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 이름이 남주라고 했다.
“성이 뭐예요?”
“한 씨예요.”
한남주. 독특한 이름이네.
“‘쭈'님은요?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저요? 저는 여주예요, 김여주.”
비슷한 이름이네요! 하고 남주는 목소리를 높였다. 우연을 애써 특별하게 여기고 싶지는 않지만 비슷한 건 사실이지. 여주는 “그렇네요”하고 답했다.
처음 만나는 장소는 남주가 정했다. 며칠간 시시한 호구조사를 하다가 슬슬 만나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남주는 자신이 좋은 카페를 안다고 말했다. 을지로 근처에 숨어있는 카페는 인스타그램에 나올 법한, 꽤나 세련되고 보는 맛이 있는 장소였다. 토요일이었기 때문에 서울 각지에서 도심 속 휴양지를 찾아온 손님들로 가게가 붐볐다. 사람들이 내는 소음 덕분에 두 사람이 틴더로 처음 만났다는 것을 감출 수 있어서 여주는 마음에 들었다.
남주의 첫인상은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았다. 얼굴이나 몸집을 보면 흔하디 흔한 20대 후반의 한국 남자로 보였으나 소매를 걷어올린 팔에 있는 커다란 문신이 독특했다. 문신을 봤을 땐 다소 양아치스러울 줄 알았으나 입을 여니 말투는 또 정중했고 담배도 피우지 않는다고 했다. 전체적으로 조화롭지 못한 캐릭터였으나 미묘한 균열과 틈새가 다소 인상적이었다.
남주는 처음 만난 순간부터 생글생글 웃으며 여주에게 이것저것 질문을 했다. 여기까지 멀진 않으셨는지, 무엇을 타고 오셨는지, 점심은 드셨는지, 취미는 무엇인지 등등. 기본적으로 틴더에서 나눈 호구조사의 오프라인 버전이었다. 여주는 일하면서 배운 대로 적당히 대답하고 적당히 맞장구쳤으며 적당히 웃어주었다.
사실 여주는 조금씩 실망하고 있었다. 틴더에서 만난 NJ에게 기대했던 첫인상과 다르게 남주는 묘하게 평범했다. 무엇보다 이 상대방이 계속 말을 돌리는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하는 것보다 우선 상대방의 비위를 맞추고 예의를 차리는 데에 급급한 느낌. 여주는 어느 순간부터 조금씩 답답함을 느꼈다.
그리고 이런 분위기를 읽은 것인지 남주에게서도 갈수록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여주는 문득 상대방으로 하여금 신경쓰이게 만들어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잘 알지도 모르는 상대방과 어떨지도 모르는 데이트를 하는 것보다야 토요일 하루가 더 소중했으니까.
“여주 씨는 페미니즘에 관심이 있으신가요?”
“그런데 페미니즘이 정확히 뭐예요?”
여주 본인이 느끼기에도 조금 날카로운 톤이었다. 여주는 난처해하는 남주의 얼굴을 보고 조금 아차 싶었다. 그러나 남주는 금방 난처해하는 기색을 지우고 말을 이어갔다.
“쉽게 얘기하면 성차별을 없애려는 거죠.”
“어렵게 말하면요?”
“성별에 기반한 차별과 불평등을 종식시키려는 이론이자 실천이에요.”
“어쨌든 나쁜 거 아닌가요?”
여주는 인터넷을 많이 하는 사람 같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터넷 같은 곳에서 무슨 말이 도는지는 얼핏 들었다. 여자들이 집단적으로 남자들 욕을 하고 남자들을 혐오한다고 했다.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여주는 여자들이 안 그랬던 적이 있었나 싶었지만, 그런 소식에는 항상 페미니즘, 페미니스트 같은 말이 따라붙었다.
나쁘다는 얘기를 꺼내자 남주는 이번에도 난처하다는 듯이 웃었지만 금세 또 그런 기류를 물 흐르듯 넘겼다.
“그렇지도 않아요. 성차별을 하지 말 자는 게 어떻게 나쁜 거겠어요.”
여주는 요즘 세상에 성차별이 어딨냐고 묻고 싶었지만 막상 입을 열려다 되려 그만두었다. 남주가 곤란해하는 게 안타까워서라기보다는 문득 ‘이거 성차별 아닌가?’ 싶었던 순간들이 어렴풋 떠올랐기 때문이다. 뭐, 그렇게 볼 수도 있겠네.
“성차별은 어떻게 종식시키는데요?”
추궁에서 질문으로 의문문의 방향이 바뀌자 남주의 얼굴색이 밝아지는 게 보였다.
“우선 성차별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겠죠.”
남주는 몸을 기울이고 여주에게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왜 성폭력 피해자의 대부분은 여성이고 가해자의 대부분은 남성일까요? 왜 성판매자는 대부분 여성이고 성구매자는 대부분 남성일까요? 여성과 남성이라는 구분은 평등한 걸까요? 애초에 여성과 남성이라는 구분이 자연스러운 걸까요?
남주가 말하는 대부분은 질문이었고 대부분은 여주가 생각하지 못했던 질문이었다. 아니, 사실 여주가 생각할 필요가 없는 질문이었다고 보는 게 맞았다. 여성과 남성이라는 구분이 자연스럽냐니, 그런 걸 질문할 필요가 있는 걸까?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이라는 말이 있어요. 조금 뜬구름 잡는 질문 같긴 해도 일상과 매우 밀접하게 연결된 질문들이에요.”
여주는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이기는 했으나 사실은 이해하지도, 아니, 애초에 공감하지도 못했다. 질문의 내용을 떠나서 질문의 필요성 자체가 와닿지 않는 상황에서 무엇을 어쩌겠는가?
여주는 조금 미지근해진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셨다. 적당한 산미와 바디감이 입 안에 조화롭게 맴돌았다. 도통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지만 카페를 고르는 안목만큼은 나쁘지 않군. 여주는 생글생글 웃고 있는 남주를 향해 예의 바르게 미소 지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