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에 어폐가 있다. 내 시계는 절대로 비싼 편이 아니다. 그저 나 혼자 내 시계가 비싸다고 느낄 뿐이다. 왜냐하면 내 시계가 내 소비 생활 수준을 웃도는 편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제대로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내게 꽤 비싸게 느껴지는 시계를 손목 위에 차고 걷는다.
비싼 시계를 차고 걷다 보니,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시계를 보고 싶어서 자주 시계를 확인한다. 손목을 들어 시계를 보고 나서 휴대폰으로 다시 시간을 확인하는 일도 부지기수다. 내 시계는 시계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
내 시계는 액세서리의 역할을 제대로 해낸다. 요즘은 시계의 모양을 한 팔찌도 나오고 있으니, 이런 관점이 꼭 혼자만의 것도 아닌 것 같다. 미국의 팝아트 거장 앤디 워홀(Andy Warhol)은 까르띠에(Cartier)의 탱크(Tank) 모델을 두고 이런 말을 했다.
“I don’t wear a Tank to tell the time. In fact, I never wind it. I wear a Tank because it’s the watch to wear.” 난 시간을 보려고 탱크를 차는 게 아니다. 사실 태엽을 감아본 적도 없다. 나는 차야하는 시계라서 탱크를 찬다.
이렇듯 시계가 시계가 아닌 액세서리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시계를 소비하는 방식도 달라지고 만다. 시계를 대하는 방식의 변화는 다음과 같이 간단하게 정리해 볼 수도 있다.
질문: 내 시계는 도구인가? 대답: X 질문: 내 시계는 장식인가? 대답: O
내 시계가 시간을 제대로 알려주는가? 대답: X 내 시계가 나를 제대로 꾸며주는가? 대답: O
내 시계가 상대방의 시계보다 정확한가? 대답: X 내 시계가 상대방의 시계보다 비싼가? 대답: O
이렇다 보니 계속 시계를 사모으게 된다. 시계가 시계로 여겨진다면 1개로 충분하다. 그러나 시계가 액세서리로 여겨진다면 내 취향만큼 많이 필요하다. 그렇다 보니 ‘데일리(daily)’, ‘전투용’, ‘기추욕(기기 추가 욕구)’ 같은 말을 써가면서 스스로를 합리화하고 시계를 계속 사모으게 된다.
이런 방식이 시계를 즐기는 방식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런 방식이 시계를 즐기는 건강한 방식이 아닐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시계는 수집품일 수도, 액세서리일 수도, 재테크 수단일 수도, 도구일 수도 있다. 그러나 자금 사정을 파탄 내는 방식으로 시계를 사 모으는 방식이 과연 건강할 수 있을까? 그럴 수가 없음을 주장하는 것이다.
요즘 시대의 트렌드는 힙한 물건을 사는 것에서 나아가서, 이제 힙한 물건을 잘 쓰는 것까지 도달했다. 이런 정신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옛말은 대체로 다 맞는 편이고, 아끼다가 똥 된다는 말 또한 꽤나 진실이다. 내가 비싼 시계를 갖고 있으면 무엇하겠는가? 내 손목 위에 올라가는 시계는 단 1개뿐인데.
중고로 산 시계를 얼마 안 가 또 중고로 파는 일은 이제 지긋지긋하기 때문이다. 한 푼두푼하는 것도 아닌 이 도구이자 액세서리를 어떻게 해야 잘 쓸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