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든 살의 멋진 그대에게

[아제르바이잔] 바쿠

by 삼남매

여든의 엄마는 어떤 모습일까?


백발의 할머니가 되어 집으로 놀러 온 손주들을 반기는 평범한 할머니의 모습이지 않을까? 한 평생 깔끔쟁이로 살아온 터라 집에 들어온 손주들에게 손부터 씻고 오라고 하셨을 것 같고, 우리 준다고 이것저것 만들어 논 음식을 내오느라 정신이 없을 것 같다.


집으로 돌아갈 때쯤이면 바리바리 음식을 챙겨서 우리에게 들려 보내려 했을 것이고, 우린 뭘 이런 것까지 주냐며 엄마나 드시라고 하며 서로 투닥거렸을 것이다. 가끔은 친구분들과 바람을 쐬러 다니시면서 우리들 때문에 짜증이 나, 이 꼴 저 꼴 보기 싫다며 욕도 했을 것이다.


궁금하다. 평범한 여든 엄마의 일상이. 그리고 주름진 얼굴이.



저렴하게 하루를 머무를 수 있기에 호스텔엔 언제나 젊은 사람들이 많다. 바쿠의 호스텔도 여느 호스텔과 마찬가지로 젊은이들로 붐볐다.


“헤이다르 알리예프 센터만 갔다가 쉽시다.” 길잡이 둘째가 말했다.


나와 셋째가 어딘지 감을 못 잡자, “동대문 DDP 설계한 자하 하디드가 만 든 곳. 몇 번을 말하냐!”

아침부터 혼나며 길을 나서는데 복도에서 동양인 할아버지 한 분과 마주쳤다.

'일흔은 훌쩍 넘어 보이시는데 호스텔에?'

젊은 이들 사이에 있는 그는 단연 눈에 띄었다. 그의 국적, 나이, 이곳에 왜 왔는지 모든 게 궁금해졌다.


할아버지를 다시 보는 건 이틀이 지나서였다. 야경을 보러 가기 전까지 쉬기 위해 숙소에 다시 돌아왔을 때, 그는 스태프와 지도를 들고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개운하지 않은 표정으로 우리 옆 빈자리에 앉으셨고, 우린 자연스럽게 서로 인사를 주고받았다.


할아버지는 일본인이셨고, 홀로 여행 중이라고 하셨다. 우리가 다음에 갈 조지아를 이미 다녀오셨으며, 내일 아침 일찍 호스텔에서 연계해준 투어를 갈 예정이라고 하셨다. 그런데 집합 장소인 여행사까지 가는 길을 찾아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고 하셨다. 손에 들린 지도의 구김 상태만 봐도 얼마나 걱정하셨는지 느낄 수 있었다.

"우리가 좀 봐도 될까요?"

우리의 요청에 손에 들린 지도를 건네주셨다. 여행사는 올드타운 안에 위치해 있었다. 올드타운은 어제 관광했던 지역이라 다시 간다면 여행사를 쉽게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걱정이 많이 되시면 지금 저희랑 여행사에 가보실래요? 여기가 어딘지 알 것 같아서요."

괜찮다고 사양하는 할아버지에게 우리도 올드타운을 관광하러 나가려던 참이라고 대충 둘러대며 함께 나갔다.


"이 건물이 보일 때 까지는 직진만 하셔야 해요."

"이 골목으로 가시면 안 돼요."

내일 혼자 헤매지 않고 도착하 실 수 있게 그의 속도에 맞춰 걸으며 이것저것 설명을 드렸다.


드디어 여행사를 찾았다. 안으로 들어가 할아버지의 이름이 적혀 있는지도 확인했다. 그제야 할아버지가 환하게 웃으신다. 우리에게 연신 고맙다 하시며 저녁을 사주 시겠다고 하신다.

여행자의 마음은 여행자가 아는 법.

내일 아침 알지 못하는 곳을 찾아가야 하는 그 불안한 마음을 알기에 도와드렸을 뿐인데 자꾸 저녁을 사시겠다고 한다. 계속 거절을 하기가 어려워 아이스크림으로 타협을 봤다.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서로 궁금했던 것을 물어본다. 우리는 그의 나이와 홀로 온 이유를, 그는 우리의 관계와 얼마나 여행했는지를...


여든이 된 그는 10년 전 아내를 먼저 떠나보내고 홀로 집에서 TV를 보며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그러 던 중 여행에 관련된 프로그램을 보고, 갑자기 여행을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 생각만으로도 멋진 할아버지는 홀로 여행을 하려면 영어가 필수라고 생각해, 일흔이 넘은 나이에 영어 공부를 시작했고 지금도 공부 중이라고 하셨다.


나는 일흔이 넘은 나이에 영어공부를 하고, 여든이 된 나이에 홀로 여행을 할 수 있을까?


선뜻 '할 수 있다'는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 그 나이에 무언가를 새로 배운다는 걸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무릎만 성하다면 패키지여행은 갔을 것 같기는 하지만, 홀로 여행은 꿈도 꾸지 않을 것 같다. 그와 함께 올드타운을 걸으며 내내 생각을 해봐도 그런 도전은 못 할 것 같다.

어둑어둑 해진 거리에 환하게 켜진 불빛을 보며 그가 또 웃는다. 사진을 찍어 달라며 오래된 카메라를 우리에게 건네준다. 카메라 속 그의 미소를 바라보고 있자니 문득 엄마의 여든이 궁금해졌다. 여든의 엄마는 어떤 모습일까?



"내년에 오사카에서 다시 만나요."

기약 없는 약속인 거 알면서도 말하고 싶었다. 오사카는 여기서 멀지 않으니, 마음만 먹으면 만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 내년에 내가 살아 있다면 다시 만나자."

들어본 적 없는 답변이다. 살아 있다면... 이라니. 마음이 또 싱숭생숭해진다.

지금도 어딘가를 여행하고 있을 멋진 그대에게.

당신 덕분에 도전에는 나이가 없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내년에도, 내 후년에도 좋은 곳만 여행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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