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짝 스매싱이 필요한 순간

[말레이시아] 말라카 & 쿠알라룸푸르

by 삼남매

여행 23일째. 자매의 싸움이 일어났다.


어린 시절 대부분이 그렇듯 우리 자매는 엄청 싸웠다. 싸운 이유는 분명 있었다. 그러나 싸우다 보면 이유 따윈 상관없게 된다. '너 말투가 왜 그래?' '표정이 왜 그 따위야?'와 같이 상대방의 말투, 표정, 몸짓을 탓해가며 싸웠다.

그럴 때 엄마는 조용히 지켜보다가, 엄마 앞에서 아주 잘하는 짓이라며 더 싸워보라고 한 마디 하신다. 이때 멈춰야 하는데 가끔은 멈추지 못하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가며 싸울 때가 있다. '그. 만. 해'라는 엄마의 날카로운 마지막 경고가 들리면서 등짝 스매싱이 날아오면 그제야 싸움을 멈춘다.



스리랑카 이후의 목적지는 네팔이었다. 그런데 직항으로 가자니 생각보다 비행기표가 비쌌다. 이리저리 찾다 보니 스리랑카에서 말레이시아, 말레이시아에서 네팔로 가는 게 훨씬 저렴하다는 걸 알게 됐다.


예정에 없던 스탑오버의 나라 말레이시아. 3박 4일 짧은 일정 탓에 말라카에서 1박, 쿠알라룸푸르에서 2박을 하기로 했다.

새벽 5시 공항 도착.

비행기 안에서 내내 배가 아프다던 셋째가 화장실을 갔다. 나도 화장실에서 세수도 하고 양치질도 하며, 셋째를 기다렸다. 버스를 타러 가는 길에 화장품 코너를 발견하고 들어가서 테스트용 로션을 발랐다.


버스표를 사려고 하니, 말라카행 첫차가 5분 전에 떠났고 했다. 다음 버스표를 사고 기다리면서 내가 말했다. "로션 바르지 말고 그냥 올걸. 그랬음 탓을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이제 와서 후회해봤자지"라고 둘째가 응수했다. 분위기가 묘하게 흘러간다.


"너 말투가 왜 그래? 뭐 화난 거 있어?"

"아냐 화난 거 없어. 그냥 한말이야."


"야 아니긴 뭐가 아냐. 니 표정이 뭔가 있는데!"

"언니 우리 피곤하니깐, 그냥 좀 쉬자"


집이었음 말투가 맘에 안 든다며 큰 소리로 짜증 냈을 텐데 공공장소라 감정을 억제하고 차근차근 따져 물으니 더 힘들었다.


사실 여동생은 로션을 바를 때부터 짜증이 났다고 했다. 버스표를 사고 시간이 남으면 그때 해도 될 것 같은데 저러고 있다고. 차마 싸울까 봐 말을 안 하고 있다가, 내가 후회를 하니 순간 화가 났다고 했다.


버스가 올 때까지 말싸움이 계속되었고, 우리를 지켜보던 셋째가 한마디를 던졌다.


"그만해라, 이러려고 여행 왔니?"

엄마의 등짝 스매싱과 같은 효과가 밀려온다.

등짝 스매싱을 맞고 난 후 별것도 아닌 일로 싸웠다는 사실에 서로 웃음이 났다. 다시 우애 좋은 자매가 되어, 말라카 맛집이라 소문난 '존커 88'에서 락사와 아이스까장을 먹었다. 셋째에게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다시는 싸우지 말자며 다짐을 했다.



물론 다짐이 굳어지기도 전에 쿠알라룸푸르에서 또 싸우고 또 화해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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