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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별 Mar 02. 2024

제주, 갈 수 없는 섬이 돼 버렸다.

'제주도'를 자주 떠올린다. 떠올리지 않으려 해도 미디어와 각종 매체에서 너무 자주 노출되고 있어 강제 소환되는 일이 많지만...! 사랑했던 그와 2년 정도 신혼생활을 했던 장소였고, 내가 가장 사랑하는 여행지였으며, 40여 년 도시생활을 접고 타지에서 또 다른 꿈을 꾸게 만들었던 곳, 제주는 언제나 내 마음속 1순위 장소였다.


제주도를 떠올리면, 뼈속에 아로새겨진 추억들이 너무 많아서 슬며시 웃음이 났다가, 너무 슬퍼서 눈물이 나고, 가슴 한켠이 저려온다. 제주의 하늘은 보기만 해도 너무나 황홀해서, 하루에도 몇 번이나 달라지는 하늘빛이 너무나 신기해서, 매일 올려다 보고 또 봐도 도무지 질리지가 않았다.


눈이 부시게 맑았다가도 한순간 흐려지고, 잔뜩 구름이 낀 하늘은 도저히 갤 것 같지 않다가도, 옥빛 바다를 닮은 하늘빛이 빼꼼 고개를 들 때면 경이롭기까지 했다. 제주는 변화무쌍한 날씨만큼 오묘하고 신비로웠다. 바다를 품고 있는 곳이어서인지 그곳에 있으면, 인간의 얄팍한 생각이나 꼼수는 내밀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그저 겸허해졌고 절로 겸손해졌다. 한낱 나 따위, 미물을 품고 있는 이 대자연은 그 무엇이 온다고 해도, 이길 수가 없겠다, 싶었다. 그래, 나는 그곳, 제주에서 아주 오래 행복할 줄 알았다.


제주도로 떠나는 여행 프로그램이나 제주도를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를 볼 때마다, 저곳이 제주도의 어느 쯤인지, 어설프게나마 가늠할 수 있고, 제주 말도 제법 잘 들려서 반가운 마음이 올라왔다가도 나는 이내 시무룩해졌다. 저 찬란한 배경들이 이제는 나를 아프게 하는 장소가 되어 버렸으므로.


역설적이게도 내가 가장 사랑했던 장소가 나를 가장 아프게 하는 장소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래서, 그 섬에 가고 싶다가도 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주저앉고 만다.


그곳에 가면 제주에서의 감각들이 되살아날 것이 분명하다. 눈앞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아름다운 배경을 보면, 자주 먹던 음식을 먹고, 같이 갔던 장소들을 가게 되면, 간신히 눌러놓은 우울 바이러스가 이때다 싶어서 활개를 칠 것 같아 두렵다. 제주가 담고 있는 좋았던 기억에서도, 힘들었던 기억에서도 나는 쉽게 울고 것만 같다.


봄이 되면 제주 곳곳에 만개하는 벚꽃의 황홀경을 또 어찌 잊을 수 있을까. 눈앞에 떠 오르는 기억들이 여전히 너무나 선명하다. 아직 채 아물지 못한 감정들이 그 기억들을 감당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어서, 이렇게 그리워만 한다. 다음을 약속한다. 내가 좀 더 용감하게 홀로 설 수 있을 때, 조금 더 담담히 추억들을 떠올릴 수 있을 때가 오면 제주도에 가겠다고.


절대 잊은 게 아니라,

너무 그리워서 가지 못하는 거라고.


얼마 전에 <웰컴 투 삼달리>라는 드라마를 보면서 혼자 많이 울다가,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에게 말하지 않아도 나는 여전히 수천 번, 수만 번 울고, 마음을 다 잡으며 애도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긴 터널을 빠져나가는 중이지만, 이제는 다시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니까, 가끔은 울어도 괜찮아.


다 꺼내놓지 못하는 제주의 추억처럼, 우리의 제주는 이제 아무 때나 갈 수 없는 곳이 되어버렸지만, 언젠가 다시 제주에 가게 된다면, 처음 그곳에 갔을 때처럼 예쁜 노을을 보고 활짝 웃어야지. 울지 않아야지. 그때의 너와 나를 온전히 바라봐야지. 그저 제주의 하늘과 바다만 바라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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