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자가 참 많아졌다.
언제부턴가 개인적으로 굿즈를 만드는 분들이 참 많이 보인다. 스티커, 포토카드, 키링, 달력, 포토북, 인형, 무드등, 텀블러, 담요 등 종류도 어마어마하게 다양하다. 필자는 프로야구 구단 굿즈도 사 봤는데, 캘린더, 전차스, 도무송(스티커 재단 방식인 Thomson의 일본식 발음이라고 한다)과 몇몇 선수 인화사진을 함께 받을 수 있었다.
아마도 공식 굿즈가 없거나 다양하지 않아서, 또는 공식 굿즈의 퀄리티나 가성비에 경악하여 수많은 개인들이 발 벗고 직접 나선 것이리라. 그런데 이렇게 비공식 굿즈를 아무렇게나 막 만들어도 되는 것일까?
타인이 촬영한 사진이나 공식 로고와 같이 누군가에게 저작권이 인정되는 콘텐츠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저작권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아이돌을 닮은 캐릭터를 창작하거나 로고를 예쁘게 창작해서 그 도안을 기초로 다양한 물품을 만드는 경우, 저작권이 전혀 문제될 위험은 없다.
다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반드시 저작권을 신경 써야 한다. 사진은 일정한 요건을 갖추면 저작물로 인정되어 사진을 촬영한 사람에게 저작권이 발생하는데,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 사진을 물품 제작에 활용하면 사진 저작권자의 저작권을 침해하게 된다. 아이돌이나 회사의 공식 로고를 사용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로 로고 저작권자의 저작권을 침해하게 된다.
[사례 1] 팬이 공연 포스터(얼굴 포함)를 보정하여 출력한 후 무나를 한다면? 엄밀히 따지면 포스터 저작권자(아마도 회사)의 저작권 중 복제권, 배포권 등을 침해하는 것이다. 아티스트 얼굴이 나와 있지 않아도 포스터 자체가 저작물로 인정된다면 포스터 저작권자의 저작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사례 2] 홈마들이 촬영한 사진을 긁어모아 탁상달력을 만들어서 판다면? 사진 저작권자인 홈마들의 허락을 받지 않았다면 홈마들의 저작권을 침해하게 된다.
[사례 3] 공식 캐릭터를 그대로 따라 그린 그림으로 뱃지를 만든다면? 캐릭터 저작권자(아마도 회사)의 저작권을 침해하게 된다.
사례를 보다 보니 직접 사진을 촬영한 홈마가 자신이 촬영한 사진을 이용하여 굿즈를 만드는 것은 저작권법상 문제가 없다는 말인데, 저작권만 해결되면 마음 놓고 굿즈를 만들어도 되는 걸까?
얼굴이 나오는 사진이라면 초상권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함부로 촬영되거나, 묘사되거나, 공표되거나 영리적으로 이용당하지 않을 권리인 초상권을 가지는데, 피사체인 사람의 의사에 반하여 사진을 찍어서 공개하거나 그 사진을 이용하여 물품을 제작한다면 초상권을 침해하게 된다. 영리적으로 활용할 경우 부정경쟁방지법을 위반하게 될 수도 있다.
이름이나 그룹명을 이용하는 경우에는 상표권이 문제될 수도 있다. 특히 아이돌은 공식 로고나 명칭을 상표로 등록해두는 경우가 많은데, 등록된 상표를 이용하여 굿즈를 제작한다면 영리 목적이 아니더라도 경우에 따라 상표권자의 상표권을 침해하게 된다. 소속사와의 계약이 끝난 가수들이 기존의 그룹명을 사용할 수 없게 되는 것도 상표권의 문제다.
출처: 특허정보넷 키프리스
공식 굿즈를 동일하게 또는 유사하게 복제하여 짝퉁을 만드는 경우에는 위에서 언급한 저작권, 초상권, 상표권뿐만 아니라 경우에 따라 디자인권까지 침해하게 될 수도 있다.
출처: 특허정보넷 키프리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공식 굿즈들은 여전히 끊임없이 생산되고 유통된다. 회사에서 문제삼지 않는 것은 그런 행위가 해가 되지 않기 때문에, 혹은 일일이 대응하기 곤란하기 때문일 뿐이지, 법적으로 문제가 없어서가 아니다. 명예를 훼손하거나, 해가 될 수 있거나, 업무에 방해가 된다면 회사는 언제든지 저작권 침해, 초상권 침해 상표권 침해,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등을 주장할 수 있다.
즐겁자고 하는 덕질이다. 돈 벌자고 하는 것도 아니고 내 재능을 기부해서 다 같이 열심히 덕질하자고 하는 일인데, 어느 날 갑자기 저작권이니 상표권이니 하는 문제가 생기면 참 난감할 것이다. 그런데 회사에서 공식 굿즈를 만들 생각을 하지 않거나 한숨밖에 나오지 않는 퀄리티의 굿즈를 내놓는다면 팬들은 답답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권리자의 권리는 충분히 보호되어야 한다. 권리자가 스스로 권리 침해를 감수하고 풀어주는 것은 그 대전제가 충분히 지켜진 다음의 일이다.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비공굿은 누군가의 권리를 침해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아무 생각 없이 굿즈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회사도 그저 금지하기만 할 수는 없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풀어주기도 한다. 각자 자기가 파고 있는 분야에서 회사가 용인하고 있는 비공굿의 범위는 알고 있을 텐데, 그 범위 안에서 과하지 않게 하여야 한다. 팬덤이 있다면 임원들이 회사에 문의를 하여 자체적으로 범위를 정하고 스스로 지킬 수 있도록 규칙을 정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매니지먼트사도 마음 편히 권리만 주장할 것이 아니라 서비스를 개선할 노력을 하여야 한다. 팬들의 니즈를 파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단순히 팬들이 원하는 굿즈를 제작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팬들이 원하는 퀄리티로 굿즈를 뽑아내야 한다. 그러면서도 팬심을 악용한 상술이 되지 않도록 지나치게 높은 가격을 매기지 않아야 한다. 눈앞의 이익만 보고 이를 어긴다면, 결국 지쳐버린 팬들이 빠져나가는 불상사가 발생할 수도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