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를 뱃속에 품고 10달을 보냈다. 점점 불러오는 배에 일상이 조금 불편해지기는 했지만 크게 달라질 것은 없었다. 나는 여전히 나였고 전처럼 직장에 다녔고 주말에는 아껴놓은 좋아하는 일들을 즐겼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 모든 것은 하루아침에 달라질 것이다. 직장에 나가는 대신 아침부터 밤까지 아기를 돌봐야 할 것이고 더 이상 주말도 의미 없을 것이다. 가까운 카페 나들이도 사치가 될 것이고 모든 것이 아기를 중심으로 돌아가겠지. 이 정도는 아무것도 모르는 나도 예상할 수 있었다. 그런데 아기를 낳고 보니 가장 당황스러운 것은 이런 것들이 아니었다.
어느 날 갑자기 뿅 하고 아기가 생겼듯이 아기가 태어나면 당연히 뿅 하고 생기는 것이 모성애라고 생각했는데 내 아기가 남처럼 낯설었다. 분만실에서 분명 내 뱃속에서 나오는 순간을 목격했음에도 불구하고 쭈글쭈글한 생명체에 너무도 담담해서 1차 당황. 첫 모유 수유 때,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순간을 상상했으나 생경한 느낌이 오히려 기분 나쁨에 가까워서 2차 당황. 조리원에 나란히 누워있는 아기들이 다 거기서 거기로 느껴져서 3차 당황.
조리원 생활 후 집으로 돌아와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우유를 먹이고 트림을 시키고 기저귀를 갈고 안아주고 재워주고 놀아주고 최선을 다했지만 어딘지 마음이 무거웠다. 사랑보다는 의무에 가까운 것들로 하루를 채웠다. 자식을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하지 않는 내가 이상했다.내 기준에서 나는 나쁜 엄마였다. 죄책감이 밀려왔다.
세상에 공짜는 없듯이 아기를 낳았다고 어느 날 갑자기 모성애 가득한 엄마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상식적으로 당연한 말인데 그걸 이제야 깨달았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함께한 시간이었다. 기고, 앉고, 걷는 아이의 뒤에 조바심 내며 기다리던 날들, 열이 나는 아이의 등을 쓸어주며 지새운 밤들, 아이의 환한 웃음 하나에 눈 녹듯 피로가 녹아버리던 순간들, 그 작은 품으로, 그 작은 입으로 사랑을 나눠주던 시간들이 쌓이고 쌓여 엄마가 되고, 가족이 되는 것이었다. 모든 것에는 시간의 힘이 필요한 것이었다.
아이가 내 말버릇을 따라 할 때면, 그 작은 입과 몸짓에서 나의 흔적을 발견할 때면 뭉클해진다. 외계인들만 가득한 낯선 세상에서 동족을 만난 것 같은 느낌이랄까. 아이의 존재만으로 화석처럼 딱딱하게 굳었던 마음이 말랑말랑해진다. 시간 속에서 우리는 비슷한 말투와 표정, 생활 습관을 공유하며 진짜 가족이 되어간다.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슬픔과 기쁨을 미루어 짐작하고 마음을 나눈다. 평범한 일상 속에 사랑을 채워간다. 이것은 감히 진짜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