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위 국가의 시민권자 남편이 바라보는 아내
헬조선에서 탄생한 민족주의자?
'국뽕'이라는 단어가 어색하지 않은 시대가 왔다. 코비드 19 덕분에 이 물결은 계속될 것 같다. 나도 내가 이럴 줄은 몰랐다. 내 나라를 감싸고 한국이 살기 제일 좋은 나라라고 내입으로 말을 하게 될 줄이야...
여러 서방국가들의 진보적인 국가정책과 개인주의적이긴 하지만 '표현의 자유'를 존중하는 그들의 문화를 동경하던 2019년의 나는 이제 없다. 2020년의 나는 민족주의자처럼 변했다. 한국이 미국과 여러 주변 국가들로 인해 '풍전등화'같은 외교와 국가정책을 유지하며 늘 얻어터지고 3인자만도 못한 취급을 받으며 살아왔지만, 이런 시련들을 견뎌왔기 때문에 우리나라는 다행히도 2020년에 터진 물리적인 무기 없는 전쟁에서 받는 피해를 최소화하고 있다. 다른 국가들에 비해 '국력이 약한 것도 운'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늘 열심히 하고 빨리빨리 하는 대부분의 한국 국민들의 성격 탓에 위기를 잘 극복해나가고 있는 것 같다. (이 와중에 클럽 가고 포차 가서 술 마시는 20대들 제발 반성하고 제발 자중하길 바란다.)
코비드 19 대처를 잘한 국가라는 점 이외에도 우리나라는 Kpop으로 유명해졌다. 사실 욕바가지를 얻어먹을 수도 있지만 난 '왜 Kpop이 전 세계에 먹히는지?' 잘 이해가 되진 않는다. 아마 내가 트렌드에 못 따라가는 성향을 가진 사람일 수도 있고 그냥 단순히 내 취향과 맞지 않아서 인 것도 같다.
그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건, 무언가에 꽂히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진짜 진짜 열정을 다해서 올인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잘 미친몰두한다. 꼭 천재성이 없더라도 이런 노력들이 노력형 천재를 만들고 그래서 어떤 분야에서 선도자가 되어 세계무대로 진출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는 것 같다. 참 자랑스러운 일이다.
물론 나는 그만큼 이 악물고 노력해서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진 못했다.(나중을 기약해봐도 될까?) 그렇지만 내가 가지지 못한 열정을 다해서 최고가 되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지만 진정으로 존중한다.
세계 1위 국가 시민권자의 여유인가?
사설이 길었지만, 남편과 일상에서 얘기를 하다 보면 답답한 사회 문제에 대해 한탄하기도 하지만 국뽕에 차올라 우리나라를 칭찬하고 남편의 나라와 비교하는 순간들이 많았다. 남편은 처음에는 공감하는 포인트도 있었고 잘 호응도 해줬지만, 미국의 크고 소소한 부분들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만 가진 나에게 어느 날은 '미국 거면 다 싫지?'라는 소리를 들은 적도 있다. 이 정도가 되니 '내가 너무 남편의 나라를 깎아내렸나?' 싶어 좀 조심하기로 했다.
그래도 전반적으로는 내 말을 잘 귀 기울여주는 남편이라 착하고 고맙다고 생각한다.
순전히 내 생각인데, 남편 나라의 험담을 잘 들어주는 까닭은 남편의 원래 성격도 있겠지만 본인의 나라는 국가 방어능력은 물론이고 남의 돈 버는 건 타고나서 누가 뭐래도 국력 세계 1위 국가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인정 인정)
그래서 내가 아무리 나쁜 이야기를 하더라도 전 세계 사람들이 인정하는 강대국이기 때문인지 별로 기분 상해하지 않는 것 같다. 남편의 나라가 만약 강대국이 아니었다면 나도 맘 놓고 비판적인 견해를 내진 못했을 것 같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일들이 벌어져도 모든 국가들이 눈치 볼 수밖에 없는 막강한 힘을 가졌기 때문에 어느 나라에 가도 '미국 시민권자'라면 함부로 대하지 않는 것 같다.
일례로 우리 부부가 신혼여행에 갔을 때 몰상식한 그리스 A항공사의 미숙한 운영으로 인해 예정된 비행기가 4시간 연착이 되었고 귀국 편 항공기를 놓치고 말았다. 유럽 항공법상 우리가 받을 수 있는 금전적인 보상은 많지 않았다. 그래도 우리가 받은 금전적 손해를 복구할 수 있을까 하는 희망에 그리스 주 미국 대사관과 한국대사관에 해당 항공사에 대한 강력한 항의와 조치를 부탁하였다. 이후 보상금 액수는 올리지 못했어도 최소한 보상금 받는 시간은 엄청나게 단축된 것 같다. 단언하건대, 우리나라 대사관 때문이 아니라 미국대사관저에서 전화를 넣어서 그리스 항공사에게 칼답을 받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축구를 관전할 때도 마음이 상한다.
나의 남편은 멕시코계 미국인이다. 그래서 2018년 월드컵 당시 스웨덴과 한국의 대전에서는 함께 한국을 응원했지만, 멕시코와 대한민국 대표팀의 매치에서는 각자 다른 팀을 응원했다. 티셔츠마저 남편은 진초록, 나는 빨간색을 입었고 맥주 한 캔씩 마시며 각자 마음으로 지지하는 팀을 응원했다. 각자팀이 득점을 하면 장난을 치며 세리머니를 하기도 했고 아깝게 득점에 실패하면 탄식하기도 했다.
결국 멕시코가 대한민국을 상대로 2:1로 이겼는데 그때 묘하게 약이 올랐다. 물론 나는 축구 광팬도 아니고 한국 축구에 대한 기대감이 없었지만 그래도 우리나라가 지니 마음이 쓰렸다. 애국심이 쓸데없이 발휘되었던 순간이지만 오늘의 한국은 결국 나를 민족주의자 같은 사람으로 만든 것 같다. 아니면, 지는 게 싫어서 쓸데없이 끓어오른 순간의 분노였을까?
세계 1위 국가의 시민권자가 바라보는 아내는?
내 아내는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심이 있고 그 정보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하기 때문에 아내의 나라에 대해서 더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되어서 기쁘다. 그렇지만 가끔 아내는 한국의 좋은 점 때문에 다른 나라에 대해 다소 부정적인 견해를 보이기도 하고 좋지 않은 이미지를 가질 때도 있다.(이야기하는 모든 순간이 좋긴 하지만)
Sometimes my wife gets emotional and passionate about certain topics and begins to talk (and talk). She has taught me a lot of interesting facts, but she tends to compare Korea with other countries and her negative feelings towards other countires come out.(but I love every second of it.)
보이콧을 지지받다.
위안부 협의 문제, 독도 문제, 일본의 무역전쟁 등등... 한국과 일본 사이에는 풀리지 않은 숙제들이 많다. 세계 사람들이 모르는 일본 정부의 교묘한 계략과 이미지 세탁 그리고 자기 나라 브랜드 홍보는 정말 놀랄 만큼 조직적이고 거대한 경제적 뒷받침이 있어서 가능하다는 걸 외교적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나서 알게 되었다. (영화 주전장 추천!)
이런 얘기를 남편에게 하면 어찌할 바를 몰랐고 대놓고 티 내거나 내 말에 반박하진 않았지만 본인은 일본에 가서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고 라면도 너무 좋아한다고 대답하기도 했다. 사실 남의 나라이 야기라 한국사람이라서 끓어오르게 되는 분노의 수위를 다 이해받을 수는 없을 거라는 건 안다. 그렇지만 다행인 점은 남편도 작년부터 일본 제품 불매운동에 동참한다는 것이다.
일본산 라거를 전적으로 좋아하던 남편을 설득했고, 편의점에서 4캔에 만원 하는 일본 수입맥주를 일제히 끊었다. 대신 본인 국가에서 나오는 브랜드의 맥주나 한국에서 만든 예쁜 패키지가 돋보이는 에일 맥주를 더 좋아하게 되고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렇게 일본 맥주를 좋아했으면 나 몰래 사 먹을 법도 한데, 우선 내가 아는 바로는 그런 적은 없어서 이 정도면 남편의 공감능력은 100점 만점에 95점 이상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 같다.
그리고 아직은 진행 중이지만 현재 전 세계에 벌어지고 있는 불운한 사태의 발원지로 의심받는 국가에 대한 견해도 남편에게 피력하고 있다. 내가 제일 먼저 한건 저렴한 가격과 무료배송으로 유명한 알리익스프레스의 앱, 계정, 카드정보를 모두 삭제한 것이다. 이런 조치를 취해도 내 정보는 삭제되지 않고 공산당에 의해 언젠가 이용되게 될 수도 있을 것만 같아 불안하다. 이런 촘촘한 감시망도 무섭지만 그 국가가 취하는 다양한 자본 생성을 위한 상상을 초월하는 반 인류적인 수단들이 참으로 무섭다. 모세혈관처럼 속속들이 침투하여 결국 한 국가의 시스템을 망가트리는 주범국이 되고 있다는 점이 분노를 끌어 오르게 했다.
그러나 남편은 아직 내 분노나 염려에 대해 크게 공감은 못하고 있다. 왜냐하면 내가 믿는 정보의 출처나 정확도에 대해서는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로지 공신력 있는 뉴스만 신뢰하는 남편) 그러나 곧 '천조국'이라고 불리는 미국이 나서서 진실이 밝혀지게 된다면 그때는 믿게 될 거라고 생각한다. 정말 힘들지만 혼자 최대한 보이콧을 하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는 나를 남편이 이해해줘서 감사하고, 이해받을 수 있어서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