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리얼중독자 Apr 23. 2024

스텝

스텝을 밟을 땐 성질을 부려선 안됩니다. 아무리 의도한 대로 걸음이 밟히지 않더라도 말이지요. 앞, 뒤, 앞, 뒤, 힘주고, 흔들고, 털고, 차고, 밟고, 뛰어오릅니다. Y선생님은 아무리 빠른 스텝도 천천히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탭댄스를 배운 지 5년이 되었습니다. 무슨 일이든 그 일에 능숙해지기 위해서는 10년 혹은 10,000시간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아직 그 정도에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탭댄스는 힘든 시기에 많은 힘이 되었습니다. 그날 아무리 논문이 풀리지 않더라도, 너무나 많은 카드값을 마주하더라도, 힘겨운 대화를 나눴더라도, 온 힘으로 스텝을 밟고 온몸이 땀으로 젖으면 언제든 그전보다는 기분이 좀 나았습니다.


게으름을 피울 때도 있었죠. 몇 주 혹은 몇 달간 학원을 나가지 않기도 했습니다. 그런 뒤에 무겁고 겁나는 마음으로 학원을 나가면 G선생님과 Y선생님의 핀잔을 들으며 멋쩍게 웃었습니다. 그러고 나서는 다시 몸을 풀고 스텝을 밟았습니다. 셔플, 플랩, 토, 힐, 원, 투, 쓰리, 포.


5년의 시간 동안 많은 게 달라졌습니다. 논문이 통과하고, 졸업을 하고, 쌍수를 하고, 개명을 하고, 애인과 헤어지고, 사귀고, 화해하고, 어머니와 사업을 하고, 싸우고, 화해하고, 친구와 싸우고, 사귀고, 화해하고, 군대를 가고, 책을 읽고, 운동을 하고, 조깅을 하고, 바쁜 삶을, 뿌듯한 삶을, 부끄러운 삶을, 살았습니다.


그동안 탭댄스를 하고 있습니다. 스텝이 조금 더 능숙해지고 노련해지길 바라면서요. 아직도 의도한 대로 걸음이 밟히지 않고, 리듬이 꼬이고, 체력이 달립니다. 그래도 스텝을 밟을 땐 성질을 부려선 안됩니다. Y선생님은 아무리 빠른 스텝도 천천히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병상에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