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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별 Jun 28. 2024

오늘은 불행하지만 내일은 행복할지도 몰라

6월 들어서 '어, 나 쫌 행복하네?!' 하고 스스로 말한 적이 두 번 있었다. 너무 오랜만이어서 생경하기까지한 이 감정을 곧바로 알아차리지 못했고 '어, 이거 뭐지?' 잠시 생각하다 '아~ 이런 게 행복'이라는 감정이었다는 것을 기억해 냈다. 순간을 놓칠세라 메모장을 열어  '베이글 먹으면서 행복하다고 느낀 날'이라고 짧게 기록해 두었었다.


참고로 첫 번째 행복의 기록은 '맥주 마시면서 행복하다고 느낀 날'이었다. 푹 자고 일어난 날 아침에 영어공부를 끝내고 갓 내린 커피와 함께 베이글을 먹으면서 느꼈던 잠깐의 여유, 하루 일과를 무사히 마친 저녁, 좋아하는 마라샹궈에 시원한 맥주를 한 모금 딱 넘겼을 때의 짜릿한 만족감. 어쩌면 매일 우리 일상에서 반복되는 이런 작은 행위들이 나에게는 자기 만족감이나 행복을 주는 일들이었다. 아주, 오래 잊고 살았지만.


그렇다, 나는 다시 행복을 느낄 줄 아는 '나'로 돌아온 것이다.


앞으로는 영영, 이제 다시는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돌심장'을 가진 채 무미건조한 인간으로 살아가게 될 줄 알았다. 미래의 긍정이나 희망 따위, 당연히 느낄 수 없었고 믿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지금의 나는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을 것임을 알고 있고, 그럴 것이라고 믿을 수 있게 됐다. 힘들었던 지난 과거에 매몰되지 않고, 타인에게 의지하지 않고 내 두 발로 앞으로 나아간다. 꼭 발전적인 방향이나 목적이 있지 않더라도 괜찮다 싶다. 그저 하루의 의미를 채워가면서 내 몫의 인생을 살아가는데 집중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기적처럼 어느 날 행복이 물었다.

'너 요즘 어때?'

'자주 긍정적인 감정을 느끼니?'

'그래도 가끔 행복하니?'라고.


아픔을 겪고 난 뒤, 관계들을 정리하고 그 감정들을 들여다보는 연습을 하면서 자주 내면을 들여다보는 습관이 생겼다. 예전에는 내 감정이나 상태를 살피는 일이 거의 없었는데 요즘엔 꽤 자주 스스로 내면의 상태를 체크한다. 지금도 잘하고 있다고, 괜찮다고 말해주기도 한다. 그러다가 다시는 못 만날 것 같은 감정을 만나게 된 것이다.


'어, 왜 나 행복하지?' 생각하다가

'나, 행복해도 되겠지? 하고 생각했다.


이 감정을 만나기까지 생살을 도려내는 아픔 속에서 참으로 오랜 기간 방-황했다. 마주하고 싶지 않은 감정들이 너무 많아서 덮어두고 모른 척하고 싶었다. 아무에게도 꺼내고 싶지 않다가도, 모조리 꺼내서 내가 이렇게 아픈 사람이니 건들지 말라고 엄포를 놓고도 싶었다. 그 아득한 시간들은 어제처럼 선명하기도, 100년이 지난 것처럼 흐릿한 과거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내가 과거의 아픔이나 상실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졌다는 뜻은 아니다. 여전히 애도한다. 지나간 그 모든 것에 대해. 그리고 기억한다. 아프더라도 잊고 싶지 않기에. 충분히 애통해하고 그리울 땐 그리워한다.


다만, 외면하지 않고 그 어떤 감정이든 마주 보려고 노력하려 한다. 외면한 감정이나 불편해서 덮어두었던 것들은 언젠가는 수면 위로 떠오른다고 한다. 심리학 용어로는 '정서적 교착상태'라고도 하던데,  정서적 교착상태가 오래 지속되는 건 당연히 정신건강에 좋지 않다.




2년 정도 쓴 원고들을 하나의 에세이로 엮기 위해 최근 퇴고 작업을 하고 있다고 했었는데, 지난 감정들을 다시 마주하는 게 왜 그리도 고통스럽던지, 다 집어치우고 싶은 걸 간신히 참아가며 더딘 속도로 원고를 고치고 있다. 출판사 투고 or 독립출판 인지 방향도 아직 잡지 못했다. 결과물이 어떻게 나올지 몰라서 더 속도가 안 나는지도 모르겠다. ㅠㅠ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가 봐야 후회가 없겠지?  


새 에세이의 제목을 놓고 몇 달 동안 고심했었는데, 최근 느낀 긍정적인 감정들을 떠올리다 보니 얼추 정리가 되었다.


불행의 우주에서 행복의 지구로 오기까지의 개인적인 여정을 담아 [불행의 우주에서 행복의 지구로]


세상 불행하다고 느꼈지만 행복하다고 느낀 오늘의 감정을 담아 [오늘은 불행하지만 내일은 행복할지도 몰라]


나의 불안이 누군가에겐 위로가 될지로 모른다는 생각으로 [오늘의 불안은 내일의 위로가 된다]


[오늘은 불행하지만 내일은 행복할지도 몰라]로 잠정적으로 정했는데, 지금 보니 1번도 괜찮은 것 같다. 혹시, 좋은 의견 있으면 살포시 전해주셔도 좋을 같아요 :)




사실 내 감정은 여전히 불안정하다. 지금은 별일 없어 보여도 내일은 또 다른 불안이 나를 괴롭게 할지도 모르겠다. 잠시 느꼈던 행복의 감정도 언제 그랬는지 모르게 다 까먹을지도 모르고, 다시 원망이나 불만을 쏟아내는 날이 올 거라고도 생각한다. 하지만, 불행이 어느 날 갑자기 왔듯이 행복도 그렇게 갑자기 오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면, 지금의 순간이 100% 불행만 하지는 않을 것이다.


오늘은 불행하지만, 내일은 행복할지도 모른다고 믿으면서 살아가면 좋겠다. 나와 여러분 모두에게 오늘보다 내일 더 괜찮은 날이 오기를 진심으로, 진심으로 바란다.



*이번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읽어주신 구독자분들 정말 감사드립니다. 당분간은 퇴고 작업 때문에 새 글을 올리지 못할지도 모르겠어요. 물론 변덕이 발동해 아닐 수도 있지만, 열심히 고치고 쓰다가 곧 다시 올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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