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한 작가의 소개로 알게 된 연주 선생님과는 캠핑 친구로 처음 만났다. 주로 사적인 자리에서 만나며 가까워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에 개인에 관한 이야기는 잘 모르고 있었다. 아무래도 같은 영역에 종사하다 보니, 만나면 주로 일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그녀가 선뜻 이 프로젝트에 함께 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현해 왔을 때 나는 내심 기뻤다. 주로 질문을 던지는 직업인 ‘기획자’인 그녀에게 반대로 질문을 받게 한다면 어떤 대답이 나올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개인적인 이야기 속의 연주 선생님은 어떤 사람인지도 알고 싶었다.
예술가의 작품에는 ‘나의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여러 작품이 모인 ‘전시’를 기획하는 사람은 각 이야기의 관계를 잘 엮어 단단하게 묶은 후, 새로운 서사를 만들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조화로운 관계를 중시하고 고민하며 노력하는 이연주 학예사의 삶에는 모두와 사이좋게 지내려는 노력과 사랑스러움이 가득 차 있다. 사람을 넘어 동물, 사물과도.
나와 그녀 모두가 최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식습관, 환경 문제와 같은 관심사를 식탁에 메인 메뉴로 올려 두고 대화를 시작하였다.
최경아 안녕하세요. 이 프로젝트를 준비하면서 인터뷰이 모집이 잘 안될까 걱정이 되어 제 SNS에 홍보차 게시물을 올렸을 때 먼저 연락을 주셨잖아요. 어떤 이유로 참여하고 싶으셨나요?
이연주 안녕하세요. 수원시립미술관 아트스페이스광교 학예사 이연주입니다. 제가 기획자로 활동하면서 인터뷰는 많이 해 봤지만, 인터뷰이 경험은 거의 없더라고요. 전시 기획 프로젝트가 아니라, 이연주라는 사람에 대해 인터뷰하면 어떤 말을 하게 될까 궁금했어요. 음식과 연결해서 이런 프로젝트를 한다는 것도 흥미로웠고요.
최경아 제가 느낀 선생님은 뭐든 경험해 보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 같아요.
이연주 그것도 그런데, 전 그냥 호기심 많고 푼수끼가 많아요. (웃음)
최경아 우리가 같이 다니는 캠핑에서 요리를 해서 먹잖아요. 몇 해 전 제가 기획전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주제가 ‘먹기’였거든요. 주제를 받아 작업을 하려니 쉽지 않아 고민하던 때에 캠핑을 가게 되었고, 거기서 우연히 계란프라이를 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같이 갔던 친구들 취향이 모두 다른 거예요. 그 현상이 재밌어서 ‘계란’을 소재로 한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 겁니다. 『Pop the Egg!』대화집 프로젝트는 다채로운 모습으로 변화할 수 있는 계란처럼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는 인터뷰집이에요. 그런 의미에서, 선생님은 주로 어떤 계란 요리를 드시나요?
이연주 전 계란을 좋아하지 않아서 잘 안 먹습니다. (웃음)
최경아 그럼 집에서 음식을 해 드신다면 주로 무엇을 드시나요?
이연주 일단 요리를 거의 안 하고요. 야채를 갈아서 먹는 해독주스 정도 해 먹는 것 같네요. 최근 3년 동안 사실 식습관이 많이 바뀌었거든요. 그래서 이 프로젝트에 참여해 보고 싶은 생각도 있었어요.
최경아 어떤 특별한 계기가 있으셨나요? 운동을 규칙적으로 하거나, 식단을 철저히 지키는 경우엔 보통 어떤 강한 동기가 있기 마련이잖아요.
이연주 사실은 부모님과 계속 살다가 수원에 오게 되면서 인생 처음으로 자취라는 것을 시작했어요. 그런데 먹는 게 달라지니까 몸이 안 좋아지더라고요. 원래도 음식, 건강, 환경에 관심은 있었는데, 단지 관심만 있는 거랑 실천하는 거랑은 다른 문제잖아요. 건강이 안 좋아지니까 이제 실천을 해보자 싶어서 식습관도 바꾸고 운동도 규칙적으로 하기 시작했어요.
최경아 눈으로 확인되는 결과가 조금씩 바뀌면 음식과 운동의 효과를 믿게 되죠.
이연주 네 맞아요. 처음 식습관에 대한 고민을 시작한 건 알레르기 때문이었어요. 제가 유제품 알레르기가 있는데요. 빵 만들 때 우유, 계란, 설탕, 버터가 많이 쓰이잖아요. 빵을 좋아해서 많이 먹었었는데, 알레르기가 올라오더라고요. 물론 우유가 들어간 것이 주된 이유겠지만, 원재료를 온전히 쓴 게 아니라 빵처럼 많은 원재료가 섞여 가공된 것을 먹으면 몸이 안 좋더라고요. 그렇다 보니 빵도 멀리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빵에 많이 들어가는 계란을 잘 안 먹게 되었어요.
최경아 사실 저도 집에서는 채식 위주의 식사를 하려고 노력하거든요. 전 건강도 건강이지만, 환경에 대한 생각이 더 커서 나름대로 그런 규칙을 정했는데, 그런데도 계란을 끊기는 너무 어렵습니다. 계란은 너무 활용성이 높고 쉽게 할 수 있는 요리가 많잖아요. 그런데 계란을 잘 안 드신다니 놀랍습니다.
이연주 제가 육류 특유의 누린내를 싫어하는데, 삶은 계란이나 계란프라이에서도 그 냄새가 많이 느껴지더라고요. 그래서 계란 자체로만 한 요리는 좋아하지 않습니다. 계란에 다른 재료를 섞어 만든 계란말이 같은 건 그래도 먹어요.
최경아 건강을 위해 식습관에 신경 쓰고 계시잖아요. 그전에는 건강이나 환경에 대한 어떤 생각을 갖고 계셨어요?
이연주 환경을 주제로 한 전시 기획을 하면서 육식에 관한 문제를 접했어요. 하지만 바로 육식을 끊는 것은 어렵잖아요. 조금씩 줄여보자는 생각을 그냥 막연하게만 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몸의 이상이 오니까 심각하게 고려하게 된 거죠.
최경아 특히나 이 전에 근무하셨던 청주시립대청호미술관에서 환경에 관한 이슈를 많이 다루셔서 경각심을 많이 갖고 계셨을 것 같아요.
이연주 아무래도 그렇죠. 자료 조사하면서 다양한 정보를 알게 되니까요. 사실 육식을 많이 하는 것도 문제지만, 저는 가공해서 나오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하거든요.
최경아 가공해서 나오는 것들이요?
이연주 네. 예를 들면 가공해서 만든 육류나, 그것을 담는 플라스틱이나 스티로폼 용기같은 것들이요.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제가 지금 친구와 같이 살다 보니 자연스럽게 배달 음식을 많이 시켜 먹는 편이기도 하고, 고양이도 여러 마리 키우고 있어요. 그렇다 보니 생활 쓰레기가 너무 많이 나오는 거예요.
최경아 그렇죠. 사실 무언가 소비하는 것 자체가 다 에너지라고 볼 수 있잖아요. 저도 언젠가 매체에서 기후 위기 전문가가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것 자체가 기후 위기에 도움이 된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격렬히 공감했거든요. 내가 쓰는 것, 먹는 것, 입는 것 등을 조금만 덜 쓰면 좀 더 나아지지 않겠나 하고요.
이연주 그래서 저는 사람들이 많이 쓰는 쿠팡 로켓프레시나 마켓컬리 이용을 자제하려고 하고 있어요. 플랫폼들끼리 더 빠르고, 더 신선하게, 더 안전하게 배송하는 경쟁을 하다 보니까 포장재가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잖아요. 그런 것들을 만드는 데 들어가는 에너지를 줄여보자는 의지 같은 거죠. 그리고 육류를 슈퍼마켓에서 산다고 할 때도 케이지 프리 같은 제품을 선택해서 사면 되는데, 사실 그 제품을 생산하는 데 쓰인 에너지와 거기서 발생하는 쓰레기도 결국 케이지에서 키운 것들과 다르지 않은 거예요.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집에서 먹을 때만큼은 에너지 소비와 쓰레기 발생이 덜한 것들로 먹자고 결심하게 된 거죠.
최경아 그럼 선생님에게 집에서 무언가 맛있게 먹는다는 건 드문 일이겠네요.
이연주 먹는다는 것이 사실 문화와 재능을 즐기는 것이잖아요. 그 요리를 만든 사람의 재능과 함께 먹으며 이야기 나누는 문화는 혼자서는 즐길 수 없으니, 밖에서 먹는 음식은 제대로 먹고, 집에서 먹을 때는 에너지 소비와 쓰레기 배출을 최소한으로 하려고 하는 거죠.
최경아 내가 직접 음식을 만드는 재미도 있지 않나요?
이연주 그렇긴 하죠. 그런데 저는 마치 작품 감상하듯이, 음식도 누가 만든 것을 즐기는 것이 좋더라고요. 사실 제가 기획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엔 작업을 했었거든요. 그때는 제가 직접 만드는 것을 좋아했어요. 음식도, 빵도 만들었으니까요. 그런데 기획 일을 하다 보니 누가 만든 것을 보고 감상하고 큐레이팅 하는 게 더 재밌어졌어요. 그 습관이 음식을 먹을 때도 적용이 된 것 같아요.
최경아 흥미롭네요. 플레이팅이 아름다운 음식점에 가면 먹기 아까울 정도로 작품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간혹 그런 음식의 조화, 컬러, 구성에서 영감을 받기도 하죠.
이연주 그래서 저는 음식 사진 찍는 행위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지 않아요. 그게 어쩌면 작품 컬렉팅이랑 비슷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최경아 작가로서 활동하시다 기획자로 직업을 바꾸셨을 때 음식에 대한 태도도 달라졌다는 게 흥미롭네요. 선생님은 자기 삶을 대하는 것에 있어서 일상생활에서도 몰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어릴 적의 어떤 성향이 지금의 선생님을 만들었을까요?
이연주 음… 글쎄요. 확실한 건 사람 좋아하고, 글 쓰고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는 밝은 성격의 소유자였다는 거예요. 그 성향은 지금도 갖고 있고요. 사람 좋아하는 성향은 지금 미술관에서 기획하고 교육하는 일에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이론을 전공한 큐레이터가 무언가 한 주제를 깊이 연구해서 기획한다면, 저는 사람들이 좋아하고 재미있어 할 만한 기획이 더 흥미롭더라고요. 제가 공부하고 싶은 주제의 전시도 있겠지만, 최근에는 일반 대중이라면 어떤 전시를 보고 싶을지를 고민하면서 전시 기획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최경아 미대에서 실기 전공을 하셨고 작가 활동도 하셨는데, 기획자로 전향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이연주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대학의 연극 동아리 선배님이 만드신 극단 활동을 하면서 ‘기획’이라는 일의 재미를 느꼈던 것 같아요. 무대 디자인, 연출을 하는 게 재밌더라고요. 그리고 나 혼자 하는 작품이 아닌, 여러 사람의 재능을 모아서 그걸 하나로 보여주는 작업이 재밌었어요. 그래서 졸업하고 나서도 극단 활동을 꽤 오래 했고요.
최경아 그러면 연극 쪽으로 진로를 바꿨을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그 정도는 아니었나봐요?
이연주 아무래도 그쪽은 체력이 좋아야 하는데 그게 자신이 없었어요. 그리고 극단 활동하면서 돈도 벌어야 하니 미술관 일도 함께 했는데, 생각보다 그 일이 즐거웠어요. 대학원 졸업 후 후배와 동료들을 모아서 <드로잉 ZIP>이라는 팀을 만들어서 스터디도 하고 전시 기획도 하며 적극적으로 활동하기도 했으니까요.
최경아 그 활동은 작가로서의 활동 아니었나요?
이연주 네 맞아요. 그런데 그 당시 제 작품이 프로젝트성 작업으로 변하던 시기였어서, 그게 자연스럽게 기획 일로 변한 거죠. 사실 서른다섯 살 때까지 작업과 기획을 같이 하다가 그때 가서 뭘 할지 결정을 하자고 생각했는데, 서른한 살에 청주시립미술관 학예사 공고가 떠서 그냥 지원을 해봤는데 합격했어요. 계획보다 좀 빠르긴 했지만, 그게 기획자로 노선을 튼 계기가 된 거죠. 사실 그 당시 작가 지원금도 받고 있었는데, 다 포기하고, 작업실도 정리하고 학예사로 입사했어요.
최경아 갑자기 결정한 만큼 작업을 그만두는 게 좀 서운했을 것 같은데… 어떠셨나요?
이연주 속 시원하던데요? (웃음) 작업실 옮길 때마다 초등학교 때부터 그렸던 그림들을 다 이고 지고 다녔었는데, 미련 없이 싹 다 정리했어요. 오히려 후련했어요.
최경아 작업을 했던 경험이 있으시니까, 아무래도 작가의 입장을 잘 아실 것 같아요.
이연주 그래서 작업실을 정리하면서 그 보증금으로 작은 전시 공간을 하나 만들어 운영하며 전시 기획을 했어요. 아무래도 청년 작가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잘 알았으니까요. 작가라는 1차 생산자를 서포트해 주는 역할을 맡으니 새로운 열정이 생겼고, 무엇보다 기획 일 자체가 재밌었어요. 그때부터 한 3년간은 미친 듯이 일만 한 것 같네요.
최경아 그래도 마지막까지 같이 하며 고민했던 일인데, 기획자로 전향하신 뒤 작가로서의 삶에 대한 미련이나 기획자 일에 대한 후회는 없으셨나요?
이연주 단 한 번도 없어요. 물론 미술관 학예사로 제가 영원히 일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런 불안함은 늘 자리하고 있죠. 앞서 언급한 최근 건강이 안 좋아진 경험이 계기가 돼서 마음을 편히 먹기로 다짐했죠. 전시 기획 일만 보고 7년 동안 꾸준히 달려왔는데, 이제는 이 일을 기반으로 삼아 어떤 일이 되었든 잘 섞여서 활동할 수 있겠다는 믿음 같은 게 생겼어요.
최경아 내가 꾸준하게 해 온 일에 대한 자신감으로 느껴지네요. 이 일과 전혀 상관없는 일을 하더라도 분명 지금 하는 일이 어떻게든 좋은 영향으로 작용할 거라는, 그런 믿음이요.
이연주 네. 마치 계란이 메인 요리도 될 수 있지만 부재료로서의 역할이 다양한 것처럼, 만약 지금과 다른 일을 하게 된다 해도 지금까지 쌓아 놓은 역량을 발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최경아 지금보다는 몸이 더 편하고 재밌는 일이면 좋겠네요.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좋은 기획이란 뭔가요?
이연주 음… 저는 물리적으로 쓰레기가 많이 나오는 전시에 대한 스트레스가 있어요. 그래서 그걸 최소화할 수 있는 전시 기획을 선호하는 편이에요. 사실 전시 하나를 만들려면 적지 않은 예산이 들어가잖아요. 제가 기관의 학예사로 있어 보니 얼마 안 되는 돈을 여러 개의 전시에 쪼개서 써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게 의미가 있나 싶더라고요. 질보다 양을 우선시하기보다 질로 승부 보는 전시를 하고 싶은데, 그게 사실 쉽지 않아요. 미술관에서 일하다 보면 수많은 곳에서 전시 초대장, 브로슈어가 우편으로 오거든요. ‘그 전시 중에 과연 미술사에 남을 만한 전시는 얼마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그런 명예만을 위해 전시를 만드는 것은 아니지만, ‘유의미한 메시지를 주는 전시가 과연 1년에 몇 개나 될까?’ 자문해 보면 내가 이렇게 일을 쳐내듯이 전시를 기획하는 게 맞나 싶은 거죠.
최경아 맞아요. 저도 시각예술 작가로서 최근 탄소 중립, 기후 위기 관련 실천들이 많이 이슈가 되니까 어떤 방식으로든 쓰레기가 덜 나올 수 있게 전시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내 작품 모두가 추후에 판매가 되거나 미술관에 소장이 된다는 보장이 없다 보니 가끔은 지속적으로 예쁜 쓰레기를 만들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래서 나중에 혹여나 제 그림이 버려지더라도 조금이나마 지구에 무해하도록 미세 플라스틱이 방출되지 않는 천연 안료를 구입해서 쓰고 있어요. 물론 이게 얼마나 환경에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작은 노력이 쌓여서 언젠가는 변화를 만들지도 모르니까요.
이연주 전시를 만드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하나의 전시를 만들 때 수많은 쓰레기가 나오는데, 그렇다면 관람객에게 기억될 만한 새로운 전시를 보여주거나 미술사나 작가들에게 영향을 주었는가? 또는 유의미한 메시지를 던졌나? 그런 기준을 가지고 고민하게 됩니다.
최경아 비슷한 맥락에서, 같은 작가들이 계속 돌아가며 전시하고, 비슷한 전시들이 난무하는 것에 가끔 지칠 때도 있어요. 전시 양을 줄이되, 좀 더 신선한 기획을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 물론 대중들은 그걸 원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요.
이연주 그래서 제가 하는 전시 기획만큼은 좀 더 신중하게 해야겠다고 다짐해요. 예를 들어 환경에 대해 전시할 때 캠페인성 굿즈를 만들고 책을 만들어서 대중들에게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전시장 내에 파티션 만들었다가 전시 끝나면 다시 폐기하는 그런 행위들이 없어지는 게 환경에는 훨씬 더 도움이 된다는 거죠.
최경아 최소한의 에너지를 쓰자는 말이네요. 저도 동의합니다. 그런 환경에 대한 관심으로 《휘릭, 뒹굴, 탁!》(2022) 전시를 기획하시게 된 건가요?
이연주 네. 전시 연계 체험 프로그램으로 폐플라스틱 구슬로 팔찌 만들기도 했고, 전시에서 못다 한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만들어서 교육프로그램으로 진행했는데 반응이 좋았어요. 관학연계교육으로 오신 학교 선생님들이 특히 좋아하셨죠.
최경아 처음 이런 문제에 관심을 두고 기획하신 전시는 어떤 것이었나요?
이연주 청주시립대청호미술관 학예사로 근무하던 시절, 《은유적 관계》(2016) 라는 전시를 기획했어요. 인간과 동물의 관계에 대한 전시였는데, 동물권에 대해 깊이 공부하는 계기가 됐죠. 그 당시만 해도 동물권에 대해 대중들이 많이 모르던 때여서 청주에서 갓 졸업한 대학생들과 함께 공개 스터디룸을 만들고, 그곳에서 퍼포먼스, 강의, 토론 등을 할 수 있도록 기획했어요.
최경아 오… 흥미롭네요. 함께했던 작가들도 많이 배웠겠어요.
이연주 그리고 그 토론 내용이 바깥까지 송출되도록 해서, 근처의 관람객이나 등산객이 들을 수 있도록 하여 동물권이라는 생소한 주제에 대해 많이 알릴 수 있는 장치를 뒀죠.
최경아 아는 사람끼리 깊게 이야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걸 많은 사람에게 전달하는 것도 필요한 행동이죠. 좋네요.
이연주 단 한 사람이라도 그 전시를 통해서 동물권, 환경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거나 생활 습관이 조금이라도 바뀌는 계기가 되었다면 성공한 전시라고 생각해요.
최경아 분명 그랬을 겁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기후 위기에 대처하는 예술적 실천에 참여하고 계셨네요.
이연주 저는 공공기관에서 기획하는 사람이니까, 그에 맞는 사회적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최경아 그렇죠. 저도 참여했던 기획 전시로 인해서 환경에 대한 관심이 커졌으니까요. 모르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잖아요. 사실 선생님이랑 사적으로 먼저 알게 됐고 일을 같이 해본 적이 없어서 이런 공통 관심사가 있는 줄은 몰랐는데, 이번 인터뷰를 통해 알게 되어 기뻐요. 이런 이야기를 누군가와 깊게 하기가 쉽지 않잖아요.
이연주 맞아요. 그래서 이런 주제로 제 이야기를 해 보고 싶어서 참여하고 싶었습니다. (웃음) 사실 제가 처음 일한 청주시립대청호미술관이 인공호수인 대청호 옆에 있다 보니까, 환경 문제 생각을 안 할 수 없더라고요.
최경아 전시 자체에서 주는 메시지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전시와 연계된 프로그램이 더 강한 울림을 줄 때도 있는데요. 선생님이 기획한 전시 중에 그런 사례도 있을까요?
이연주 청주시립대청호미술관에서 《퇴적된 유령들》(2019) 이라는 ‘지층’에 대한 전시를 기획한 적이 있는데요. 그때 케이터링을 ‘지층’ 컨셉으로 부탁드렸었어요. 예를 들어 빵을 지층 모양으로 만든다든가 하는 식으로요. 전시와 연관된 음식을 함께 먹으니까, 자연스럽게 전시 주제에 관해 이야기하게 되더라고요. 그게 재미있었어요.
최경아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돈을 버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잘 ‘먹는’ 게 정말 중요한 행위인데, 함께 ‘잘’ 먹는다는 건 정말 더 소중하죠. 해보고 싶은 전시 기획이 있으신가요?
이연주 기후 위기를 식량 위기로 풀어내는 전시요. 기후 위기를 음식과 관계해서 푼 전시는 아직 국내에서는 못 본 것 같아서 하고 싶은데 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최경아 기후 위기가 음식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있죠. 그런데 그 연결점을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 같아요. 현재 근무하시는 수원시립미술관에서는 학예사의 역할도 있지만 에듀케이터의 역할도 하고 계시잖아요.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고 싶어 하는 선생님의 성향과 잘 맞을 것 같은데 어떤가요?
이연주 네, 성취감이 있어요. 그래서 미술관 교육이나 문화 매개 분야로 더 공부해 볼까 싶습니다.
최경아 그럼 마지막으로, 전시 기획자로서 어떻게 기억되고 싶으세요?
이연주 저는 기본적으로 사람들과 관계 맺고 공유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단 한 사람에게라도 좋은 전시로 영향을 주었던 기획자로 기억된다면 좋겠습니다.
2023.1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