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로서의 삶만 살게 해서 미안해

[터키] 트라브존부터 이스탄불까지

by 삼남매

수업이 끝나고 집에 오면 엄마가 있었다. 엄마는 특별한 일이 아니면 항상 집에 계셨다. 엄마에게 특별한 일이란 시장을 본다거나, 친구분들을 만나거나, 문화센터를 가는 정도였다.


지금 생각하면 특별하지도 않은 일인데 항상 집에 있던 엄마가 없으면 그게 특별한 일로 느껴졌다.


내가 본 엄마의 삶은 단조로웠다. 우리를 먹이고, 보살피고, 집안을 돌보느라 온전하게 본인의 삶을 즐기기 힘들었다.


게다가 우리 삼남매의 나이 차이가 꽤 나는지라 하나를 어느 정도 키우고 나니 또 하나를 키워야 했고 둘을 다 키웠나 싶었는데 셋째가 태어났다.


과연 엄마는 엄마의 삶에 만족했을까?



동양과 서양의 문화가 공존하는 나라 터키.

터키는 볼 것도, 할 것도, 먹을 것도, 많은 나라라고 듣긴 했지만 막상 여행을 와보니 기대 이상이었다.


라마단 기간에 여행을 했기에 먹는 문화는 충분히 즐기지 못했지만, 도시마다 각기 다른 매력 덕분에 모든 게 좋았다.


트라브존 수멜라 수도원

조지아에서 육로로 국경을 넘은 터라 트라브존이 터키 여행의 시작이었다. 우리가 갔을 땐 내부 공사 중이라 수도원 안은 볼 수 없었다. 그러나 나무가 우거 진사이로 산속 절벽 위에 세워진 수도원을 처음 봤을 때의 그 심쿵함이란. 그래 이거면 됐다!


카파도키아 벌룬투어

열기구 첫 경험. 바구니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부터 설레었다. 어둑한 하늘 사이로 해가 떠올랐을 때, 뭉클하면서 눈물이 났고 갑자기 엄마가 보고 싶었다. 엄마가 우리 옆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던 벌룬투어였다.


욀뤼데니즈 패러글라이딩

어느 여행자가 패러글라이딩 하기에 좋은 곳이라 하여 계획 없이 갔던 도시. 푸른 바다를 보며 하늘을 나는 기분이 좋아 쉴세 없이 웃음만 나왔다.


파묵칼레 석회온천

어린 시절 처음 파묵칼레의 사진을 보고 외계행성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어른이 되면 반드시 가봐야지 했던 이곳. 석회 온천에 앉아 해지는 저녁 하늘을 보니, 어린 시절 소원 하나를 이룬 내 모습이 기특했다.


셀추크 고대도시 에페수스

세계사 시간에 들어왔던 고대 문명이 잔존하는 도시. 가이드 없이 관광했던 터라, 직접 가이드 북을 만들어서 다녔던 곳이다. 그래서 인가 역사 잘알못이지만 셀수스 도서관도, 쿠레테스 거리도 모든 게 머릿속에 남아있다.


이스탄불 그랜드 카페

셀추크에서 야간 버스를 타고 도착한 이스탄불. 우연히 들어간 그랜드카페. 따뜻한 터키쉬 커피와 퀴네페를 먹으며 블루모스크를 보던 그 시간을 잊을 수 없다. 너무 이른 시간이라 다른 손님 없이 우리끼리만 있다는 사실이 즐거웠다.



좋은 것을 보고, 맛있는 것을 먹고, 즐거운 경험을 할 때마다 엄마가 생각난다. 엄마도 터키를 좋아했을 텐데...


우리를 키우기 위해 나중으로 미뤘던 일들을 하나도 하지 못하고, 결국 엄마로서의 삶만 살다 간 나의 엄마. 어렸을 때부터 엄마의 꿈이, 엄마가 되는 게 아니었을 텐데 후회는 없었을까?


우리 때문에 다른 삶을 살 수 없었던 엄마한테 너무 미안하다. 그리고 우리만 좋은 거 보고, 맛있는 거 먹고, 즐거운 것 같아서 더 미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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