진다. 이것을 해도 누가 알아줄까, 세상에 어떻게 도움이 될까 매몰된 시간이 원망스럽기도 하다. 


인턴은 그 과정 중 일부를 떼어 해 보았을 뿐이다. 실험이 되지 않아 좌절하며 수없이 같은 작업을 하는 그 활동을 한 것은 아니다. 해본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남궁석 교수의 <매드 사이언티스트가 되는 법>에는 과학자가 필요한 능력이 "문제를 순식간에 해결하는 능력" 보다도 "쉽게 풀리지 않는 문제에 좌절하지 않고 오랫동안 붙잡는 집요함"이라고 말한다. 자신이 좌절을 이겨내고 끈기 있게 하나만을 추구하는 사람인지는 직접 하기 전에는 모른다. 과정이 잘 맞는 사람도 있다. 내 주변에도 힘든 순간을 이겨내 박수를 받으며 연구실을 나간 사람들이 있다. 순간을 넘어서면 새로운 세계가 보인다고 한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는 과학자들은 다 그 순간을 넘었다.


꿈나무는 인턴을 해야 한다. 쉬운 실험을 하나씩 해내며 자신의 꿈에 확신을 더하기 위해서는 아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반복 작업을 묵묵히 수행하되 그것을 평생 해도 괜찮을지 자신에게 물어볼 때이다. 깔끔한 실험 결과는 논문에서도 볼 수 있으니 지금은 대학원생이 실패한 실험과 부정적인 데이터를 바라봐야 한다. 지금은 변변한 논문 하나도 쓰지 못한 그 대학원생이야말로 좌절에 굴복하지 않고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사람이며 꿈나무가 상상만 했던 현실을 몸으로 부딪치는 사람이다. 이들이 맺은 열매가 모여 과학 지식이 쌓이고 인류 문명이 발전했다. 그 과정에 동참할 각오가 되어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교과서와 논문이 말하지 않는 과학 활동이 실험실에 있다. 실패를 견디는 나무만이 비로소 인류에게 새로운 지식이라는 열매를 내어다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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