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자니아] 세렝게티 국립공원
어른이 되면 한 해가 지나는 게 무덤덤해진다. 특별한 상황이 아니라면, 나이만 먹을 뿐 작년과 다를 게 없기 때문이다.
새해가 됐다고 해서 새로운 직장에 가는 것도 아니며, 작년에 했던 일을 올해 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어른의 삶이란, 어제와 같은 오늘을 반복하는 지루한 것이다.
하지만 세렝게티에서의 오늘은 어제와 달랐다. 어제는 사자를 봤지만 오늘은 보지 못했다. 오늘 치타를 봤지만 내일도 치타를 본 다는 보장이 없다. 예측 가능한 순간이 없기에 하루하루가 새로웠다.
설레는 마음으로 셋째가 좋아하는 코뿔소를 만나기를 기대하며 사파리 차량에 탑승한다. 코뿔소는 예민해 사람들이 다가오는 것을 기가 막히게 알고 숨어버리기에 막상 보기가 어렵다고 한다.
달리던 차가 갑자기 멈췄고, 우리 앞으로 코끼리 무리들이 지나간다. 자주 보는 친구들이기에 관심을 두지 않자 가이드가 우리들에게 흥미로운 이야기를 꺼낸다.
“어른 코끼리들 사이에 있는 아기 코끼리들이 보여? 아기 코끼리들을 보호하기 위해 저렇게 이동하는 거야”
어미 다리사이에 껴서 이동하는 그 모습을 담기 위해 사람들이 하나둘씩 일어나 모두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그때, 마지막으로 걷던 어른 코끼리 한 마리가 갑자기 차를 향해 귀를 펄럭이며 신경질적인 소리를 냈다. 그와 동시에 가이드가 자리에 앉아 움직이지 말라고 한다. 순간 코끼리가 우리를 향해 돌진하는 건 아닌지 무서웠다. 우리를 위협하는 코끼리를 제외한 다른 어미 코끼리들은 주변을 경계하며, 아기 코끼리들을 안 보이게 숨기기 시작했다.
시간이 멈춘 듯 몇 분의 정적이 흘렀다. 코끼리들이 조심스럽게 자신들의 길을 가기 시작하자, 그제야 가이드가 설명을 해준다. 우리들이 일어섰을 때 차가 흔들렸고, 그 모습을 본 우두머리 코끼리가 위험하다고 판단하여, 우리에게 위협을 가한 것이라고. 아기 코끼리들이 있기에 더욱 예민하게 반응한 것 같다는 설명도 덧 붙였다. 새끼를 위하는 모습은 코끼리나 사람이나 다 똑같다.
코끼리 무리가 이동한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리니, 또 다른 코끼리 한 마리가 천천히 걷고 있다. 혹시 무리를 놓친 건가 싶어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유심히 보는 순간, 다리사이로 무언가 보였다. 내 마음을 읽은 듯 가이드가 홀로 남은 코끼리를 가리키며 설명을 한다.
“다리사이에 혹 같은 거 보여? 저 코끼리는 며칠 내로 죽을 거야. 암에 걸렸거든. 그래서 지금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혼자 죽으러 가는 거야.”
아파서 죽는 것도 서러운데, 왜 도대체 , 외롭게 혼자 죽음을 맞이 하려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엄마가 방에 있는 시간이 언제부턴가 늘었다. 기운 없이 누워있던 엄마가 컨디션이 좋아진 날이 있었다. 가을바람이 선선하게 불던 그 날 엄마와 둘째는 집 뒤에 있는 밤나무의 밤을 따러 갔다.
따온 밤을 찌고 있을 때, 슬며시 둘째가 내 옆으로 다가와 엄마와 했던 이야기를 들려줬다. 엄마가 내년에도 밤을 딸 수 있을까라는 이야기를 무덤덤하게 뱉었다고.
엄마는 자식들 앞에서 무너진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다. 의사 선생님께 얼마나 살 수 있느냐고 묻는 그 순간조차도 감정적으로 변해 화를 내지 않았다. 내가 왜 이것밖에 못 사냐며 억울해하며, 화를 내도 되는 순간인데도 엄마는 그러지 않았다. 대신 차분하게 그리고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그런 엄마가 밤을 따며 무덤덤하게 내뱉었다는 그 말을 듣는 순간, 혼자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는지가 느껴졌다. 우리 앞에서는 현실을 받아들인 것처럼 보였지만, 홀로 울고, 화내고, 원망도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안쓰러웠다. 우리한테 기대도 되는데 엄마는 그게 너무 싫었나 보다.
홀로 죽으러 가는 코끼리의 모습에서 엄마가 보였다. 어쩌면 코끼리도 자신이 무너지는 모습을 자식에게 보이기 싫어서 홀로 떨어진 게 아닐지.
엄마의 죽음 이후로 종종 우리 남매는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어떻게 죽었으면 좋겠다는 바람부터 죽고 난 후의 절차까지. 심각하지 않게 웃으면서 그렇지만 진지하게 이야기를 한다.
그러다 보면 하루하루 무탈하게 사는 지금이 얼마나 행복하지를 새삼 느끼게 된다. 반복되는 지루한 어른의 삶일지라도 오늘 하루 이상 없이 보냈다면 그것만으로도 내 인생의 하루를 잘 살았노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