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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uren Aug 14. 2019

뭣이 중헌디?

 


어떻게 옆구리가 오목하지 않고 볼록할 수가 있지?  이런 오만방자한 생각을 불과 몇 년 전까지 했었다.  찰떡 같이 붙어있는 옆구리 라인과 아랫배를 보며 나는 살이 안 찌는 체질을 타고났다고 생각했고, 좀 뻣뻣하긴 해도 날렵한 순발력과 지구력 면에서도 비슷한 연령대와 비교하면 전혀 뒤처지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운동은 그저 '할 일이 없거나 심심할 때 하는 것' 정도로만 여겼다.





매일 꽃과 함께, 얼마나 좋으세요!


변명 같지만 사실은 나를 돌아볼 여유가 없이 너무 바빴다. 플로리스트는 늘 꽃과 함께이기 때문에 왠지 스트레스도 없을 것 같고, 꽃 덕분에 하는 일이 아름다워 보이거나, 우아해 보이기도 해서 많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직업 중 하나이다. 실제로 주변의 지인들과 학생들은 하루 종일 예쁜 꽃들과 함께 있으니 선생님은 얼마나 좋겠냐며 많이 부러워한다. 많이 부러워해도 될 만큼 나도 매일 꽃 속에 묻혀 살아서 참 좋다. 비가 와도 좋고, 눈이 흩날리는 날이어도 좋다.  바람이 창문을 흔드는 날이어도 좋고,  파란 하늘에 풍덩 빠질 것 같은 날이어도 좋다. 꽃은 그 무엇과도, 그 누구와도 멋진 싱크로율을 자랑한다. 음악을 들으며 꽃을 혼자 하고 있을 때 나는 문득문득 그 순간이 너무 가슴 벅차게 행복해서 마음과 눈시울이 그렁그렁 뜨거워지곤 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꽃 일은 노동의 강도로 보면 '막일(우리가 흔히 노가다라고 하지만 이는 일본말의 잔재임으로 사용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합니다.)' 임에는 틀림없다.


일주일에 두세 번, 많게는 세네 번 꽃을 사입해 오고, 사입 후 반드시 해야 하는 컨디셔닝 작업 (꽃이나 잎 소재들의 가시와 잎, 줄기 등을 제거 및 정리해서 충분히 물을 올림으로써 절화 상태의 꽃을 최대한 싱싱하게 오래 볼 수 있도록 최적의 상태로 만들어 놓는 과정)까지 마치자면 시간도 오래 걸릴 뿐 아니라 체력적인 에너지 소모가 상당해서 그것만으로도 몸이 참 고되다. 컨디셔닝을 한 꽃으론 매일 수업 준비를 하고, 오전부터 오후까지 제대로 한번 앉지도 못하고 수업을 한다.  점심도 시간에 쫓겨 작업실 건너편 국숫집에서 주문한 국수 한 그릇이나 빵으로 대충 때우기 일쑤고 그렇게 오후 수업 후 정리와 다음 날 수업 준비까지 마치면 이미 해는 뉘엿뉘엿 저물고 있다. 퇴근 후엔 학교에 다녀와서부터  배가 고팠을 아들 생각에 옷도 못 갈아 입고 후다닥 저녁을 차리는 일이 허다한데, 그렇게 다 같이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정말이지 손 하나 까딱하기 싫은 상황이 매일 반복됐다. 





내가 그렇게 한가해 보여?


그렇다고 식사 후에도 편히 쉴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하루 이틀 게으름을 피우면 작품 사진들이 밀리기 시작해 나중엔 어디서부터 작업을 해야 할지 난감해 지기 일쑤라, 밀리지 않고 작품 사진 작업도 마무리해야 했고, 미처 확인하지 못한 채 쌓여있는 위챗 문의와 학생들이 보낸 소소한 메시지에 성실히 답을 하고, 새로운 작품을 보여 주기 위해 SNS 업로드까지 하고 나면 그 밤에 끝을 잡고 겨우 잠을 잘 수 있었다. 


"운동만 하면 좋을 텐데. 시간이 없어도 우선순위를 두고 일부러 시간을 만들어서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매일 나만 보면 운동해야 한다는 남편의 말이 어찌나 잔소리처럼 들리던지. 


"이렇게 몸이 피곤한데, 하루 종일 일 하고 와서 무슨 운동? 운동할 시간도 없고. 지금 해야 할 일도 너무 많거든. 나도 운동할 시간이 있으면 좋겠네."


나를 돌아보는 일을 우선순위 제일 끝에 두고 일괄된 변명으로 대응하는 동안 하루하루 끝없는 파도가 쉬지 않고 쌓아놓은 모래처럼 내 몸은 조금씩 조금씩 변해갔다.  





뭣이 중헌디?


이제 1년에 한 번 종합 건강검진받는 날이 즐겁지만은 않다. 전에는 한국에 놀러 가는 기분으로 병원을 갔었는데, 이제는 또 어떤 결과가 나올지 걱정부터 생겨난다. 한해 한해 소견란에 주황 불이 켜지기 시작했다. 전문병원을 가라 했고, 큰 병원도 가라 했다. 덜컥 겁이 나서 다리에 힘이 풀리고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러고 나서 거울을 보니 그제야 또 다른 내가 보이기 시작했다.  옆구리가 볼록해진 중년의 여자, 허리춤에 작은 튜브를 두르기 시작한 중년의 여자. 


'나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 달려온 걸까?'


나는 무척이나 나를 사랑하고 아낀다고 생각했었는데, 실제로는 몸과 마을을 정말 사랑하는 법을 제대로 알지 못했었다.  여기저기 건강 신호가 주황빛으로 바뀌고 나서야 운동을 시작했다.  큰 결심으로 시작한 건 아니고, 할 수밖에 없어서 시작했다. 계단만 올라도 숨이 찼었으니까 처음엔 1km도 뛰고 걷는 것도 그렇게 지루하고 힘들 수가 없었다.  지금은 숨이 목까지 차오르게 달리면 신기하게도 뭔지 모를  카타르시스가 느껴지고, 그러는 사이 쉬엄쉬엄 뛸 수 있는 거리도 5km로 늘어났다. 유산소 후엔 대략 1시간~ 1시간 30분간 매트 필라테스나 근력운동을 이어서 하는데, 그러자면 밤 9시 이후로는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해야만 가능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망설이지 않는다. 무엇을 선택하느냐의 문제인데 우선순위 앞에 갈등할 이유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지금은 있기 때문에 모르는 것들


내 신체에 감사하는 것이 자신을 더 사랑하는 열쇠임을 비로소 깨달았다.
 I finally realized that being grateful to my body was key to giving more love to myself.                     - 오프라 윈프리


내가 SNS에서 팔로잉을 하고 있는 동화작가님이 있다. 힘들고 어려운 항암 투병 과정을 그림일기 형식으로  전해주는데  암으로 절망하는 환우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꼭 완치가 되어 그 과정을 책으로 엮기를 소망하고 있다. 그분 소식을 접할 때마다 내가 그동안 가지고 있던 근거 없는 오만함이 얼마나 부끄러운 것이었는지 고개가 숙여진다. 이미 가지고 있고, 누리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굳이 깊게 생각할 필요도 못 느끼고 의당 늘 곁에 있어 주리라 우리는 믿는다. 매일 볼 수 있는 푸르름이나 햇살의 눈부심, 살랑이는 기분 좋은 바람과 투두둑 잠자리에서 듣는 빗소리를 1년 후에도, 2년 후에도, 5년 후에도 그리고 10년 후에도 보고 듣고 느낄 수 있을 거라고. 목마를 때 물 한 컵을 벌컥벌컥 들이켤 수 있는 것도, 배가 고플 때 맛있는 음식을 야무지게 먹을 수 있는 것도, 개구쟁이 아이들 곁에서 잔소리를 하는 것도, 뒤집어 놓은 남편의 양말을 바라보는 것도 얼마나 감사한 큰 축복이었는지 건강을 잃거나 가족을 잃었을 때 그제야 비로소 깨닫게 된다.


어제 작가님의 새로운 소식이 업로드되었다. 난소가 부어서 MRI를 찍어야 하는데 암일 확률이 50%라고 했다. 오늘만 울겠다고 내일은 다시 힘낼 거라고 쓴 글이 내 심장까지 너무 아프게 해서 나는 마음으로 함께 울었다. 그리고, 진심을 담아 댓글을 남겼다. " 작가님, 힘내세요!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 내가 할 수 있는 게 고작 이것뿐이어서 속상했지만, 진심으로 온 마음 다해 그녀에게 이제 행복한 소식이 한번, 두 번, 세 번 계속 들려오길 간절히 바랬다.






우리는 때로 중독된 것처럼 일을 하기도 하고, 내가 없으면 직장에 큰 문제가 생길 것처럼 건강과 나만의 시간, 가족과의 시간을 포기하면서 매진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일한다고 누가 얼마나 알아주던가. 내가 없어도 내가 거기 있기나 했냐는 듯 몸 담았던 일터는 아무렇지 않게 잘 돌아가고, 나의 빈자리는 곧 다른 사람으로 채워진다. 


우리의 몸은 정원이요, 우리의 의지는 정원사이다.  - 윌리엄 셰익스피어


우리가 주인 삼아 살아왔던 일들을 잠시 내려놓고, 삶의 우선순위를 정해 보면 어떨까. 그리고, 의지적으로 그 순위를 지키면서 일과 삶의 밸런스를 조절하며 살아간다면 사소하지만 아름답고 소중한 순간들을 조금 더 오래도록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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