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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족이 되었다

by 다비드

짠짠이를 처음 본 순간 내 생각은, "입이 완전 세모네. 윗입술이 두껍구만." 정도였다. 짠짠이는 3.23kg 크지도 작지도 않은 적당한 무게로 태어났고 카랑카랑하고 크게 울었다. 처제를 시켜서 사진을 몇 장 찍고 동영상은 생각을 못 했는데 나중에 아내가 영상을 왜 안 찍었냐며 많이 아쉬워했다. 아내가 자연분만을 하고 싶어 했던 가장 큰 이유가 막 나와서 우는 짠짠이를 직접 보고 싶어서였다고. 안타깝게도 거기까지 생각이 미칠 여유가 없었다. 아직 아내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왕절개 출산을 하고 나면 아기를 꺼낸 후에 수술 마무리하는 시간의 기다림이 추가된다. 짠짠이를 기다릴 때보다 이때가 더 시간이 가질 않았다.

다행히 오래 기다리지 않고 아내를 만났다. 아내는 누워서 기진맥진한 상태에서도 가장 먼저 짠짠이를 찾았다. 얼른 보고 안아보고 싶다고. 사진을 보여줬지만 영상이 없다는 타박도 이때. 아내가 나오고 나니 긴장이 풀리고 이제 다 되었구나 싶었다. 남은 건 잘 쉬고 회복하는 것뿐. 아내는 혈압이 잘 안 떨어져서 좀 더 안정을 취했지만 큰 문제없이 입원실로 옮겼다.

제왕절개는 회복이 힘들다더니 과연 그랬다. 아내는 한동안 누워서 아무것도 못 하고 움직일 때마다 굉장히 힘들어했다. 화장실 한 번 가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아내는 얼른 움직여야 면회시간에 짠짠이를 볼 수 있다고 기를 쓰고 움직였다. 나는 옆에서 필요한 거 준비하고 잡아주고 보조해주는 역할. 남편이 해야 할 일들 중 하나는 아내의 수술 부위가 회복될 때까지 대놓는 패드를 계속 갈아주는 것인데 허둥지둥 진땀을 뺐다. 처음 패드를 갈 때 기억이 잊히지 않는다. 아내의 몸에는 짠짠이를 만나기 위해 벌였던 사투가 그대로 남아 있었고 그걸 보니 아내가 정말 힘들고 고생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단지 생각일 뿐이고 실제로 온몸으로 겪은 아내의 시간과 감각은 내가 도저히 상상할 수 있는 게 아닐 것이다.


크기변환_SmartSelect_20190511-060925_Video Player.gif 그러거나 말거나 난 하품이나 하렵니다.


아내의 최우선 목표는 얼른 회복해서 짠짠이를 만나는 것. 우리 병원은 모자동실을 운영하지 않아서 하루에 3번 정해진 시간에 면회를 가서 유리창 밖에서 보거나 모유수유 시간에 만나야 했다. 아내는 오후 4시쯤 입원실에 들어왔지만 어떻게든 저녁 7시 면회를 가려고 안간힘이었다. 의지의 짠짠이 엄마.

면회시간에는 신생아실 유리창 앞에서 가족들이 같이 아기를 볼 수 있는데 사람은 많고 창가는 좁으니 항상 북적거렸다. 아기의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이모, 삼촌 할 것 없이 다들 유리창에 다닥다닥 붙어 아기를 보는 모습이란. 약간의 팁이라면 약 30분 정도 되는 면회시간 중 15분 정도 지난 후에 가면 자리도 여유 있고 좀 더 길게 볼 수 있다. 시작시간에 맞춰 가면 사람도 많고 그러니 자리를 비켜줘야 해서 길게 보지도 못하더라. 아내는 걸어서 가진 못하고 휠체어를 타고 출산 6시간 만에 짠짠이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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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 집안의 수퍼스타를 만나려고 북적북적. 우리도 우리집 수퍼스타와 첫 사진!


몸 회복하는 것과 동시에 아내는 모유수유 준비에 돌입. 장기적인 아내의 목표는 6개월 완모. 병원에 있는 동안 열심히 모유를 유축해서 실어 날랐다. 천천히 회복하면서 거동 범위를 늘려가고 정해진 시간에 유축하고 짠짠이도 만나고 하면서 3박 4일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그 와중에 아내 생일(5월 12일)이 있어서 병실에서 아주 간단한 만찬 준비. 아내가 좋아하는 가게를 찾아 서울에서 빠떼와 빵을 사고 집에서 음료와 식기도 조금 챙겨다가 조촐히 차려놓고 축하를 했다. 생일 이틀 전에 아들 낳은 우리 마누라 고생 많았소! 셋이서 잘 살아봅시다!

20190512_203232.jpg 산부인과 입원실에서 음주를 하는 사람이 여기 있습니다.



하루는 길고 일주일은 금방인 나날들이 지나 어느새 짠짠이는 6개월이 되었다. 점심 먹여서 재워놓고 글을 쓰는 중인 2019년 11월 9일 오후. 간신히 재웠더니 중간에 깨서 아내와 같이 씨름하느라 글을 쓰다 말다 왔다 갔다. 매번 브런치 쓸 때마다 반복하는 일상.

짠짠이 100일을 어떻게 할까 알아보던 7월 어느 날,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짠짠이를 가지고 처음 만나기까지 그리고 커가는 모습까지 글과 사진으로 남겨서 나중에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 우리가 어떤 생각으로 어떤 시간을 보내며 너를 기다리고 만났는지 조금이나마 알 수 있기를. 그리고 우리도 이때의 기억을 잊지 않기를. 하나 더 바라자면, 우리 가족들과 지인들, 이름 모를 독자들도 "오호 얘네는 이렇게 사는구나" 하고 읽어주면 참 좋겠다.


20170512_161146.jpg 실질적인 목적은 "내가 니를 어찌 키웠는데"에 대한 근거자료입니다.


이제 본격적인 전투 육아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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