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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lorsense Apr 02. 2020

나는 시댁이 없다.

일 년에 한 번 가족 보러 미국으로 여행을 갈 뿐이다.

진심으로 하는 말이다. 나는 시댁이 없다. 그저 가족만 있을 뿐.

그저 나는 참으로 복 받은 사람이라고 밖에 설명할 방법이 없다. 국제결혼하면 대체적으로 다 그럴 거 같은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꽤 많은 것 같다. 의외로 부모님 나이 대에 보수적인 분들이 있고, 때로는 슬프지만 인종차별자 같은 마음을 가진 분들도 있기 때문이다.

남편을 존재하게 만든 나의 미국 부모님들은 멕시코에서 20여 년 전에 미국으로 날아와 정착하신 부모님들은 이민 1세대로써 정말 열심히 살아오셨다. 그런데도 나에게나 남편에게 자식 된 도리? 의례적으로 해야 하는 행동들을 요구하시지 않는다. 쉬운 말로 꼰대 같은 기질이 전혀 없는 분들이다.

(미국) 엄마는 그저 한국에 정착해 살고 있는 우리들이 모자람이 없는지, 일 년에 한 번밖에 보질 못하니 더 해주고 싶은 마음에 크리스마스 시즌에 미국에 가면 특히 우리 선물을 한 아름 쌓아두고 기다리신다. 도착하면 계속 뭔가 먹으라고 권하시고 스페인어를 쓰시기 때문에 말이 거의 안 통하지만 남편을 도구삼아 서로의 마음을 전한다.

(미국) 아빠는 우리가 미국에 도착하거나 떠날 때 항상 눈물짓곤 하신다. 감수성이 풍부한 아빠. 사실 말수가 적은 편이셔서 아빠랑은 많은 얘기를 나누지는 않지만 꼭 헤어질 때 성호경을 그으며 눈물 지으시니 나도 안 울고 싶은데 눈물이 핑핑 돌았다.



다섯 남매의 막내둥이 남편

미국 가족은 한국의 일반적인 가족과 비교하면 대가족이다. 엄마와 아빠는 슬하에 아들-딸-아들-딸-아들 이렇게 다섯 자녀를 두었다. 5명의 자녀들 중 4명이 결혼을 하였는데, 자기만의 색이 강한 첫째 형만 싱글이고(1명) 책임감 강한 첫째 누나는 이주한 멕시코 분과 결혼해 딸-아들-딸을 낳았고(5명), 다정하고 신뢰감 있는 둘째 누나 역시 이주한 멕시코인과 결혼해 아들 둘이 있으며(4명), 직장 다니면서 래퍼로 활동하는 둘째형도 자메이칸 2세대 미국인과 결혼했기에(2명) 미국 가족만 모두 세어보면 무려 14명이다.

영화 [코코]에서 엿볼 수 있듯이 멕시코 가족들은 대체적으로 가족애가 끈끈한데, 미국 가족의 역시 생활의 중심이 가족이라 모든 가족들이 부모님 집을 기점으로 차로 10~20분 내외로 왕래할 수 있는 거리에 살고 있다. 가깝게 살기 때문에 가족 전체가 모이는 건 못해도 주 1회? 시간 날 때는 거의 매일~격일로 한 번씩 만나는 것 같다.

나는 30여 년을 부모님과 함께 살아와서, 결혼 후에는 나와 나의 가족에 집중하고 싶었고 그런 이유로 전화로 안부를 종종 여쭈어보긴 하지만 보통은 생일, 명절 같은 가족 행사에 참여하는 것 외엔 한국 부모님도 한 달에 한번 뵐까 말 까다. 그렇기에 솔직한 마음으로 만약에 우리가 미국에 살게 된다면 한 달에 한번 정도 뵈면 좋을 것 같은데 반면 절친은 못해도 일주일에 1번을 생각하고 있어 그러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다.

가족과의 거리를 두는 이유는 나 스스로나 나의 가족일만 처리하기에도 버거운 데다 가족들이 참 사랑스럽고 좋지만 사람이 많이 모이면 그만큼 혼이 쏙 빠질 만큼 에너지가 소모되기 때문이다. 이건 순전히 소규모 그룹 모임을 선호하는 나의 성향이 많이 반영되었다. (현재로써는 미국 이주 계획이 1도 없어 생각하는 것 자체가 무용지물이긴 하지만..)

적다 보니 내가 가족 사이에서 부대끼는 걸 싫어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난 미국 가족들이 정말 좋다. 한국의 정(情)과 비슷하지만 조금은 그 색깔이 다른 멕시코 이민 1세대와 2세대 가정의 가족애가 있기 때문이다. 가족을 먼저 챙기는 두 누나들과 가족 모임에서 즐거운 분위기를 이끄는 둘째형, 그리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조카들 덕에 나는 언어의 장벽을 제외하고는 의례적으로 해야 하는 도리를 운운하거나 눈치 주거나 하는 사람이 전혀 없고 가족들이 나를 진심으로 편하게 대해주기 때문에 이방인이라는 느낌을 받지 않는다.

그래서 미국에 가는 것은 '시댁에 인사드리러 간다.'는 의례적이고 긴장하는 마음보다는 '가족들과 평범한 휴일의 일상을 보내고 온다.'는 마음이다. 미국에 가면 시차 적응을 위해 낮잠을 자거나 둘만의 시간을 갖기 위한 드라이브도 다녀오기도 하지만, 길지 않은 휴가를 가족과 온전하게 보내기 위해 모든 가족이 모여 외식을 하거나 소그룹 단위로 쇼핑을 가기도 했고, 저녁에는 뒷마당에서 BBQ를 준비하고 각자 집에서 준비해 온 음식을 함께 나누어 먹으며 보드게임이나 윷놀이, 카드게임을 하거나 노래방 기계로 노래 부르고 춤을 출 때도 있다. 매일매일을 정말 왁자지껄하고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게 보낼 수 있어서 그 시간들이 참 좋았다.

 

특히 2019년에는 둘째형 내외, 둘째 누나네 내외와 함께 유니버설 스튜디오에 가서 애처럼 신나게 놀고 오기도 했다. 원래 유니버설 스튜디오 같은 건 별로 관심이 없었는데, 가족이랑 같이 가니 기다리는 시간도 별로 지루하지 않고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소풍 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남편이 외동이거나 단출한 가족 크기였다면 좀 더 차분한 분위기였겠지만 대가족과의 유니버설 스튜디오 방문은 분위기는 정말 달랐다.



"보고 싶어요."라는 말이 어색한 미국 가족들
@unsplash

미국 가족들과 전화통화를 하면 매일같이 끝인사는 "I Love You~"이다. 나는 그래서 '역시 서양 가족들은 표현에 인색함이 없이 참 다정하다.'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가족과의 통화가 익숙해진 어느 날 남편과 함께 영상통화를 하던 중 내가 돌발적으로 엄마나 누나에게 "Miss you~"라고 말했다. 그랬는데 돌아오는 말이나 표정 같은 건 "어.... 음.... " (다른 말로 돌리는...)과  같이 상당히 어색했다.

'응? 나는 아직 가족들에게 그런 표현을 하기엔 어색한 사이인가?'라고 생각했는데, 남편의 설명은... 가족들이 그런 표현에 인색하다는 것이다. 그럼 통화 끝마다 서로 말하는 "사랑해"라는 말은 뭐냐고 물어봤더니, 그건 의례적인 인사와도 같다는 남편의 코멘트를 들었다. 외국 가족이라 표현을 잘하는 줄로만 알았는데 의외였다. 가만히 돌이켜보니 가족끼리 만나면 안아주는 등의 애정표현을 하긴 하지만 막상 가족 간의 대화는 엄청나게 낯간지러운 것 같진 않았다.

엄마를 봐도 가족들에게 다정하고 부드러운 말투는 아니지만 항상 "뭐할래?", "뭐 먹을래?", "이 꽃 좀 봐, 예쁘지?" 등등 항상 말을 건네고 물어보시는 편이다. 엄마가 유일하게 전하는 애정표현은 그래서 "I love you."이다. 심지어 그 말은 항상 영어로만 말씀하신다.(스페인어로 하시기엔 쑥스러우신 거겠지... )

남편이 형이랑 통화를 할 때도 상당히 담백한 느낌의 "사랑해"가 오간다. 그래도 그게 어디인가? 말하지 않아도 다 알긴 하지만, 우리 (한국) 아빠의 입에서 '사랑한다.'의 '사ㄹ...'도 육성으론 들어본 적이 없으니 말이다.




서로 주고받은 큰 선물 , 21명의 대가족

코비드 19로 인해 미국 가족들로부터 우리를 걱정하는 마음을 많이 받았고, 이제는 우리가 미국 가족들을 더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라 애틀랜타 시내나 공항 근처에 가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고 그들에게 마스크를 보내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보내줘도 착용을 안 할 것 같다는 남편 말에 보내진 않았지만...)

여하튼 이 난리법석 상황을 배재하고, 비행시간과 시차 그리고 경제적인 이유만 제외하면 부담 없이 가고 싶을 때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보다 조건을 많이 붙였네;;;;) 물리적인 거리가 가족 간의 사랑을 막지는 못하지만, 통화로만 서로를 대면할 때면 가족의 온기가 그리워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올 연말에는 미국을 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미국에 가게 되면 조금이라도 더 나의 14명의 가족들에게 다정한 딸, 동생, 언니, 이모가 되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그리고 타국에 사는 남편도 나처럼 우리(한국) 부모님과 내 동생 내외를 '처가댁 식구들'이 아닌 '가족'으로 느끼고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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