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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마레 Mar 20. 2022

언젠가 세렁게티

기린이를 만나러 탄자니아로 가자

결국 기린이를 그렸다. 2년 전 여름 탄자니아에서 코로나19로 일시 귀국한 J언니를 만나고 나니 더 아프리카에 놀러 가고 싶어 졌기 때문이다. J언니는 10년 전 아프리카로 떠나 케냐를 거쳐 지금은 탄자니아에서 근무하고 있는 글로벌 NGO 활동가로 나의 한때 하우스메이트다.

서귀포에서의 1년 이후, 나는 자연이 아름다운 곳으로의 여행은 하되, 일상은 도시에서라는 모토로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정치 분야에서 오래 일하다 활동가가 된 J언니는 코로나19로 한국에 잠시 들어왔다가 항공편이 마련되는 대로 고양이 수푸가 기다리는 탄자니아로 돌아갔다.

오랜만에 만난 J언니와 근황토크를 이어가다 최근에 내가 그린 ‘세렁게티 초식남의 초상화’와 조카 현유가 그린 기린 그림을 보더니, “어머, 얘랑 얘네 친구들, 우리집 앞에서 다 보여”라고 말했다. 설마, 쿨럭.



기린, 얼룩말, 누, 가젤, 사자… 걔네들이 집 앞에서 볼 수 있는 애들이었어?! 믿을 수 없었다. 언니는 당시 살고 있던 곳이 세렁게티국립공원에 인접해 있고, 처음 아프리카에 가서 지냈던 캐냐에선 마사이마라국립공원이 가까웠다고 했다. 실제로 세렁게티국립공원과 마사이마라 국립보호구는 국경선을 사이에 두고 있는 드넓은 초원지대이다.

그렇다. 아프리카 거주자의 포스. 그녀의 집은 세렁게티국립공원과 맞닿아 있어 초원에서 뛰어노는 기린이와 얼룩말은 언제든지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테마파크가 아닌 말 그대로 야생이 펼쳐지는 곳이니, 때때로 표범, 치타 같은 맹수들이 보호지역에서 탈출해 마을에 들어오면 잡혀 되돌아갈 때 까지 인근 거주민들이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감금상태로 지내야 한단다. 아, 이것은 자가격리가 아닌가. 아프리카식 자가격리.


J언니가 아프리카로 돌아가고 난 뒤에도 아프리카 동물들 그중에서도 특별히 귀여운 기린이의 매력에 빠져 기린이의 다양한 포즈를 찾아 스케치를 계속해오고 있는 내게, 친구H는 기린이의 난폭함을 알려주기도 했다.


긴 앞다리로 소위 날라차기를 하기도 하고, 모가지가 슬픈에 등장하는그 긴 목으로 휘두르며 머리로 내려치는 폭력성을 갖췄다는 것이다. 목마른 사슴이 우물을 찾듯이… 에 등장하는 사슴의 물을 먹는 자세는 다리 찢기 수준이라며 귀엽고 우아한 환상을 깨려고 애쓰곤 했다, 정작 나는 “우와. 그 모습도 보고싶다” 그렇다. 나의 기린이 사랑은 좀 맹목적인 데가 있는 모양이다.

무엇보다 독특한 용모가 인상적이었던 기린이를 책에서나 보다가 실제로 처음 본 것은 어린시절 동물원에서였다. 하지만 너무 멀리 있었다. 열심히 불려보았지만 다가오지 않았고, 나도 다가설 수 없었다. 다섯 살 무렵 다녔던 유아원 마당에는 시멘트로 형상을 만들어 노란색 페인트로 물들인 기린이 있었다. 검은 얼룩 무늬도 이쁘게 자리 잡아 어린아이의 눈에는 정말 기린 같아 보였다. 모형은 실제 기린처럼 키가 커서 개구쟁이 남자아이들이나 탈 수 있어서 난 언제나 그 기린을 바라만 보았다. 언젠가 좀 더 자라 그곳에 갔더니 기린이 사라지고 없었다. 무척 아쉬웠다.

대학시절, 미대생 친구에게서 생물학과 교수님에게 배우는 인체해부학 수업이 전공과정에 있다고 들었다. 사실, 움직임을 표현하기 위해서 골격을 이해하면 한결 자연스러울 수 있을 것이다.


동물 역시 마찬가지. 우연히 검색하다가 <미술가를 위한 동물 해부학>이라는 책을 발견하고, 한동안 들여다보았다. 스스로를 기린 덕후라고 이름붙인 과학자가 쓴 <나는 기린 해부학자입니다>도 흥미롭게 읽었다. 내가 그린 기린이의 모습이 조금이나마 자연스러워 보인다면, 이 책들 덕분일 것이다.


그렇게 아프리카와 야생동물은 내 마음 한켠에 머물고 있었다. 언젠가 넷플릭스에서 <크리스마스 인 아프리카>라는 영화를 보며 스토리보다 그곳 풍경에 빠져들었다.

뉴욕의 50 여성이 홀로 아프리카 여행을 떠난 이야기다. 엄마와 아내로만 지내다가 아들을 대학에 보내고 2 신혼여행을 몰래 혼자 준비했지만 남편은 아들이 대학으로 떠난 직후 자기만의 삶을 위해 떠나버렸다. 그녀는 홀로 아프리카로 왔다.


물론 그곳에서 야생을 즐기는 멋진 남성을 만난다. 아프리카의 풍광에 녹아든  언니의 일탈을 흐뭇해하며 바라보았다. 아기 코끼리와의 관계가 스토리의 중심축이었지만 가끔은 기린이도 나와서 나를 즐겁게 해주었다.


 야생에서 만난 남자는 야생의 동물들을 그리는 심지어 ‘화가였다. 그는 뉴욕으로 돌아온 그녀에게 아프리카 풍광  코끼리들을 100호는 될법한 그림으로 그려 보내왔다.

강민아. 세렁게티 기린. 2022. oil on canvas. 53.0x45.5cm

영화를 보다가 아프리카 여행이라는  로망이 이미 일반화된 것인가에 대해서도 자뭇 생각해보았다.  저런 자유인들을  만나려면 어찌해야하는 건가... 고민을 해본다.


 여전히 탄자니아에 가보지 못해서, 기린이는 아직 만나지 못해서, 걔네들을 자주 만나고 싶다는 생각에 기린이를 그렸다. 다음엔 어떤 야생동물을 그려야 할까 즐거운 고민을 시작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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