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명월 Aug 30. 2019

태양이 말을 허네

영화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에 대해

 나는 충청도 아주 깊은 시골에서 자랐다. 아버지가 중학교 선생님이셨는데 인생의 성취 목표가 승진이셔서  외진 시골로만 학교를 옮겨 다니셨다. 덕분에 나는 초등학교 6학년까지 70년대 우리나라 시골 풍경에 너무나도 익숙하다. 옆집 친구가 방과 후 숙제는커녕 집안일과 농사일, 저녁에는 소여물 죽을 쑤거나 때론 작두로 소여물  짚을 자르다 신체 일부가 잘린 일들도 있으며 초등학교 후 서울의 어디 공장에 취지 했다는 전언을 듣기도 했다. 

가을이면 추수하느라 남학생들이 학교에 많이 빠졌고, 아버지가 같은 첫째 부인의 아들과 둘째 부인의 아들이 한 반에 섞여 공부하던 시절이었다. 나는 그때 소여물을 쑤던 친구네 아궁이 앞에서 풀무질 한번 해보자 떼쓰던 철없는 어린 소녀였다.

우리가 말하는 예전에 시골이 살기 좋았다는 말은 다 뻥이다. 왜냐하면 나는 어린 시절 많은 소녀들이 아버지와 오빠들에게 학대받는 것을 많이 보아왔다. 그 시절 어머니들은 남자가 여자 때리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셨다. 특히나 시골 농한기 때에는 노름(도리 짓 굿 땡)이라고 해서 화투로 온 동네가 난리 나던 시절이었다. 돈 때문에 싸우는 부부들의 악쓰는 목소리가 한적한 시골 밤에 천둥처럼 울렸다. 그래서 깬 건지 나는 가끔 오줌을 눈다는 핑계로 마당에 나와 한없이 쏟아지던 하늘의 별을 헤며 세상의 부조리와 발가벗긴 채 남편에게 매질을 당하던 어느 새댁을 생각하며 시골이 우리가 보이는 것만큼 평화롭지 않다는 것을 뼈저리게 체득했다.

오늘 소개할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은 내가 김복남이 아님에도 뼛속까지 울리던 그녀들의 고통을 온몸으로 알게 된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영화의 첫 시작은 길거리에서 여성이 여러 남성에게 구타받는 모습부터이다. 은행 비정규직인 해원은 차를 몰고 가다 이 장면의 목격자가 된다. 그녀는 경찰에서 목격자 진술을 거부하는데 깡패 남성들의 보복이 두려운 게  첫번째 이유였다.

이후 해원은 회사에서 휴가를 받아 <무도>라는 섬에  어릴 적 친구 복남이의 간곡한 초청을 받고 섬에 도착한다.

그곳에서 만난 복남이는 남편은 물론 시동생으로부터 성적학대를 받고 있었고 하루 종일 노예처럼 일하지만 동네 어르신 여자들이 모두 친인척으로 구성된 폐쇄된 지역이다 보니 모두가 복남이의 불행을 당연한 일이라 받아들이고 있었다.

복남이는 해원이가 섬을 탈출시켜줄 유일한 구원자로 생각했다.  그런 복남이에게 해원은 서울은 여기보다 더 무섭고 힘들다고 말한다. 회사에서의 경쟁과 질투, 그리고 여성에게 일어나는 일상적 폭력을 경험한 해원은 서울이 섬의 일상보다 공포가 더 심한 곳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복남의 딸 연희(남편 친딸이 아니라는 설정)가 남편에게 성적 노리개로 전락하는 현실에서 복남이는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분노에  연희와 함께 탈출하려다 남편과 마을 사람들에게 붙잡혀 심한 매질을 당한다. 딸 연희는 그런 엄마 아빠를 말리다 돌에 머리를 찧여 죽게 된다. 동네 사람 모두가 함께 있었어도 진실을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때 연희의 죽음을 멀리서 지켜본 해원도 목격자가 되지만 경찰에게 자신은 그때 자고 있었다고 말한다. 더 이상 무도라는 섬에 복남이의 편은 단 한 명도 없게 된다.

복남이는 낫을 들었다.


태양빛이 뜨거운 7월의 감자밭에서 감자를 캐던 복남이는 태양을 째려보다가 낫을 들었다.

그녀는 동네 여자들부터 죽이기 시작한다. 복수가 시작된다. 단 한 명도 살아남지 못한다. 해원만이 죽어가던 복남이의 진실을 말해 줄 유일한 생존자가 된다.


나는 80년대, 심지어 90년대 초까지도 서울에서 택시 승차를 거절당해본 적이 있다. 아침 찍은 여자가 마수거리로 재수 없다는 이유에서 이다. 믿지 못하겠지만 여성의 자가운전도 집에서 솥뚜껑이나 돌리라고 소리 지르던 사람도 있던 시대이다.

우리 사회가 그동안 많이 변했다면 , 또는 변하고 있다 하더라도 어디선가 김복남 같은 여자는 있을 것이다. 매 맞는 다문화 이주여성일 수도 있고,  얼마 전 죽은 탈북민 모자일 수 있다. 또한 여전히 멀쩡한 여자들이 그런 환경에 처해 있을 수 있다.

 어린 시절 별 헤는 밤으로부터 지금까지 나는 우리 사회에 여전히 부조리가  많다고 느낀다. 그러다가도  젊은 사람들에게  여성들이 예전 시대보다 훨씬 살기 좋아진 시대라  떠들어 대는 꼰대 아줌마이기도 하다. 앞뒤가 맞는 얘기라 해도 여전히 이 세상에 여성으로서 살아가기 어려운 건 사실이다. 그러나 앞으로 우리 사회에 기대를 갖는다면 이 사회에 생산력이 높아지는만큼 평등의 담론도 그만큼 많아져서 지금 봇물처럼 나오는 여성의 학대나 처우의 문제도 앞으로 향상되리라 믿어본다.

작가의 이전글 중년 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