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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비 Jan 25. 2020

최종 보스를 만나기 백 미터 전

금요일이면 주말에 못 걸을 각오로 운동을 한다. 긴 연휴를 앞둔 마지막 수업은 더욱 그렇다.

“명절에 많이 드실 거잖아요. 오늘 대비를 해야죠.”

필라테스 선생님은 오늘 수업의 강도를 암시하는 말로 운동을 시작한다. 짐볼에 앉아 가벼운 스트레칭으로 시작한 운동은 스쿼트를 지나 복근을 단련하는 동작으로 이어진다. 점점 강도가 높아지지만 이 정도면 따라갈 만하다. 지도자 과정을 신청한 후로 빠지지 않고 운동을 했더니 체력이 좋아진 것 같았다.

“마지막 동작 한 가지만 더 하고 마무리 스트레칭할게요.”
매트에 누워서 두 손으로 짐볼을 잡으세요. 다리는 위로 곧게 뻗으세요.
숨 내 쉬면서 상체를 일으킵니다. 짐볼을 이제 다리 사이로 넘길게요.
다리만 땅으로 내리고 올렸다가 다시 짐볼을 두 손으로 잡고 누우세요.
이 동작을 스무 번 반복하겠습니다.

에게, 힘들 거라더니 너무 시시하게 끝나버린다. 그냥 손과 발로 짐볼을 주고받는 심플한 동작을 이어가면 될 것 같았다. 만만하게 본 동작은 얼마 안가 나를 멘붕에 빠트렸다. 초반 세네 번을 제대로 따라 한 후 나머지는 어떻게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엉망인 자세로 동작을 따라 해 보려고 용을 썼지만 나의 근육들은 한도 초과라며 아우성을 쳐댔다. 분명 힘들 것이라 예고까지 한 수업을 너무 쉽게 생각했다.


두 번째 세트에서는 정신을 좀 더 집중해보기로 했다. 이 앙 물고 버티면서 겨우겨우 동작을 따라 했지만 열 번을 넘기지 못했다. 그래도 정신을 다잡고 마무리 버티기 자세까지 따라갔다. 상체와 다리를 공중에서 띄워 몸을 V자로 만든 상태에서 10초간 버티면 운동이 끝난다. 클라이맥스의 고통이다. 이때의 10초는 드라마를 보는 한 시간보다 분명 길다.

이제 더 못 버틸 것 같지만 크게 숨을 한번 쉬고 잠깐 멈춘다. 그 고통을 견뎌야만 근육은 오늘보다 단단해진다. 마지막 카운트까지 버티고 한숨을 몰아쉬며 둘러보니 나만 죽을 고비를 넘긴 건 아니었나 보다. 모두들 이제 살았다는 표정에 대자로 드러누웠다.

겨우 겨우라고 표현하는 것이 딱 맞겠지만 어떻게든 하루의 운동을 해냈다. 나를 속이지 않고 견뎠으니 언젠가는 나의 근육들도 보상해줄 날이 있으리라 믿는다.  


요즘 나의 필라테스는 슈팅 게임 같다. 만만한 상대를 지나고 중간보스를 무찌르면 최종 보스가 나타난다. 최종 보스는 대부분 무자비하게 미사일을 날리는 스타일이다. 빠져나갈 틈 없이 촘촘한 미사일 사이를 피해 다니며 살아남으려면 엄청난 힘과 집중력이 꼭 필요하다.  지도자 과정의 수업 강도가 어마어마하다는 소문을 들어 바짝 긴장한 상태다. 최종 보스 같은 지도자 과정의 수업까지는 어떻게든 근육의 보은을 받았으면 좋겠다.

추억의 게임 갤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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