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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lf Oct 15. 2021

흔하디 흔한 글풀이 -
병영 문학상(1)

각을 잡고 쓴다는 것

  공모전 마감날이 9월 10일이었으니깐, 벌써 1달이 더 넘어버렸다. 서둘러 뒤풀이를 하지 않으면 공모전 속 내 기억이 옅어질 것만 같아, 조급하게 글자를 써 내려간다. 뒤풀이라 하면 보통은 술, 사람 그리고 이야기로 시끌벅적한 공간이다. 하지만 여긴 군대. 병사가 그것도 개인의 성취를 기념하기 위해 술을 깔 순 없으니, '글풀이'라도 해야겠다. 


  일이 끝난 후, 과정 속 내 발상과 심정을 일목요연하게 풀어나가면 그것이 뭐 글풀이다. 문장 뭉치가 아닌 글을 위해, 몇 번이고 기억 속 테이프를 돌려보다 보면 어느새 과거는 현재 못지않게 선명해져 있다. 중간마다 숨어있는 '느낌적인 느낌'에 단어들이 붙을수록, 예컨대 경험의 방은 더욱 정갈한 공간으로 변모한다. 기억과 그 매듭들, 이음새들을 질서 정연하게 정리하는 것은 물론 귀찮은 일이다. 특히 이렇게나 한 달이 훌쩍 지나갔을 때는 '굳이?'라는 질문이 입에서 자꾸 맴돈다. 하지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 나중에 돌아보려 해도 무엇 하나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불상사가 일어날 것이다. 그니깐, 지금 잘 정리해서 후에 찾아와 다시 느끼고 싶은 감정, 발상을 잘 찾아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공모전에 참가한 건 딱 두 가지 이유다. 전역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아서였다 는 것이 첫 째, 글 40편가량 쓴 내 실력을 확인하고 싶은 게 둘 째다. 처음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임했다. 기존 글 두 편, "아침 라면"과 "회색이 이끈 글", 을 재활용할까도 고민했었다. 글 실력에 대한 평가는 받고 싶지만, 다시 쓰기에는 귀찮았었으니깐. 그리고 두 편당 조회수도 그렇고, 본인 평가에서도 그렇고, 내 글들 중에서도 꽤 괜찮은 녀석들이었다. 섣불리 새로운 글을 쓰려다가 실패하는 것보다는 양식과 분량에 맞게 리메이크를 하는 편이 더 수상 가능성을 높이는 일일지도 몰랐다.

  그래도 공모전이 아니라면 각을 잡고 글을 쓸 기회는 흔치 않을 것이다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일어날 때부터 잘 때까지 끊임없이 글 생각만 하며, 많은 작가들의 팁과 노하우를 직접 적용하는 경험 말이다. 오랫동안 글도 안 써왔던 터라, 그래 새로운 칼 두 자루를 기깔나게 뽑아내 보자. 이런 마인드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병영문학상 수필 부문에 응모하기 위해서는 A4 4쪽 내외 분량의 글을 2편 적어내야 했다. 첫 작품은 정말 '시작'이 다 한 글이다. 참가를 결심하고 생활관에 돌아가던 중, 국기 강하 방송에 발목이 잡혔다. 자전거에 내려 주위를 둘러보니, 군대에서는 흔치 않은 한적함이었다. 16000ft의 중층운이 반쯤 덮인 붉은 노을, 앞쪽으로는 탁 트인 활주로,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 고요함. 세상이 멈춰버린 것만 같았다.

  익숙함 가운데 낯섦. 그 사이마다 끼워진 낭만. 글쟁이라면 참을 수 없는 황홀함이었고, 누가 시키지 않아도 글감과 문장들이 쭉쭉 나왔다. 이제 명확한 메시지만 정하면 될 일이었다. 

  브랜딩도 그렇고, 춤도 그렇지만 '나만 할 수 있는 것'은 언제나 가치 있다. 수필을 적기 전, 나만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무엇이 있을까 고민했다. 결국 난 군인이었고, 공군이었으며, 기상 관측병이었다. 지금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이야기는 흔한 군대 이야기였다. 대한민국 남성이라면 대다수가 겪는 군대이지만, 평범치 않은 군대 생활 속에서 나만이 경험하고 느낀 것을 이야기하면 더욱 특별한 글이 될 거라 자신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답지 않은 과감함이었다. 어쩌면 가벼운 마음이었기 때문에 툭 던진 걸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첫 번째 글은 '군대에서 배운 가치'를 주제로 한 글이 되었다. 처음에는 국기 강하 방송에 묶였기에 아름다운 부대 풍경을 본 나처럼, 조금은 쉬었다가도 괜찮다, 그니깐 군대에서 2년을 버려도 괜찮다 뭐 이런 글을 쓸까 했었다. '여유'와 관련하여 내가 배운 것들에 집중하다보니 지금의 첫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지난 10월 즈음, 처음으로 군대에서 자살 생각을 했다. 목을 매단 내 모습, 옥상에서 떨어진 내 모습을 구체적으로 상상하며 후처리가 어찌 될지 그려보았었다. 간부들은 귀찮겠지, 부모님한테는 너무 죄송한데, 날 힘들게 했던 말들은 과연 반성을 할까.

  점점 죽음을 그리는 자신의 모습에 위험하다는 것을 자각했다. 그래서 상담을 시작했다. 전역이 10일 남은 시점에서 말하자면, 내 최고의 선택이었다. 상담에서 나는 오랫동안 자신을 괴롭혔던 문제들을 직면할 수 있었다. 상담관에게 담담히 이야기를 하던 과정에서 지긋지긋한 감정들이 정리되기 시작했다. 해결까진 몰라도, 객관적으로 스스로의 감정을 바라보는 것은 진정에 큰 도움이 되었다.

분명 죽음은 삶 속 행위 중 가장 엔트로피가 큰 행위겠지만, 우울함은 낯설지 않았다. 대학 합격 때부터 시작된 슬럼프였기에, 난 더 이상 자살 생각이 들지 않게 될 때도 계속 상담을 받고 싶다 밝혔다. 마음으로 받는 PT라 스스로 여겼었다. 그래서 난 다음 주에 마지막 상담을 남겨두고 있다.


  상담을 통해 난 내 고질적인 문제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늘 자신에 대해서 불만이었던 부분들을 심리학의 어법으로 풀어나갔다. 그중 첫 번째 글은 내가 강박에 관해서 배운 것을 다룬 산문이다. 난 지독한 완벽주의자였다. 완벽주의자라고 일을 완벽하게 한다는 뜻은 아니다. 마치 외모지상주의자가 꼭 외모가 뛰어난 사람만과 연애하지 않듯 말이다.

  완벽이란 없기에, 완벽주의자는 만족할 줄 모른다. 또, 흠이 나있으면 F와 마찬가지라 느끼기에 자책을 많이 한다. 나에게 있었던 강박은 '난 특별한 사람이다.'라는 강박이었다. 남의 성과에는 과대평가를, 스스로에게는 과소평가와 질책을 하니, 자존감은 떨어질 만큼 떨어졌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죽음 직전까지 사람은 자기 자신과 떨어질 수 없다. 본인은 자신의 가장 오랜 친구이며, 비평가며, 동료며, 라이벌이다. 그런 상대가 만족을 모르는 냉철한 비평가라면, 또 그에 자꾸만 위축되는 자신이라면 이는 꽤 골치 아픈 일이다. 그렇지만 나는 그런 완벽주의자인 성격이 내 뛰어난 퍼포먼스에 한 몫한다고 생각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어제의 상담에서도 상담관은 성공한 사람 중에서 강박성 성격이 있는 사람이 꽤 있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아니었나 보다. 결국 나는 실수와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삶에서의 주체성을 잃어버렸고, 그렇게 주저앉아버린 끊임없이 채찍질했다. 여태 착각했었다. 남의 시선을 의식해서 피곤한 삶을 살고 있었다고. 아니다. 내 목을 조인 손의 주인은 자신이었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다독이는 것을 배웠고 또 연습했다. 또한 스스로가 그리 특별한 사람이라는 환상을 깨트렸다. 그러자 여태 나를 자책하던 숙제들은, 날 더 가꿀 기회이자 목표가 되었다. 이미 욕심이 그득한 머릿속과 스스로를 달랠 당근의 시너지는 대단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을 미루지 않았다. 용기가 생긴 것이다. 조금은 부족해 보이는 내 모습을 사랑하고, 받아들일 용기 말이다.


  글에 있어서 시작과 메시지까지 결정되니 일사천리였다. 하지만 공모전을 위한 작품이었다. 수상까지 가기에는 메시지가 조금 약하다, 말하자면 뻔하다는 생각을 했다. 공감과 위로를 얻을지언정 좋은 글이 될 것 같지는 않았다. 또한, 이해하기 어려운 메시지도 아니었다. 그렇기에 4쪽의 분량 속에서 계속 반복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첫 번째 글의 수상 전략은 '구조와 묘사가 살아있는 글'이 되었다. 1차 목표는 따스한 글이었다. 내가 그때 도로 한복판에 서서 느꼈던 햇살처럼, 따뜻하고 섬세한 묘사를 하고 싶었다. 2차 목표는 구조였다. 강박에 잡혀있던 나를 대표하는 객관물을 신중하게 상정하였다. 글은 대상을 바라보며 느낀 연민이 곧 자기 자신을 향한 성찰로 돌아오며 내가 군대에서 배운 것을 표현하는 구조였다. 3차 목표는 내 필명처럼 담담함이었다. 읽는 이에게 여백을 남겨서 더 큰 울림을 줘야겠다. 뭐 그런 생각 말이다.

  4차 목표는 읽는 이마다 제마다 다른 하이라이트를 가진 글이었다. 이는 국가가 흘러나오는 3분 동안 머릿속을 지나갔던 생각들이 너무 다양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메인 흐름을 가지지 못한 글은 산만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중간중간 작가의 가치관이나 발상이 엿보이는 가벼운 문장들은 글을 매력적으로 만들어준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러니깐, 중심 생각을 제외하고도 내가 느낀 것들 ; "국기 강하 3분처럼 잠깐 쉬었다 가도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다.", "전쟁을 준비하는 군대가 이 3분만큼은 한반도에서 제일 조용한 곳이 된다." 등등을 자연스럽게 글에 녹이고 싶었다. 


  이 네 가지를 위해서 글을 수도 없이 매만졌다. 따스하고 생생한 표현을 위해 유의어 사전도 적극 활용했다. 처음에 정지한 부대 풍경을 떠올랐던 인상들을 수없이 부풀린 다음 한두 문장으로 압축시켜버렸다. 또한, 너무 구구절절하지 않기 위해서 문장들의 정보를 정교하게 조절했다. 가장 어려웠던 것은 글을 담담하게 쓰는 것이었다. 충분히 독자들을 설득시킬 글과, 오버하지 않는 표현. 성격이 급한지라 자꾸 표현들이 앞서 나가는 것이 내 단점 중 하나였다. 그러한 단점에 가장 도전했던 글이 내 첫 번째 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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