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의 애증의 시간이 도래했다. 글쓰기는 나의 평생의 취미이자 본업이고 일상의 루틴이라고 생각하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닌 것만은 확실하다. 어쩌다 그분이 오시면, 쓰기의 욕구가 올라와서 뭐라도 마구 써 보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도무지 어떤 글도 써지지 않는 암흑기도 분명 존재한다. 그리고, 지금이 바로 그때이다.
이유가 없지는 않다.
브런치 연재를 약속해 놓고도
지난 3주간 글을 쓰지 못했던 이유.
원고지 약 500매 정도의 글을 모아 놓았지만,
탈고를 망설이고 있는 이유.
첫 번째는 연재날이 되었다고 아무 글이나 쓰고 싶지 않았다는 진부하고 약간 궁색한 변명이고, 두 번째는 탈고 작업으로 인한 슬럼프다. 사실 두 번째 이유가 지금 나의 모든 글쓰기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표현이 맞다.
지난 2년여간, 개인적인 일들을 겪으면서 우울과 불안, 상실과 이후의 삶에 대해 그 어느 때보다도 고민이 많았다. 뭐라도 써야 살 수 있을 것 같았고, 다행히 그 시절의 나는 글을 쓸 수 있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기록이지만, 그때그때의 나에 대한 이야기들은 브런치에 발행되었고, 꽤 많은 분량의 글들이 쌓였다.
하여, 나는 1년 전 '출판사 투고'에서 좌절했던 기억이 여전히 남아있음에도, 다시 두 번째 에세이 출간을 결심했다. (출간이 나의 결심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아주 큰 용기가 필요했다.)
일단은 닥치고 에세이 한 권 분량의 글을 탈고하기로 마음먹었다. 흩어져 있던 글들을 한데 모으고 나름의 목차를 구성하고, 에피소드들을 끼어넣어 흐름을 잡았다. 이 작업만으로도 이미 많은 에너지가 소모됐다. 포기하고 싶은 1차적 욕구를 간신히 억누르면서 조금씩 탈고 작업을 이어나갔다. 여기에서 매우 큰 위기가 왔다.
탈고 작업이 새 글을 쓰는 것보다 힘들다는 건, 이미 잘 알고 있었지만, 이번에는 몹시도 괴롭고 힘들어서 다 집어치우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래서 아예 글쓰기를 등한시하게 되는 역효과를 맞게 된다. 맘먹고 카페에서 글을 고치자 하고 앉아서도 겨우 두 개 정도의 에피소드 탈고에서 멈추고 말았다.
이번 탈고의 부진을 바라보며 나는 알게 되었다. 과거의 글을 보는 것은 어쩌면 그대로 묻어두고 싶었던 기억들을 다시 마주 바라봐야 하는 일이었으며, 그렇게 강제 소환된 기억들은 고스란히 그때의 어렵고 힘들었던 나로 돌아가게 만든다는 사실을. 그때의 감정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다시 힘겨워졌다. 슬프고 애잔했다.
그 시간들을 통과해 왔지만, 여전한 기억들. 어떤 날들의 습도와 햇살의 밝기와 웃음소리까지 들리는 듯한 생생함이 일순간 생경해졌고 아득했다.
글 속의 나를 재경험하는 것이 다시 내가 살아가는데 얼마의 유용함을 줄지 알 수 없었다. 멈추고, 시간을 갖다 보니 그래도 이 작업을 끝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애를 쓰며 끝낸 글들이 한 권의 책으로 나오지 못할지라도, 나는 이 작업을 끝내야겠다. 이 글들을 다시 보고, 나를 다시 봐야겠다. 그냥 그렇게 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어쩌면 이것이 나만의 애도방식의 최종버전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가 기록을 하는 가장 큰 이유이자 힘일지도 모르겠다.
무언가를 기억하기 위해 기록하는 일.
기록하기 위해 자꾸만 도망가고 싶은 나를 모니터 앞에 주저앉혔다.
일단은 뭐가 되더라도 '하나의 완성된 글'을 만들어보자. 그때 투고할 용기가 생기면 하는 거고, 독립출판으로 마음이 기운다면 그쪽으로 노력을 해볼 수도 있다. 다 아니어도, 완결된 글을 쓸 수 있었다는 것에 칭찬 별 100개를 주겠다.
닥치고 쓰기. 뭐가 되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