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비 Jan 27. 2020

역대급 명절 선물

설 연휴에도 남편은 출근을 했다. 일 년 내내 쉬는 날 없이 돌아가는 회사라 명절에도 누군가는 일을 해야만 했다. '인정 없네'라고 야속해하며 명절도 가족과 즐기지 못하는 남편을 배웅했다.


퇴근하는 남편 손에 택배 상자가 하나 들려 있었다. 연휴라 물건을 주문한 기억이 없었다.


"택배 상자는 뭐야? 나 산 거 없는데."

"어~ 설 선물이라고 아주머니 직원이 주시더라"


"명절 선물을 회사에서 준 게 아니고?"

"응~ 같이 일하는 아주머니 직원이 있는데 직접 만든 거라는데 열어 봐~"


명절에 회사에서 햄 세트, 참치캔 세트는 받아 봤어도 직원들끼리 선물을 한다니 낯설고도 정겨웠다. 뭐가 들었을까 궁금해 얼른 상자를 열어보았다. 


손바닥 만한 도토리묵 두 개와 사과 세 알. 


택배 상자 만큼이나 투박하고 신선한 선물이었다. 도토리묵 비닐을 벗기며 한 조각 떼어 입에 넣었다. 코 끝이 시큰했다. 명절에도 나와 일하는 동료들 생각해 손수 만들어온 정성이 전해졌다. 


저녁 만들던 손을 분주히 움직여 양념장을 하나 더 만들었다. 도토리 묵 한 덩이를 가지런히 잘라 담고 양념장을 곁들였다. 고소하고, 향긋하고, 짭조름하면서 씁쓸하다. 시골살이하시는 시부모님 덕에 먹어본 그 맛이다.


이튿날은 상추, 당근 깨끗이 씻어 잘라 넣고 도토리묵무침을 만들어 먹었다. 큼직하게 썰은 묵 조각을 입안 가득 넣고 오물거리면 행복했다. 아이도 마주 앉아 데굴데굴 도토리로 만든 묵을 신나게 먹었다.


아직 한 덩이가 더 남았다.  이번에는 어떤 행복한 맛으로 요리할까 기대된다. 그보다 귀한 선물을 받은 보답을 하고 싶은데 도저히 아이디어가 없었다.


"보답을 해야 할 것 같은데"

"그러게, 뭐가 좋을까?"


"선물이 너무 컸어. 도저히 뭘로 답해야 할지 모르겠네."

"맛있게 잘 먹었다고 엄지 척 해드릴게"


새해에 큰 마음을 받았다. 연휴 내내 행복했으니 이만한 덕담이 없다. 행복 주셔서 고맙습니다.


©unsplash


매거진의 이전글 까식가 남편과 살고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