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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9. The Joys of Consumption

: 소비의 기쁨

by 낙타

밴쿠버에 와서 좋은 일을 생각해 보면 손에 꼽겠지만, 그중에는 분명 소비가 있다. 소위 미제 브랜드를 한국보다 싼값에 손쉽게 구할 수 있다는 메리트가 적지 않다. 아무리 글로벌 시대라지만 “이거 우리 아빠가 미국에서 사 온 거다”라는 말에 담긴 감각은 여전히 한국에서 먹히는 것 같으니까. 나도 그래서 미제 물품에 눈이 돌아가곤 한다.


요즘 맛이 들린 나의 가장 큰 취미 중 하나는 서로 다른 위너스(Winners) 매장에 놀러 가는 것이다. 위너스는 미국 ‘티제이 엑스(TJX)’의 캐나다 브랜드인데, 각종 악성재고를 떼어와서 싼 값에 파는 아웃렛 매장으로 보인다. 즉, 시즌이 지난 신발, 향수, 장난감, 애견 용품, 미용 용품, 텀블러, 가전제품 등등 다양한 물건들이 한 자리에 모여있는 곳이다. 비용도 정가보다 30% 이상 저렴하게 책정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재미있는 점은 날짜마다 매장마다 들여오는 물건이 다르다는 것이다. 그래서 먹을 게 없는 걸 알면서도 냉장고를 한 번 더 열어보듯이 매장을 여러 번 방문해 보는 맛이 있다. 매일 내가 어떤 상품을 획득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주관적인 인상이지만, 예를 들어 다운타운 매장(660 Granville St)은 신발이 제일 많이 들어온다. 색깔이 조금 괴상하고 해괴하지만 성능만큼은 믿을 만한 각종 뉴발란스 신발이 자주 들어온다. 캠비 매장(491 W 8th Ave)은 특출 날 것은 없지만, 50만 원까지 프리미엄이 붙은 한정판 뉴발란스 스니커즈를 단돈 16만 원에 업어온 곳이다. 랜스다운 매장(5300 Number 3 Rd)은 북유럽의 방수 브랜드인 레인즈(RAINS) 가방의 재고가 많은 곳이다. 이렇듯 매장별로 들어오는 물건들도 다르고 날짜마다 또 상이하다 보니, 매번 매장을 볼 때마다 무엇이 있을지 궁금해서 방문하지 않을 수가 없다.


스투시(Stussy) 브랜드 티셔츠가 한국보다 저렴하다는 것도 큰 이점 중 하나이다. 한국에서 10만 원 돈이 훌쩍 넘어가는 브랜드 티셔츠를 어쨌든 5만 원 정도의 가격에 살 수 있다는 것은 적지 않은 메리트다. 자라(ZARA) 매장만 가도 티셔츠를 같은 가격에 팔고 있으니 말 다했지. 덕분에 여기 와서 나도 스투시 티셔츠를 하나씩 모으고 있다.


아크테릭스(Arc’teryx), 룰루레몬(Lululemon), 캐나다 구즈(Canada Goose) 같은 명품이 아닌 일상적인 소비의 영역에서도 어쨌든 양품을 구할 수 있다는 상황은 내 소비를 꽤나 즐겁게 만들어준다. 캐나다의 위너스는 ‘더 싼값에 소비하는 맛’을 고객에게 전달해 준다. 즉 정가보다 저렴한 값에 이미 인정받은 좋은 품질의 물건을 사는 맛이 쏠쏠하다. 소위 ‘득템’의 경험이 한두 번 쌓여가면서 이제 점점 더 위너스 매장을 지나치기가 어려워지는 게 흠이라면 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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