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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도송이 Jun 07. 2024

중년 부부의 애'쓰는' 밤

우리 부부의 이야기이다.


어젯밤 드디어 남편에게 고백했다. 요즘 내가 남모르게, 애달프게 빠져있는 그것을.

11시 전이면 어김없이 곯아떨어진 와이프가 늦은 시간까지 말똥말똥, 스마트폰을 수시로 클릭하고, 혼자 잇몸 만개 미소를 짓는다? 괜한 오해는 받기 싫었다.  오늘밤 속시원히 고백하자 싶었다. 아침에 발행한 브런치스토리 링크와 함께... 고백을 하고야 말았다. 부끄럽다. 오해하게 냅두는게 나았을까?


'여보 어~때?" 

"오~ 재밌네 열심히 써봐"  

:여보 그래서 말인데 당분간 집안일을 소홀할꺼 같아"

"괜찮아, 어차피 열심히 안했잖아"

똥인지 된장인지 모르겠으나, 어쨌거나 쿨한 우리 남편~


그런데 남편도 고백할 게 있다고 한다. 

밤마다 미국 주식한다더니 폭망했나, 회사에서 안좋은 소식이라도 들었나, 순간 안좋은 생각만 스쳐갔다.


"사실 나도, 블로그에 글쓰고 있었어" 


첨 듣는 이야기다. 얼굴이 뻘개진다. 블로그 주소를 보내준다. 

헐? 이미 1년도 지났다. 게다가 매일매일 시까지 쓰다니. 시를? 당신이?

1년 동안 남편의 이런 어마무시한 짓(?)을 몰랐다니 어이가 없다. 몇 개를 읽어보니 이웃집 검둥개, 걷다가 감자꽃, 갱년기 와이프, 사춘기 딸, 친구 부인의 느닷없는 죽음 등등 남편과 우리 가족의 일상이 고스란히 담겼다.


매일 아침 45분 산책, 긴 거리의 통근, 퇴근 후 운동, 주식 투자, 저녁 독서, 쉬는 날에는 두딸 픽업, 짬짬이 회식 등등. 우리 남편이 바쁘다는 걸, 내가 모를 리 없다.

우리 남편 참 애'쓰며' 사네. 

짧은 글은 눌때 썼다고 하니, 내 브런치는 아무래도 똥에 밀린 거 같다.


어차피 비밀 한 개씩을 주고 받았으니, 속 터놓고 이야기한다.


나는 말이지,

몰아치듯 열정적으로 쓰는 게 좋더라  

당신은 천천히 끊어오르는 편?

요기, 요 부분을 살짝 비틀어봐, 

역시 당신은 긴 게 좋아

그리고 내 욕? 쓸래면 써~


우리 부부의 애정 방식이다. 겸허히 진지하게 서로의 조언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긴 침묵.

각자의 세계에서는 키보드 소리만 들린다. 애'쓰는' 중년 부부의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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