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작가는 지금도 연필로 글을 쓴다고 한다. 연필로 쓰는 것은 컴퓨터 자판을 두드려 쓰는 것과 어떻게 다를까?
연필로 쓰는 일은 글 쓰는 일에 대한 작가의 외경을 드러낸다. 아마도 언론인이었던 부친과 자신의 경험이 영향을 미쳤을 테지만, 연필로 쓰면 글자 하나도 허투루 쓰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연필 글씨는 지우고 고치는 일이 컴퓨터 문서처럼 수월하지 않으므로 애초에 단어를 고르고 또 고르며 쓰게 된다.
연필로 한 자 한 자 눌러쓰는 김훈의 글쓰기를 생각하니 단어와 문장을 쉽게 탄생시키고 죽여 버릴 수 있는 나의 컴퓨터 글쓰기가 왜 피상성을 벗어나기 어려운지 알 것 같다. 하지만 선조들이 사용했던 ‘붓으로 쓰기’에 비하면 연필로 쓰기는 한없이 간편한 방법이기에 작가 역시 자신의 글쓰기가 너무 쉽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뜬금없이 그의 ‘연필’을 묵상하면서 나는 글쓰기의 엄숙함을 생각한다. 사실 책을 읽는 동안은 글의 내용에만 집중하고 있었는데 독후감을 쓰려고 컴퓨터를 켜니 그의 ‘연필’이 생각났다. 연필은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필기도구이지만 연필로 쓴 글은 가볍지 않다. 나는 새삼스럽게 연필로 글을 쓸 수는 없지만 김훈의 연필을 의식한다면 조금은 무거운 글쓰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글쓰기는 엄숙한 일이다
이제 책의 내용으로 돌아가자. 나는 <늙기의 즐거움>이라는 제목으로 쓰인 서문에서 작가가 막걸리와 소주, 와인과 위스키에 대해 묘사한 것을 읽고 감탄해버렸다. 술을 먹지 못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도 각각의 알코올음료가 가진 개성과 매력을 이토록 아름답게 서술할 수 있는 관찰력과 필력이 놀라웠다. 게다가 지금은 늙고 병들어서 이 모든 것을 즐기지 못한다는 맺음말에서는 허탈하게 웃는 작가의 얼굴이 떠올라 나도 함께 웃었다. 몰입하여 글을 쓴 후에 자기 글을 관조하며 웃어넘기는 그 유머 감각이 썩 마음에 들었다. 이제는 멀어진 젊은 날의 기호품을 생각하며 늙음을 슬퍼하거나 화를 내는 대신 웃을 수 있는 그의 담백함이 좋았다. 그리고 내가 더 나이들어 할 수 있는 일이 훨씬 줄어든 후에도 좋았던 시절을 회상하며 웃을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했구나 싶어 기분이 좋았다.
1부는 인생의 밤으로 저물어가는 노작가의 느긋한 소회로 읽혔으나, <태풍 전망대에서>에서부터 시작하여 <적대하는 언어들>, <‘세월호’는 지금도 기울어져 있다>에서는 그의 빛나는 사유가 다시 엿보이기 시작했다. 『칼의 노래』와 『남한산성』, 『하얼빈』을 써낸 대가의 번뜩이는 눈빛이 보였다.
2부는 제목부터가 반가웠다. ‘글과 밥’이라는 제목에서 나는 김훈의 작가론 또는 글쓰기 이론을 기대했다. 하지만 그는 작가의 자격이나 역할을 말하는 대신 “나는 책을 자꾸 읽어서 어쩌자는 것인가”라며 독서와 글쓰기의 무력함에 대해 말했다.
하지만 “길이여, 책 속에서 뛰쳐나와 세상으로 뻗어라”라는 말이나 “자신의 말이 삶에 닿아있는지를 돌아보아야 한다”라는 말, “삶을 향해서, 시대와 사물을 향해 멀리 빙빙 돌아가지 말고 바로 달려들자”라는 말은 작가로서 그의 지향점을 보여준다.
2부의 숨은 보석은 <조사 ‘에’를 읽는다>라는 글이다. 이 글에서 작가는 우리말 조사 ‘에’의 독특한 쓰임에 대해 서술했다. 조사의 정확성에 대한 강박을 가진 나에게 이 장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외국어 문헌을 번역할 때 충실하게 직역하려 애쓰는 나는 외국어와 우리말이 일대일로 조응할 수 없음을 알면서도 가능하면 두 언어의 토씨까지도 일치시키려 하다 보니 번역글이 자연스럽게 혀에 감기지 않았다.
조사 ‘에’에 대한 작가의 통찰 덕에 나는 우리말을 바늘 끝처럼 사용할 것이 아니라 부드러운 붓처럼 사용해야 함을 깨달았다. 나의 글쓰기에 이 깨달음을 실천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지만, 덕분에 나는 우리말의 포용성을 받아들이고 더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다.
작가는 ‘헐겁고 느슨하고 자유로운’ 조사 ‘에’가 ‘논리와 정한을 통합하여 새로운 언어의 세계를 연다’라는 명쾌한 말로 이 장을 마무리한다. 조사 하나에 논리와 정한을 한꺼번에 담는다고 말하는 작가의 통찰이 놀라울 따름이다. 논리는 머리로 판단하는 것이지만 정한은 가슴에 스미는 것이므로 조사 ‘에’는 정말이지 외국어로 번역하기 어려운, 우리 고유의 뉘앙스를 가진 말이다. 우리말이 자랑스럽다.
3부는 글 한 편 한 편이 독자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는 주옥같은 글들의 모음이다.
내가 『허송세월』을 갖고 있는 것을 본 카페 주인장이 “이 책 좋아요?”라고 물어서 나는 “너무 좋아요!”라고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