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했던 일이 더 이상 당연하지 않을 때

[네팔] 랑탕히말라야

by 삼남매

일요일 아침, 눈을 비비며 거실로 나간다. 엄마는 아침을 준비하고 아빠는 TV를 본다. 나는 소파에 앉아 아빠와 함께 엄홍길 대장의 히말라야 등반 다큐를 본다. 그때였다. 히말라야가 내 버킷리스트에 올라온 것이.



둘째의 버킷리스트 덕분에 우린 랑탕 히말라야를 오르게 됐다. 카트만두 숙소에서 트레킹에 필요한 물품만 작은 배낭으로 옮기고 큰 배낭은 맡겼다. 그리고 10시간 이상 걸리는 버스를 타고 트레킹의 출발지인 사베루베시(Syprubesi)로 간다.


우리의 히말라야 트레킹 최종 목적지는 칸진곰파(Kyanjin Gompa)였다. 사베루베시(Syprubesi)에서 출발해, 라마호텔(Lama Hotel)과 랑탕마을(Langtang village)을 거쳐 칸진곰파(Kyanjin Gompa)로 가는 일정이었다.


돌로 된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느라 허벅지가 터져 나갈 것 같았다. 자신 때문에 우리가 고생하는 것 같아 미안해하는 둘째. 오늘이 첫날이라 제일 힘들었던 것이라며 그녀를 다독였다. 하지만 나의 속마음은 '우리 그냥 내려가자'였다.


둘째 날도 어김없이 걸었다. 우리 앞에 걷는 외국인은 길을 안내하는 가이드와 그들의 짐을 짊어진 세르파와 함께했다. 그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모두 돈이기에 우린 그들과 함께할 수 없다. 각자의 어깨에 배낭을 메고 걸을 뿐이다.

방울소리가 들린다. 말이 다가오고 있다는 신호다. 차가 다닐 수 없는 길이기에 이 곳에선 말이 짐을 실어 나르는 중요한 수단이다. 목에 달린 방울소리가 들리면 말들이 지나갈 수 있게, 사람이 길 옆으로 비켜줘야 한다. 그렇게 우리와 함께 말에게 밀려난 네팔인이 말을 건다.


"어디까지 가니?"

"우리 랑탕마을까지 가."

"랑탕마을보다 문두마을이 더 아름다워. 거기서 내가 숙소를 운영하는데 올래?"


따라가면 호갱이 되는 거 아닌가 싶었지만, 사람 좋은 미소를 띠며 말을 거는 그를 믿고 가보기로 했다.


우리보다 먼저 방문한 선배들의 블로그를 읽다 보면 발품을 팔지 않아도 머물기 좋은 숙소를 찾을 수 있다. 그렇게 찾은 숙소를 뒤로하고, 사람 좋은 미소에 홀려 후기하나 없는 'Tip Top게스트하우스’에 머무르게 되었을 땐 불안했다. 하지만 이 곳은 우리가 트레킹을 하면서 지낸 숙소 중 가장 따뜻했던 게스트 하우스가 되었다.

샤워를 하고 난로가에 앉아 따뜻한 차를 마셨다. 나른한 기분에 행복해지기까지 하자, '이 맛에 트레킹을 하는 건가?'라는 다소 건방진 생각까지 해봤다.


저녁과 뜨거운 물을 주문하고 그릇 얻으러 주방으로 갔다. 오늘이 나와 막내를 걷기 지옥으로 초대한 둘째의 생일이기 때문이다. 끓여주지는 못해도 미역국은 먹여야겠다는 생각에 인스턴트 미역국을 몰래 가져왔다.

“엄마 미역국 먹고 싶다.”

따뜻한 국에 밥을 말아먹던 둘째가 말했다.


생일이 되면 엄마는 소고기를 듬뿍 넣어 미역국을 끓여 주셨다. 그리곤 늘 먹던 반찬에 우리가 좋아하는 음식 한두 개 더 해주는, 그런 평범한 생일상을 차려 주셨다. 우리가 커가면서 때론 외식을 할 때도 있었지만 미역국만큼은 항상 끓여 주셨다.


엄마가 아파 우리의 생일날 미역국을 끓일 수없게 되었을 때, 엄마는 생일날인데 미역국도 끓여 주지 못한다며 미안해하셨다. 그 모습은 항상 내 머릿속에 사진처럼 남아있어 생일 때만 되면 나를 슬프게 했다.



이제는 엄마가 차려주던 생일상도, 일요일 아침밥상도 없다. 너무 당연했던 일상이었는데 이제는 추억해야 하는 일이 되어버렸다.


엄마의 밥상이 당연하다고 여기고 있을 그때의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엄마가 해준 밥 먹어서 부럽다. 남기지 말고 다 먹어. 언젠가 그리워질 테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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