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겨울, 지인이 나를 한 공연에 초대하며 공연에 관한 글을 부탁했다. 난 글을 쓰는 사람도 아닌데 잘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지만, 공연 당사자가 다른 매체를 다루는 예술가의 시각이 담긴 글을 받고 싶어 한다는 의견을 전해왔다. 그 생각 또한 흥미로워 흔쾌히 수락했고, 《OURS》라는 공연에서 서민기를 처음 만났다.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실험적인 공연이었다. 그녀가 다루는 생황, 피리, 태평소와 같은 국악기뿐 아니라 첼로, 디저리두 등 동서양의 악기가 함께 목소리를 주고받는 듯했다.
그녀는 ‘함께’하는 것의 즐거움을 아는 사람이다. 아니나 다를까, 인터뷰를 위해 약 1년 후 다시 만난 그녀의 공간에서 서민기는 정성스럽게 비건 음식을 해 주었고, 우리는 맛있게 저녁을 나누어 먹었다. 최근 관람한 박보나 작가의 전시, 《Whistlers》에 비치된 책자 『모두가 아는 노래』에서 작가는 탈성매매 여성 지원단체 ‘WING 윙’의 최정은 대표의 말을 인용한 바 있다.
“자신을 위한 밥상을 정성스럽게 차릴 수 있고, 다른 이들과 그 밥상을 나눌 수 있을 때, 비로소 삶이 들어설 자리가 생긴다. (…) 사람에게 입은 상처를 자신에 대한 사랑과 다른 사람과의 교감으로 치유할 수 있다.” [1]
서민기는 몇 해 전 사람과의 관계로부터 상처를 받았고, 그 이후 스스로를 집중하는 데 시간을 쓰면서 많은 것이 변했다고 했다. 변화한 그녀의 자신과 타인, 그리고 이 세상에 대한 태도에서 사랑과 책임감, 그리고 여유가 보였다. 그녀가 차려 준 밥상을 나누면서 우리와 세상의 자리에 관해 이야기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사람으로부터 받은 상처도 어쩌면 필연적으로 사람에게서 치료받아야 하지 않을까. 관심사와 취향, 신념이 비슷한 사람들과 모여 다양한 활동을 하는 현재의 그녀는 그 누구보다 씩씩해 보였다. 그녀가 내준 작은 방에서 하루를 머무르는 동안, 집 안 곳곳에 묻은 사랑을 온전히 느끼며 서민기와 어떤 협업 작업을 할 수 있을지 즐거운 상상을 하기도 했다. 선선한 바람이 불던 2023년 가을, 따듯하고 건강한 밥상과 함께 그녀는 나를 맞이했다.
최경아 안녕하세요. 제가 애정하는 도시 대구에서 만나게 되어 더욱 반갑네요. 인터뷰를 진행하는 선생님의 공간이 선생님을 닮아 신기하기도 하고 재밌기도 합니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시게 된 이유를 먼저 듣고 싶습니다.
서민기 안녕하세요. 국악기를 다루며 작업하는 서민기입니다. 일단 ‘계란, 먹기, 식탁’이라는 소재에서 출발한 대화라는 점이 흥미로웠는데요. 어느 순간부터 저에게 ‘먹는 행위’가 굉장히 중요해졌거든요. 그 주제를 시작으로 해서 인간 서민기를 드러낼 수 있다고 하니 재미있을 것 같아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 이야기를 하다 보면 스스로 나에 대해 정리하는 계기도 되잖아요. 그런 시간을 갖고 싶기도 했고요. (웃음)
최경아 ‘먹는 행위’가 중요해졌다고 말씀해 주셨는데요. 언제, 어떻게 그렇게 된 건가요?
서민기 사실 ‘먹는 행위’는 언제나 중요했어요. 하지만 조금 다른 의미로 다가온 건 최근 몇 년 사이예요. 연주자로 활동하면서 여러 팀에 소속되어 바쁘게 여기저기 다니며 활동하던 시기가 있었어요. 그때도 먹는 행위는 매우 중요했지만, 정말 말 그대로 ‘먹는’ 행위였던 거죠. 누군가와 함께 무언가를 나누어 먹는 행위. 하지만 개인적 사정으로 팀 활동을 그만두고 홀로서기를 시작하게 되었어요. 그 과정에서 언제나 바깥으로 바쁘게 다니던 삶에서 내가 정말 원하는 것 혹은 내가 하고 싶은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됐고요. 지금 생각해 보면 나를 돌보지 않고 바쁜 멋에만 살았던 것 같아요. 말씀드린 개인적 사정이 제 삶에 좋은 기억은 아니지만 그때를 기점으로 많은 것을 돌아보게 되었어요. 연주 활동으로 하던 노동을 줄이고 다른 노동을 하면서 개인 작업을 이어 가기로 결심했죠. 노동 시간은 비슷했을 것 같은데, 또 다른 의미에서 나를 마주하는 시간이 훨씬 더 많아진 것 같아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먹는 행위’가 중요하게 다가온 것 같아요.
최경아 직업적인 변화가 먹는 음식까지 바꿨다는 것이 조금은 놀라운데요. 선생님에게는 그 사건이 꽤 임팩트가 있었나 봅니다. 전 먹는 것이 인생에서 중요한 일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데요. 먹는 습관을 바꾼다는 것은 특별한 다짐이나 계기가 있을 것 같거든요.
서민기 생활이 달라지던 타이밍에 비건 식당 겸 제로 웨이스트샵인 ‘더 커먼’이라는 곳에서 일을 했어요. 그전에는 그저 자연과 동물을 좋아하는 정도였는데 그곳에서 일한 것이 동물권, 그리고 내가 먹는 음식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지는지 등에 대해서 자세하게 알게 된 계기가 됐어요. 그때가 나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돌보는 시기였는데, 내가 아닌 다른 존재에 대한 생각도 동시에 깊어지더라고요.
최경아 ‘나’라는 사람의 복잡하고 다양한 세계관을 들여다보면서, 다른 존재들의 세계관도 존중하게 된 거군요.
서민기 그렇다고 볼 수 있죠. 스스로를 잘 살펴보고 돌보다 보니 다른 존재들도 사랑하는 마음이 생겼다고나 할까요? 지금 돌아보면 그때가 제 인생에 있어서 가장 변화가 많았던 때인데요. 특히 일을 생각하는 자세가 많이 변했어요.
최경아 일을 대하는 태도라….
서민기 물론 일을 하면서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한데, 좀 더 의미 있는 일을 하고자 하는 욕심이 생겼어요. 누군가가 불러 주셔서 연주하는 것도 감사하지만, 내가 서고 싶은 무대를 직접 만들거나, 뜻이 맞는 무대에 서고 싶다는 의지가 강해졌어요. 그런 생각들이 모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제 생활 속에 있는 음식이나 먹는 행위도 바뀌게 된 거죠. 내 몸으로 들어오는 이 음식이 어디서, 어떻게 왔는지에 대한 관심, 그리고 내가 소비한 물건이 버려졌을 때 어디로, 어떻게 가게 될까 하는 궁금증을 갖고 고민하니 그것에 대한 책임을 져야겠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최경아 그런 생각 때문에 비건을 결심하게 된 거군요. 하지만 쉽지 않았을 텐데요.
서민기 처음부터 ‘난 오늘부터 비건이야’ 하고 결심한 것은 당연히 아니고요. (웃음) 동물권이라는 것을 처음 접하고는 아차 싶었어요. 식탁에 올라오는 음식과 제가 귀여워하는 동물을 연결 짓지 못했던 거죠. ‘더 커먼’에서 일하면서 환경과도 연결된 육식에 대해 점점 더 알게 되었고, 어느 순간부터는 음식으로 보이지 않게 되었어요. 저는 술을 좋아해서 불판에 고기를 구워 먹는 그 분위기를 즐겼는데, 지금은 그게 조금 아쉽지만 언젠가 버섯구이 집이 생기지 않을까요?! (웃음)
최경아 저도 ‘집에서만 채식해야지’ 하는 생각으로 지낸 지 꽤 됐는데 술 한잔하고 싶은 날에는 다른 건 몰라도 치킨의 유혹은 좀 힘들던데요.
서민기 그렇죠. 저도 예전에 치킨 시켜 먹고 다음 날 토한 적도 있어요. 먹을 때는 맛있게 먹었던 것 같은데, 은연중에 죄책감 같은 것이 느껴져서 마음이 불편했나 봐요. 지금까지 늘 먹던 것들인데 갑자기 변하긴 어려울 것 같고, 지금도 그 과정에 있는 것 같아요.
최경아 그럼 비건이 되신 지는 얼마나 되셨나요?
서민기 3~4년 정도 됐네요.
최경아 혼자서 조용히 지키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닐 거라 예상되지만 공연예술가는 협업 형태의 작업이 많잖아요. 함께 식사하는 경우도 잦을 텐데, 그럴 때는 어떻게 하셨나요?
서민기 저 때문에 불편해지는 상황이 싫으니까 타협점을 찾기는 하죠. 최근 작업이 제가 주체가 되어 하는 활동이다 보니, 작업실에서 미리 음식을 만들어서 먹거나 식사 시간을 피하거나 하면서 각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봐요. 혹은 밖에서 먹어야 하면 제가 미리 식당을 찾아두거나, 어려움이 있다면 도시락을 챙기기도 해요. 해물은 가끔 먹습니다. 하지만 최대한 안 먹으려고 노력해요.
최경아 소속되어 있던 팀 내의 불화 때문에 삶의 방향이 바뀌게 된 거네요.
서민기 그러게요. 그게 없었다면 여전히 그렇게 살고 있을지도 모르죠. 사실 그전까지는 비교적 순탄한 삶을 살고 있었어요. 그 사건이 저에게는 스스로 결정하고 해결해야 하는 큰 사건이었어요. 그래서 많은 것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죠.
최경아 여러 가지로 힘든 시기였지만 그래도 그 사건이 인생의 전환점이 된 거네요. 조금씩 변하긴 했겠지만,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은 선생님이 극단적으로 변했다고 말하는 경우도 있었을 것 같은데 어떤가요?
서민기 맞아요. 그런데 사실 국악이라는 장르 안에서만 연주 활동을 하던 때 만난 사람들과는 현재 거의 관계하고 있지 않아요. 그러다 보니 지금 만나는 친구들은 대부분 타 장르 예술가들, 최근 몇 년 사이에 만난 친구들이에요. 그 친구들은 저의 예전 모습을 전혀 모를 거예요. 어릴 적 동네 친구들과 학창 시절 친구들이 많이 변했다고들 해요. 그 친구들은 저의 이런 모습을 생소해 하거나 엄청 많은 것을 물어보거나 둘 중 하나더라고요. (웃음)
최경아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저도 집에서는 주로 채식 위주의 식사를 하려고 노력하는데요. 생각보다 다양하게 하진 못하겠더라고요. 선생님은 평소에 어떤 비건 요리를 해 드시나요?
서민기 정형화된 것은 없고요. 창작하는 사람이시니 잘 아시겠지만, 그때그때 먹고 싶거나 생각나는 요리를 하는 편이에요. 제철에 나는 채소를 사서 주로 볶아서 먹거나, 빵을 좋아해서 빵이랑 곁들여 먹을 수 있는 샐러드를 주로 먹는 편입니다.
최경아 제철 음식을 챙겨 먹는 일은 건강한 습관 같아요. 그 계절에 느낄 수 있는 신선함? 싱싱함 같은 게 느껴지잖아요.
서민기 농작물 유통 과정 때문에 힘들게 농사지은 농부들이 수고에 대한 대가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생각, 유통 과정에서 생기는 에너지를 줄이고 싶은 마음 등이 있어서 주로 로컬 푸드 매장을 이용하거나 농장에서 직거래하는 방법으로 제철 과일, 채소를 구매하고 있어요.
최경아 요즘은 하우스 재배 덕에 여름에도 귤을 먹을 수 있지만, 가끔은 뭘 또 그렇게까지 먹어야 하나 싶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제철 음식을 먹는 것도 기후에 관한 공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서민기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여름에 귤을 먹는 일은 환경을 거스르는 일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그리고 무엇보다 제철에 먹는 음식은 싱싱하고 맛있잖아요.
최경아 선생님께서 스스로 지키고 계신 비건, 제로 웨이스트, 환경 문제 대응 행동들을 대외적으로 알리고 싶은 생각도 있으신가요?
서민기 네. 나라는 존재는 이 지구 안에서 터무니없이 작은 존재일 뿐이잖아요. 그래서 공동체 활동을 통해 의미 있는 생각과 행동을 알리고, 기록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예전에는 공연, 그러니까 어떤 결과물을 더 중점적으로 생각했다면 지금은 그걸 만드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공연 자체도 꼭 공연장에서만 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고요. ‘내가 서는 곳이 무대지, 뭐’ 하는 생각으로 임하니까 더 자연스럽고 재밌는 작업이 되더라고요.
최경아 주로 가사가 없는 음악을 만드시는데, 시각예술을 하는 제 입장에서 보자면, 구상 작업이 아닌 추상 작업처럼 느껴지거든요. 작업 과정이 궁금합니다.
서민기 저도 작곡을 하던 사람은 아니었잖아요. 그래서 처음에는 어떻게 곡을 만들어야 할지 몰랐어요. 그런데 악기에 대해서만큼은 연주하는 내가 가장 잘 아니까, 내가 느낀 것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도구가 악기라는 생각이 든 거죠. 다른 작곡가에게 작곡을 맡기는 것보다, 어차피 이 악기로 연주를 할 거라면 내가 곡을 쓰는 게 자연스럽겠다고 생각했어요.
최경아 제가 관람했던 2022년의《OURS》공연을 그런 생각으로 기획하고 만들게 된 건가요?
서민기 네. 그 당시 제가 하고 싶은 말이 많았나 봐요. (웃음) 많은 생각과 감정을 느끼고 있는데 이걸 풀 곳은 음악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1년 동안 내가 바라본 것들, 감각한 것에 대한 음악을 만들어보자고 결심하고 나니, 세상의 모든 소리가 악기인 거예요. 정해진 악보 안에서 연주만 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다양한 소리를 악기로 활용하게 되었습니다.
최경아 그전에는 악보 속에 정해져 있는 연주로만 활용되던 선생님의 악기가, 악보 밖으로 나와 새로운 연주를 하게 된 거네요.
서민기 네. 바람에도 질감이 있잖아요. 그런 것을 표현하기도 하고, 문득 바다를 바라봤을 때 처음에는 그저 아름답게만 느껴지던 것이 어떤 상상을 거쳐서 무섭게 보이기도 하는, 일종의 서사를 통해 곡을 만들기도 했어요.
최경아 그럼 각각의 곡마다 만들게 된 계기, 과정이 조금씩 다른 건가요? 제가 느끼기에도 마치 영화처럼 기승전결이 느껴지는 곡도 있고, 그냥 소리 그 자체로 다가오는, 앰비언트 음악처럼 실험적으로 다가온 것도 있었거든요. 이 음악 장르를 뭐라고 해야 할까요?
서민기 음… 글쎄요. 어쨌든 국악기를 사용하니까 국악이라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계시고, 현대 음악이라고 하시는 분들도 계세요. 장르를 정확히 나눠야 되는 곳에 가게 되면 좀 난감하긴 하죠. (웃음)
최경아 서양 악기 연주자와 협업하니까 국악이라 하기에도 무리가 있을 것 같고, 국악기를 쓰니까 국악이 아니라고도 할 수 없고… 현대적인 국악? (웃음) <뾰족이는 바다가 ( )처럼 일렁인다>라는 곡이 특히 저에게는 기승전결이 크게 와닿은 곡이었는데요. 이 곡에 대해서 간단히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서민기 제가 원래 바다를 좋아했는데, 세월호 사건 이후로 바다가 무섭게 느껴지는 거예요. 제주 가는 길에 배를 타고 간 적이 있었는데, 어느 순간 바다 한가운데에서 바라본 모습이 너무 무서웠어요. 반짝이던 바다가 뾰족하게 보이던 순간이었죠.
최경아 어떤 ‘느낌’을 곡으로 만들고 연주한다는 게, 특히 협업해야 하는 경우에는 정말 어려운 일일 텐데… 다른 연주자들의 악보는 어떻게 만들었나요?
서민기 제가 전문 작곡가가 아니기 때문에 음악적 구성이 탄탄한 악보를 전달하는 경우는 드물어요. 그런 곡도 물론 있을 수 있지만, 질문하신 <뾰족이는 바다가 ( )처럼 일렁인다>의 경우는 제가 바다를 보며 느낀 것들을 연주자들에게 공유하고 함께 만들고 싶어서 공동 작곡을 한 셈이에요.
최경아 그런 과정이라면 시간도 오래 걸릴 테고… 의견이 잘 맞아야겠네요.
서민기 아무래도 제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공감을 어느 정도 해야 함께 곡을 쓸 수 있겠죠. 각자 4.16에 대한 기억이나 감정을 각자의 악기나 특정 소리로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했던 것 같아요. 바디 퍼커션 하는 친구는 가슴 치는 행위가 들어가면 좋겠다고 해서 그 소리가 들어가기도 했고, 반짝거리면서 뾰족한 질감이 드는 소리를 넣어 보자는 의견이 모아져서 그런 소리를 만들기도 했죠. 다른 곡 하나 더 예로 들자면, <후니>라는 곡은 저와 어릴 적 친구였던 훈이라는 친구가 그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서 친구를 기억하고 싶은 마음으로 만든 곡이에요. 피리 소리가 사람 목소리랑 비슷하다고 하거든요. 제가 그 친구를 늘 “훈아” 하고 불렀었는데, 그 친구를 부르는 느낌으로 곡을 썼어요.
최경아 친구에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음률로 담긴 곡이군요.
서민기 네. 보고 싶은 마음을 담아서 친구를 부르듯이 곡을 만들었어요.
최경아 각각의 곡마다 다른 이야기와 과정으로 창작하시는 거군요. 과정과 내용을 들으니 더 와닿는 것 같습니다. 지금 말씀해 주신 것처럼, 국악 밴드에서 나와 주체적으로 활동하시면서 다양한 예술가들과 협업하고 계시잖아요. 그러면서 달라진 것은 무엇인가요?
서민기 일단 개인으로 활동하면 제가 원하는 방향에 대해 조금 더 고민하고 집중할 수 있는 것 같아요. 팀 활동을 할 때는 연주자로서 무언가에 몰두했다면, 이제는 연주는 물론, 작품에 보이는 모든 요소를 하나의 작품으로 여기게 되었어요. 또 2022년 단독 콘서트를 1년 정도 준비하면서, 공연을 하는 그 순간에 모든 과정이 사라지는 공연예술에 대해 물음표를 품게 되었어요. 그래서 하나의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 그리고 작품이 생겨난 이후의 시간에 집중하게 되었죠. 타 장르 예술가들을 공연에 초청해 글을 받기도 하고, 작업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기록하기도 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작품을 마주하려는 시도를 하게 됐어요. 작품이 만들어진 과정과 그 이후에 더해지는 여러 이야기들이 그 작업을 구성하는 요소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이후에는 공연과 전시의 형태를 결합한 《서민기록》이라는 작업도 하게 되었어요. 무언가 결과물을 구성하지 않고 다양한 장르의 작가들을 모아 함께 시간을 보내며 서민기를 기록해 보는 시간이었죠. 과정에서 얻어지는 것들이 노트가 되고 작업이 되고… 보여지는 순간, 그리고 보는 이들의 이야기까지 하나의 작업으로 여기며 시간을 담는 작업을 하게 되었어요. 그 과정에서 한순간을 위해 오랜 시간 준비하는 공연의 형태보다는 과정과 의미를 더하는 형태가 저에게 더 흥미롭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또, 오롯이 나만의 작업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OURS》 공연이 처음에는 나의 이야기를 음악으로 담으려는 의도였지만, 곡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이게 나의 이야기이지만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죠. 타인과의 관계와 시간으로 이루어지는 나의 일부를 인지했고, 이후에는 장르와 상관없이 더 많은 예술가와 작업을 이어가고 있어요. 장르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하나의 도구라고 생각하고, 그 안에 한 사람의 생각과 시선을 나누고 담는 것에 큰 의미를 두게 되었어요.
최경아 그 과정에서 많은 대화를 할 것 같은데요. 특히 중점을 두고 이야기하는 건 무엇인가요?
서민기 작업에 대한 내용보다는 어떤 마음으로 작업을 하는지를 더 많이 이야기하는 것 같아요. 창작자의 마음을 서로 알게 되니까 작업을 더 재밌게 할 수 있게 되고요.
최경아 삶의 가치관, 방향을 조금씩 바꾸면서 작업하는 방식도 관계 중심, 과정 중심으로 변했다고 볼 수 있겠네요.
서민기 네.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것 같아요.
최경아 좀 오래전 이야기로 돌아가서… 악기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서민기 어릴 때 피아노를 쳤었거든요. 원래는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었어요. 그런데 고등학교 때 너무 열심히 안 해서, 피아노로 대학에 진학하기엔 좀 어려운 상황이었어요. (웃음) 그러던 중, 사촌 언니가 ‘피리’라는 악기를 알려줬어요. 우연히 공연을 보러 갔는데 피리 소리가 엄청 큰 거예요. ‘저 작은 악기에서 어떻게 저런 소리가 나지?’ 하는 생각이 들면서 멋있게 느껴졌어요. 호기심 반, 진학에 대한 전략 반으로 시작하게 됐어요.
최경아 부끄럽지만 저는 선생님 공연에 가서 ‘생황’과 ‘피리’ 소리를 처음 들었는데요. 생황도 멋있었지만 피리 소리는 정말 전율이 일 정도로 놀랍더라고요. 당연히 다르겠지만 두 악기를 불 때 호흡법이 많이 다른가요?
서민기 피리는 풍선 불 때처럼 엄청나게 세게 불어야 돼요. 생황보다는 호흡을 더 온전히 받는다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최경아 피리, 생황, 태평소 모두를 다루시는 걸로 알고 있어요.
서민기 네. 전공은 피리를 했지만, 피리가 표현할 수 있는 음역이 넓지 않아요. 그래서 피리 연주자들은 다른 악기를 함께 다루기도 해요. 그래서 저도 생황과 태평소를 배우게 됐는데, 생황의 경우 불어서 소리를 낸다는 것만 비슷하지 전혀 다른 악기인 거예요. 부는 방법도 다르고, 지공 순서도 달라서 처음에 적응하느라 좀 고생했어요.
최경아 그래도 피리보다 음역이 많아서 표현할 수 있는 소리가 많겠네요.
서민기 네. 요즘은 생황이 개량되어 나오는 것이 있어서 37관, 38관 생황도 있거든요. 그래서 다양한 음역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죠.
최경아 최근에는 어떤 것에 집중하고 있나요?
서민기 <금호강 디디다>라는 예술공동체 활동이요.
최경아 그 활동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서민기 금호강의 아름다움을 기록하는 영상과 음악 작업 의뢰가 들어왔어요. 그래서 회의하러 갔다가 금호강 일대를 개발한다는 이슈를 듣게 되었고, 개발하면서 생길 문제점을 처음으로 인식하게 된 거죠. 부끄럽게도 대구에 오래 살면서 금호강에 대해 잘 알지도 못했고 그런 이슈가 있는지도 몰랐거든요. 그래서 금호강의 모습을 제대로 좀 보고 남겨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생명평화아시아에 제안했고, 예술인복지재단 사업인 파견지원사업으로 선정되어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최경아 팀명이 재밌는데요. 그렇게 지은 이유가 있을까요?
서민기 저와 함께한 친구들도 모두 대구 출신이지만 금호강을 다들 잘 모르고 제대로 가본 적도 없었어요. 그래서 금호강을 우리가 잘 디디고 기록하겠다는 의미로 짓게 됐어요.
최경아 찾아보니 금호강이 엄청나게 크네요. 서울의 한강처럼 거의 대구를 둘러싸고 있는 강이군요.
서민기 네. 그래서 제대로 이 강에 대해서 알고 싶어 식생 전문가, 조류 연구자 등의 전문가와 동행하며 금호강의 생태에 대해 들었어요. 저희가 멋지다고 바라봤던 강의 모습이 사실은 자연 그대로가 아니라 인간이 인위적으로 바꾸어 놓은 모습이라는 사실에 충격도 받았죠. 구불구불한 것이 본래 강의 모습인데, 그걸 인간 중심적으로 직선으로 만든다든지 각종 식물이 자연스럽게 섞여 있는 것을 다 자르고 한 종으로 보기 좋게 만든다든지 하는 것들이요.
최경아 도시에 사는 우리들은 그렇게 잘 가꿔진 자연에 익숙해서 그게 자연의 본모습이라고 오해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아요.
서민기 맞아요. 저도 잘 몰랐으니까요. 특히 팔현 습지에 갔을 때 연구자님께 들었던 이야기인데요. 멸종 위기 야생동물 12종이 오고 가며 지내는 곳인데 자전거 도로가 만들어진다는 거예요. 그래서 환경 운동가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더 지키고 싶은 마음이 커졌죠. 도시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데, 가보면 정말 다른 세상에 와 있는 것 같은 곳이거든요. 대구에서 소중하게 다뤄야 할 대자연이 개발된다는 게 마음이 아팠어요. 그래서 환경 운동가들과 함께 기자회견도 하고, 공연도 하면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어요.
최경아 공공기관과 맞서는 일이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서민기 아까 말씀드렸던 팔현 습지에 나타나는 멸종 위기종 생물 있잖아요. 환경운동연합에서는 12종이라고 판단을 했는데 환경부 검토 결과에는 훨씬 더 적게 나와서, 부실 검토라는 이의 제기를 하고 서명을 받았어요. 결국 그 사안이 국회로 넘어가서 긍정적인 검토를 하는 걸로 알고 있어요.
최경아 이 공동체 활동을 하게 된 과정이 참 흥미로우면서, 선생님의 적극성을 잘 알 수 있는 대목이네요. 적극성과 의지가 없다면 실천하지 못했을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는 게 무섭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이게 또 중요한 일이니까, 알고도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사람들을 불러 모은 그 투지가 대단합니다. 쉽지 않은 일이었을 텐데… 이런 의미 있는 공동체 활동을 하시면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었다면 어떤 순간인가요?
서민기 며칠 전 팔현 습지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을 위해 답사를 간 적이 있었는데요. 날씨도 좋았고 모든 게 아름답게 보이던 순간 마치 나무가 말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프로그램 진행하면서도 의미가 있으면서 재밌기도 하고…. 금호강을 지키고 싶다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들던 순간이었어요. <금호강 디디다> 활동을 통해서 이전에는 안 보이던 것들도 보이게 되더라고요. 말씀하셨듯이 아는 게 무섭다고, 개발되면서 자연이 파괴되는 것을 아니까 이제는 괴롭더라고요, 그런 것을 보는 것 자체가. 각자 상황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니까 잘 공존할 방법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지를 고민하게 되는 것 같아요.
최경아 우리가 아는 것을 여기저기 알리고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을 모으는 게 중요한데, 이미 선생님께서는 그걸 잘하고 계시네요. 사실 유명인이 이런 좋은 활동을 하면 더 잘 알려지고 함께 하는 사람이 많아질 텐데… 빨리 더 유명해지셔서 선한 영향력을 널리 널리 끼쳐 주세요. (웃음) 선생님이 스스로 사랑하는 자신의 태도나 모습은 어떤 것인가요?
서민기 음… 무언가를 할 때 책임감 있게 하려는 모습이요. 가볍게는 친구와의 약속이나 나와의 약속도 어떤 책임이라고 볼 수 있겠죠. 내가 한 일에 대해 책임지는 것을 인생을 살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최경아 대화를 나눠보니 선생님이 말하는 책임은 좀 더 무게감이 있는 것 같아요. 단순히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책임이라기보다, 이 세상에 대한 책임이라고 해야 할까요?
서민기 그래서 피곤하다는 생각도 있지만… (웃음) 그냥 그게 제가 사는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최경아 책임감이 있는 피곤함이네요. (웃음)
서민기 삶은 원래 고단하니까요. (웃음)
최경아 선생님 작품이나 삶을 보면 ‘연결’이라는 키워드가 떠오르는데요. 기후, 환경 문제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단어이기도 하지만, 유독 선생님의 삶을 보면 그게 크게 다가옵니다. 내가 먹는 것, 입는 것, 버리는 것 등이 다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해서 이런 생각과 행동, 작업을 하시는 거잖아요.
서민기 연결, 관계를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작업하는 것 같아요. 나의 감정과 이야기이지만 결국 무엇과 나와의 관계이고, 그걸 동일하게 혹은 다르게 바라보는 협업자들과의 관계를 통해 작품이 나오게 되니까요.
최경아 앞으로는 어떤 관계와 연결이 있으면 좋겠나요?
서민기 프리랜서 예술가는 내년엔 무슨 일을 해서 먹고살아야 하나 하는 고민이 늘 있잖아요. 그런 생각이 드는 동시에 뭘 해도 할 거라는 확신도 들어요. 지금은 일단 집중하고 있는 <금호강 디디다> 프로젝트와 지속해서 관계하고, 공연예술가로서 이 프로젝트에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를 계속 고민하고, 의미가 있는 좋은 작업을 하고 싶어요.
최경아 그럼 마지막으로, 이 인터뷰 프로젝트가 계란이라는 소재에서 시작된 만큼—현재는 비건이시지만—이전에 계란으로 주로 뭘 해 드셨는지 궁금해요.
서민기 음… 기억이 잘 안 나네요. (웃음) 주로 계란프라이 해 먹었던 것 같아요. 기름은 아주 살짝만 넣고 익히다가, 중간에 물을 살짝 넣고 뚜껑을 덮어서 익히면 너무 기름지지 않은 계란프라이가 되거든요. 그렇게 먹었던 것 같네요.
최경아 담백하게 해서 드셨군요. 정말 마지막 질문을 드리면서 인터뷰를 마치겠습니다. 어떻게 나이 들어가고 싶나요?
서민기 그냥 지금처럼 마음 맞는 사람들과 재밌고 의미 있는 것들을 하면서 즐겁게 살고 싶어요.
최경아 저도 그 즐거움에 동참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감사합니다.
2023.10.26.
[1]
박보나, 『모두가 아는 노래』, 갤러리 조선, 2024, 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