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미국 역사와 사회에 대해 아는 지식은 메이플라워호와 독립전쟁, 남북전쟁과 노예 해방, 마틴 루터 킹의 민권운동, 그럼에도 여전히 유색인종 차별이 존재한다는 것 정도였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미국 내에 백인 빈곤 노동자라는 또 하나의 계층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백인 빈곤층은 1, 2차 대전 후 미국의 번영을 견인한 중공업 발전에 그 역사적 시초가 있다. 전쟁 퇴역군인과 유럽 이민자들이 미국 중서부의 중공업 지대로 몰리면서 시작된 새로운 지역사회는 미국 동부나 서부와는 완전히 다른 문화를 건설했다. 회사들은 그 지역에서 임금노동자를 계속 공급받기 위해 교육시설과 상업시설, 오락 시설을 제공했고 특별한 노력을 하지 않아도 소득이 유지되었으므로 노동자들은 더 나은 삶, 중산층의 삶에 편입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 갑자기 중공업이 쇠락하면서 노동자들은 일자리만 잃은 것이 아니라 부동산 가치 하락으로 그곳에 발이 묶였다. 그때부터 미국 중서부 노동자 사회는 가난과 마약, 이혼이 만연하는 게토가 되어버렸다.
이 책의 저자인 JD 밴스는 전형적인 러스트벨트 노동자 집안 출신, 즉 힐빌리였다. 거친 스코틀랜드계 아일랜드 이민자의 후손으로 너무 일찍 부모가 되었던 그의 외조부모는 신분 상승의 희망이 없는 환경에서 알콜과 폭력으로 얼룩진 삶을 살기 시작했고 결국 딸이 마약중독자가 되는 것을 막지 못했다. 어린 나이에 임신하여 JD의 누나와 JD를 낳은 밴스의 어머니는 수없이 남자를 갈아치우며 불안정한 생활을 했고 약물 의존성만 점점 더 심해졌다. 뒤늦게 자신들의 과오를 깨달은 JD의 외조부모는 딸 대신 JD의 부모 노릇을 하면서 외손자가 제 엄마처럼 인생 낙오자가 되지 않도록 돌보고 격려한다.
대부분의 힐빌리 아이들처럼 성실성과 책임감이 부족했던 밴스는 고등학교도 간신히 졸업할 지경이었으나 이모부와 외삼촌, 매형의 안정된 삶을 보면서 중산층의 삶을 동경하던 중 우연히 해병대에 입대하여 완전히 새로운 삶의 자세를 습득하게 된다. 제대 후 오하이오 주립대를 최우수 학생으로 단기 졸업하고 예일대 법학대학원에 입학하는 기적 같은 성과를 이루게 된 그는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 매우 예외적인 사건임을 인지하고 회고록을 쓰면서 자신이 어떻게 신분 상승을 이루었는지 분석한다. 냉소와 패배주의에 젖어있는 힐빌리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힐빌리들, 러스트 벨트 지역 사람들을 위해 밴스가 찾아낸 성공 비결은 정부나 세상을 탓하기 전에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하자는 것이었다.
나도 무엇이 정답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하지만, 오바마나 부시, 또는 얼굴도 모르는 기업을 향한 비난을 멈추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자문해봄으로써 변화가 시작되리라는 사실은 알고 있다.(힐빌리의 노래 p. 406)
힐빌리들의 문제를 사회적 문제로만 접근할 일이 아니고 심리적 문제이자 공동체와 문화, 신념 문제로도 접근해야 한다는 밴스의 균형 잡힌 시각은 그 자신이 힐빌리 문화에 내재된 학습된 무기력을 경험해본 사람이어서 가능한 것이었다.
도널드 트럼프가 젊고 정치 경력이 짧은 밴스를 러닝메이트로 지명한 것은 중도층의 표를 얻기 위한 신의 한 수였다고 본다. 나로서는 밴스가 트럼프의 극단적 자국 우선주의나 친기업 정책을 견제하고 약자의 입장을 대변해주는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