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에미레이트] 두바이
밤 비행기가 좋다.
엄밀히 말하면 새벽에 도착하는 스케줄을 가진 비행이 좋은 거다. 공항에서 몇 시간 버티다 숙소로 가면, 하루의 숙박비를 아낄 수 있기 때문이다.
네팔에서 두바이로 가는 비행도 우리가 좋아하는 밤 비행이었다. 잔 듯 안 잔 듯 몽롱한 상태로 두바이 공항에 도착했다. 택시를 잡고 숙소 주소를 주며 얼마인지 물어본다.
"40 디르함"
나쁘지 않은 가격인 것 같아 택시에 올라탄다.
뻥뻥 뚫린 길을 달리던 중, 기사가 말한다.
"원래는 이 고가 위로 올라가야 하는데, 지금 공사 중이라 다른 길로 돌아가야 해. 그러니깐 돈을 더 줘야 해"
나쁜 놈.
보아하니 어제오늘 갑자기 막힌 길이 아니다. 돈을 더 받으려고 쌩쑈를 하는 건지, 돌아가야 한다는 기사의 말도 진짜인지 아닌지 믿을 수가 없다. 이래저래 화가 났지만 여기서 내리라고 하면 숙소로 갈 방법이 없었기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숙소로 갔다.
택시에서 내려 트렁크에서 짐을 꺼내고 처음 그가 말했던 금액만 주었더니 우리를 쳐다본다. 그의 눈 빛을 무시하고 짐을 챙기는데 그가 10디르함이라도 더 달라며 다가와 손을 내민다. 무서웠지만 우리는 셋, 그는 하나. 우리가 우세하기에 말로 싸워보기로 한다.
"너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믿을 수가 없어. 그래서 처음에 말한 가격 외엔 줄 수 없어."
단호하게 둘째가 말하자 뭐라 하더니 가버렸다. 아랍어는 알아들을 수없었지만 욕이었던 것만큼은 몸으로 느껴졌다.
"들어가지 말자. 입장료가 어마어마하네."
소위 두바이의 랜드마크라는 곳은 다 입장료가 비쌌다. 두바이만 온 여행이라면 언제 또 오겠냐는 마음으로 들어가 볼 테지만, 아직 가야 하는 나라가 많은지라 무료로 할 수 있는 것만 하기로 했다.
그런 면에서 시장은 최고다. 볼 것도 많고, 먹을 것도 많고, 무엇보다 그 나라만의 특색을 느낄 수 있어서 가성비 갑인 여행지다. 내 눈을 사로잡는 기념품이 많았다.
"이거, 얼마예요?"
나와 사장님 사이에 눈치 게임이 시작됐다.
여행 중 시장에서 물건을 살 때, 파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처음 부른 가격은 진짜가 아니라는 걸 서로 암묵적으로 안다.
가끔 주말에 우리 가족은 강화도로 바람을 쐬러 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엄마는 이런 곳에서 사야 물건이 좋다며 시장에 들러 젓갈과 생선을 종종 샀다.
“사장님, 이거 얼마예요?”
엄마의 질문과 동시에, 엄마와 사장님 사이에 미묘한 기류가 흐른다. 몇 번의 티키타카가 오고 간 후, 서로 흡족한 가격으로 웃으며 협상을 마무리한다.
물건이 엄마의 기대에 부합하면, 엄마는 그 가게에 단골이 된다. 단골이 되면 더 이상의 티키타카는 없다. 사장님을 믿고 물건을 살 뿐이다.
나와 중동 사장님 사이에서의 협상은 결렬됐다. 아쉽지만 '지금 사면 여행하는 내내 배낭에 넣고 다녀야 하는데 짐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나를 위로했다.
두바이를 떠나는 날도, 두바이에 온 그 날처럼 밤 비행기다. 비행기 타는 그 시간까지 열심히 다니자며 길을 나선다. 시원한 쇼핑몰에서 나와 10분만 걸어도 땀으로 범벅되는 탓에, 저녁을 먹으러 가는 식당까지는 택시를 타기로 한다.
미터기에 '7'이라는 숫자가 찍혔고, 미터기를 끄며 택시기사가 말을 한다.
"12 디르함 주면 돼"
"7이라고 찍힌 거 봤는데 왜 12 디르함이야?"
"택시 기본요금은 12 디르함부터야. 12 디르함 주면 돼."
너무도 당당하게 그가 말한다. 당당한 그의 모습 때문이었을까, 12 디르함을 주고 내렸다. 내리고 나서야 '7 디르함 주고 내리면 되는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눈탱이를 맞지 않으려 노력했건만 끝내 어설픈 수법에 당해버리고 말았다.
제아무리 완벽하게 노력한다고 해도 바보같이 눈탱이를 맞을 때가 있다. 돈의 액수보다 바보같이 당했다는 사실에 짜증이 난다. 그러나 내 몸 안 다치고 법으로 시시비비 가릴 정도가 아니라면 욕 한번 시원하게 해 주고 넘기는 게 답인 것 같다.
(여행 후 알게 된 사실. 두바이의 택시비 기본요금은 12디르함이 맞았다. 그의 미터기가 고장 났던 걸까? 의심하고 욕했던 그 순간이 미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