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아] 카즈베기& 바투미
"그래도 월드컵 하는 날인데 치킨 시키자"
자기 전에 먹으면 몸에 안 좋다는 엄마의 생각 때문에 우리 집엔 야식이란 게 없었다. 그래서 월드컵, 올림픽, 시험을 잘 본 날 등, 핑곗거리가 생기면 엄마를 설득해 야식을 시켜먹곤 했다.
흔치 않은 기회이기에 신중해야 한다. 맛없는 음식을 선택하게 되면 기회를 날린 것 같아 먹는 내내 짜증이 난다. 그러하기에 우린 어떤 메뉴를 선택해야 후회가 없을지를 생각하며 심도 있게 토론한다.
메뉴가 정해지고 음식이 도착하면 TV 앞에 상을 펼치고 먹기 시작한다. 엄마는 밤에 많이 먹으면 살찐다고 잔소리하시면서도, 먹는 우리를 보며 미소 지으실 때가 있다.
조지아라는 나라에 대해서 아는 것이 별로 없었기에 검색을 시작한다.
코카서스 3국 중 하나, 트빌리시가 수도이고, 자연경관이 아름다우며, 저렴한 물가가 매력적인 나라. 방대한 설명들이 쏟아진다. 그중 마음에 쏙 드는 이야기가 눈을 사로잡는다.
'조지아는 러시아 시인 푸쉬킨이 조지아 음식 하나하나는 마치 시와 같다고 했을 정도로 음식이 맛있는 국가다.'
음식이 맛있는 국가다! 드디어 셋째가 바빠질 시간이다. 여행을 하면서 각자의 역할이 생겼다. 첫째는 재무에 관련된 일을, 둘째는 촬영에 관련된 일을, 셋째는 음식에 관련된 일을, 나름 본인이 잘할 수 있는 일을 맡았다.
셋째에게 "어디가 가고 싶은데 있어? 뭐하고 싶은 거 있어?"라고 물어보면 "난 다 상관없어. 누나들이 정해."라고 대답하기 일 수다.
그런 그가 유일하게 관심을 갖는 분야가 음식이다. 인터넷으로 전통음식을 찾을 뿐 아니라, 현지인들이 어떤 음식을 먹는지, 어떤 음식을 사 가는지를 매의 눈으로 관찰한 후, 우리에게 먹어보자며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할 정도다. 신기하게도 그렇게 먹은 음식들은 실패하는 법이 없었다.
여행 마지막 날, 바투미에서 흑해를 바라보며 여행 소감을 나눈다. 뭐가 기억에 제일 남느냐는 질문에 셋째가 대답한다.
"우빠닭 처음 먹었을 때"
그 대답이 불씨가 되어 여행 소감은 자연스럽게 음식 소감으로 바뀌었고, 각자의 원픽을 뽑는 시간이 되었다.
첫째의 원픽
먹고 뒤돌아 서면 배가 고프다고 하는 동생들 덕분에 점심 먹은 지 두 시간도 안돼서 먹게 된 하차푸리. 배가 부른지라 기대가 없었는데 내가 다 먹었다. 치즈와 버터와 계란과 빵의 조화라니! 게다가 화덕에 구웠다. 배부른 상태에서도 맛있게 느껴지면 그건 정말 맛있는 거!
둘째의 원픽
a.k.a 콘브레드. 로비오(Lobio)라는 콩 스프와 함께 먹는 음식인데, 모든 음식을 제치고 단조로운 이 빵을 고른다. 겉은 바삭 속은 촉촉한 게 본인 취향이란다. 옥수수 맛만 나는데 그 단순한 맛이 자꾸 생각이 난다고 한다. 하기사, 빵집 가도 식빵만 사는 그녀인데 그녀 다운 선택이다.
셋째의 원픽
우리가 부르는 이름은 우유에 빠진 닭. 일명 '우빠닭'이다. 우유와 마늘로 만든 소스도 느끼하지 않고 맛있었지만, 무엇보다 닭고기가 야들야들한 게 최고였다. 이 맛을 잊지 못해 다른 곳에서도 시켰으나 이 곳만큼 맛있지는 않았다.
지극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원픽 놀이에 서로 만족하며, 슬슬 저녁을 먹으러 이동한다.
음식과 와인을 고른 후 주문을 한다. 주문을 받고 돌아서는 그녀를 둘째가 다급하게 불러 세우고는 핸드폰을 보여준다.
'소금은 적게 넣어 주세요'
처음 조지아 식당을 갔을 때, 다른 맛이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음식이 너무 짰다. 그 식당 문제인가 했었는데 대체로 한국인들에게는 조지아 음식이 짜다고 한다. 그래서 구글 번역기로 '소금은 적게 넣어주세요'라는 말을 조지아어로 찾은 뒤 매번 주문할 때 보여주기 시작했다.
오늘도 좋은 선택이었다며 흡족해하고 있을 때, 셋째가 넌지시 제안을 한다.
"누나 여기 온 사람들 보니깐 다 만두 먹는다. 여기 만두 맛집인가 봐 우리 먹어보자."
먹느라 정신없었는데 언제 관찰을 했는지 그렇게 또 힌낄리(Khinkali)를 시킨다.
재무담당자로써 먹성 좋은 녀석들을 보고 있자니 걱정될 때가 있다. 한정된 예산으로 여행을 해야 하는데 식비로 돈을 너무 많이 지출하는 건 아닌가 싶을 때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 사주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 입꼬리가 올라간다.
엄마가 치킨을 먹는 우리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던 이유를 조금이나마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