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페미니스트입니다.”
이상한 소개글이었다. 누가 틴더 프로필을 이렇게 적어놓지, 하고 여주는 생각했다. 페미니스트가 뭔지는 어렴풋이 알았다. 그러나 그 뒤로 적혀있는 유성애자, 이성애자, 비건, 퀴어, 앨라이 등의 단어는 감도 안 잡혔다.
여주는 NJ라는 이름의 프로필을 오른쪽으로 스와이프 했다. 스노우앱 필터와 얼굴 보정을 잔뜩 먹여놓은 사진이 제법 귀여워서라기보다는 순전히 남자가 페미니스트라고 적어놓은 깡과 의도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여주가 스와이프 하기 무섭게 NJ와 매칭되었다는 알림이 화면에 나타났다. ‘대체 뭐 하는 새끼일까.’ 여주는 프로필에 대해 꼭 물어볼 생각이었다.
“반갑습니다! 오늘 하루는 어떻게 보내고 계세요?”
매칭되기 무섭게 바로 NJ로부터 연락이 날아왔다. 재미없는 멘트지만 예의는 바르구나 싶다가도, 이런 연락을 벌써 몇 명에게나 보냈을까 생각하면 기분이 짜게 식었다. 매번 매칭이 될 때마다 이렇게 헐레벌떡 달려와 연락하나 보지?
여주는 이런저런 답장을 생각하다가 단도직입적으로 나가기로 했다. 어차피 NJ를 선택한 이유도 호감이 아니라 호기심이었으니까. 구태여 첫 답장과 그에 따라 상대에게 비칠 자신의 인상 따위를 생각하며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잘 보내고 있어요. 페미니스트예요?”
여주가 답장을 보내기 무섭게 화면 속에 상대방이 타이핑 중이라는 알림이 나타났다. 아무래도 채팅창을 계속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네! 맞아요!”
명랑한 놈이군, 말끝마다 느낌표를 붙이는 걸 보니. 여주는 침대에 기대어있는 자세를 고쳐 잡았다. 아무래도 야심한 밤의 이 대화가 조금 더 이어질 것 같았으므로.
“남자 아니에요? 남자가 왜 페미니스트가 됐어요?”
여주는 자신이 물어놓고도 NJ가 뭐라고 답할지 궁금했다. 곤란한 질문이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답변이 빨리 왔다.
“페미니즘이 곧 남자의 문제라서요.”
“무슨 뜻이에요?”
“페미니즘은 성폭력이나 성차별과 같은 문제를 다루잖아요. 만약 여자가 성차별이나 성폭력을 당한다면 남자가 성차별과 성폭력을 저지르는 거니까, 페미니즘은 곧 남자의 문제인 거죠.”
처음엔 무슨 말인가 싶어 짜증이 났지만 부연설명을 듣자니 어느 정도 그럴싸했다. 완전 뜬구름 잡는 소리는 아닌 것 같았다. 그러나 문득 이런 답변이 왜 이렇게 빨리 온 건지 의문스러웠다. 이렇게 빠른 걸로 보아 아무래도 미리 준비해 놓은 것 같은 인상이 들었다. 아니면 이게 쉽게 답할 수 있는 질문이었나? 그렇지는 않은 것 같은데. 문득 이런 질문을 많이 받아봤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재밌네요.”
“하하.”
“무슨 계기가 있었어요?”
상대방이 타이핑 중이라는 알림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며 스마트폰 화면 속을 부산스럽게 돌아다녔다. NJ는 정갈한 말투로 “대학에 다닐 때 우연히 교양으로 페미니즘 수업을 들었고 그 이후로 그 이론에 완전히 매료되었다”고, “그 후로 계속 책을 읽거나, 수업을 듣고, 인권 단체 활동 같은 것을 하다가 대학원에 진학하게 되었다”고 했다. 대학원생이냐고 물어보니 NJ는 석사과정 논문을 쓰고 있다고 답했다.
“주제가 뭐예요?”
“아직 안정해졌어요!”
여주는 곧장 답장하지 않고 화면에 떠 있는 메시지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안 그래도 판에 박힌 듯한 몸자랑과 돈자랑에 더해 FWB나 ONS 같은 무수한 섹스어필 속에서 데이팅앱에 질려 학을 떼려던 차였다. 간만에 흥미로운 녀석을 만난 것 같았다. ‘나쁘지 않네’하고 여주는 생각했다.
“언제 시간 되면 같이 커피 마셔요.”
“좋죠!”
그렇기에 여주는 이 나빠보이지 않는 인물에게 먼저 커피 만남을 제안할 수 있었다. 그 후에는 밤이 늦었기에 곧장 “잘 자요”라는 인사를 남겼고 답장을 확인하지 않은 채 본인도 잘 잤다.
스마트폰에서 띠링하고 알림음이 울렸다.
“‘쭈'님도 잘 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