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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3. Welcome Back

: 많은 일이 있었다

by 낙타

이 글은, 잠깐 글을 쓰지 않았던 시기의 감정에 대한 갈무리이자, 앞으로 펼쳐질 밴쿠버 삶에 대한 고민의 정리이자, 다시 새롭게 시작하는 취미 생활의 첫 글이다. 그래서 그런지 다소 난해하며 추상적이고 무엇보다 우울하다. 그러나 쓰지 않고 넘어갈 수는 없는 글이다.


글을 안 쓰는 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한국에서부터 만났던 애인과 헤어지고, 여기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 인연을 맺었고, 몽피투를 그만두고 나왔으며, 새로운 한국인 가게에 들어갔다가 2주 만에 잘렸고,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했고, 난생처음 동거를 시작했으며, 밴쿠버 공립 도서관(VPL, Vancouver Public Library)을 이용하게 되었다. 그 외에도 소소하게 새로운 스투시(Stussy) 티셔츠를 사거나, 희귀한 뉴발란스(New Balance) 스니커즈를 얻었다거나, 새로운 친구들을 만났다거나 하는 일들이 있었다. 맞아, 잠깐 한국에 다녀오기도 했다. 약도 더 이상 먹지 않는다.


브런치에 마지막 글을 올린 4월 9일부터 글을 쓰고 있는 지금까지 많은 일이 있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나라는 사람은 전혀 변하지 않은 느낌이다. 여전히 대부분 우울하고, 조금 비열하고, 가끔 다정하며, 매일 불안한 사람이다. 나는 밴쿠버에 온 것을 매일 후회하다가도, 문득 내가 서울에 남았다 해도 지금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여전히 방향을 잃고서 어디서도 길을 찾지 못하고, 돌아갈 곳을 찾지 못한다고 느끼며 방황 중이었을 것이다.


최근에는 시간이 많아져서 다시 책을 붙잡고 있다. 한국에서 책을 많이 가져오기도 했고, 밴쿠버 공립 도서관에서 한글로 된 책을 잔뜩 구해서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일이 없어져서 시간이 많아진 탓이 제일 크다. 나야 원래 책을 읽으며 시간을 죽이던 사람이었으니.


시간이 많아져서 그런지 여러 가지 생각이 딴 길로 많이 샜고, 그 길 중에 하나에 글쓰기가 있었다. 글을 읽어서 내가 남길 수 있는 것은 유일하게 글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다. 글을 잘 쓰는 재주는 부족하고, 재밌게 쓰는 재주는 더더욱 부족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이라는 게 지금은 거의 유일하게 내가 말을 걸 수 있는 상대처럼 느껴진다. 그러다 문득 내가 방치하고 있던 브런치의 블로그가 생각나서 이렇게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이 귀환을 환영하고 눈여겨보고 있는 거의 유일한 사람으로서 내가 돌아오게 되어 기쁘다.


이번에는 오래 머물다 갈 수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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