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리원을 나와서 집에 도착했다. 내 딴에는 미리 집 정리를 해둔다고 했지만 아무래도 집을 비운 티가 나는 우리 집. 문을 열고 들어가니 뭔가 생경했다. 보름 전에 배가 부른 아내와 같이 나와서 이제는 짠짠이를 들고 셋이 들어가다니. 짠짠이가 태어나고 나서 모든 게 다 신기하고 낯설었지만 집에 들어오니 확 실감이 났다. 이제 우리 집에서 셋이 사는구나. 조리원에서 서로 친해져 놔서(?) 어색함은 딱히 없었지만 새로운 공간에 오니 새삼 낯설었다. 결정적으로는 이제 짠짠이와 24시간 같이 있고 모든 걸 우리가 직접 해야 한다는 게 크게 다가왔다. 조리원에서는 먹이기 정도만 했다면 이젠 기저귀 갈기, 재우기, 놀기, 씻기기 등등이 추가.
대부분의 숙제가 그러한데, 하기 전에는 걱정이 많다가 막상 하기 시작하면 "생각보다 할만하네.", "대충 어떻게 되네." 하게 된다. 짠짠이와 24시간 붙어사는 것도 어느 정도 일맥상통. 한 번도 안 해본 것들이 생각보다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옛날에 지인들이 아기 기저귀 가는 걸 보면 굉장히 낯설었는데, 이게 웬걸 짠짠이 기저귀 가는 게 아무런 위화감이 없더라. 갓 20일쯤 된 아기는 침 흘리고 토하는 게 일상이고 똥오줌도 심심찮게 접하게 되는데 그걸 닦고 치우는데 왠지 아무렇지도 않았다. 정말 내 자식이라 이런 건가. 다행히 아빠 실격은 아닌가 보다.
첫날은 허둥지둥 우왕좌왕하며 흘러갔지만 나는 내일 출근을 해야 했다. 그래서 도우미 아주머니를 2주간 고용하기로. 대부분의 지자체가 산후도우미 보조금을 지원하므로 안 쓰는 게 오히려 손해인 느낌도 들고, 무엇보다도 우리는 실제로 도움이 필요했다. 조리원에 있을 때 아내가 이리저리 알아보고 적당한 가격대에 후기가 괜찮은 업체를 통해 소개받은 아주머니가 오시게 되었다. 맞벌이 부부가 육아를 하면서 도우미를 고용하는 건 필수적인 일이지만 아무래도 이 나이에 사람을 고용하는 일이 익숙할 리가. 게다가 우리보다 한 세대 위인 어른과 고용주-피고용자 관계를 맺는 게 쉽지 않다. 특히 아내는 성격 상 더욱 어려워했다. 원래도 남 시키는 게 불편해서 스스로 하는 사람이었으니. 그렇지만 앞으로의 긴 육아를 위해서는 사람 쓰는 거에 익숙해져야 한다고 아내에게 계속 얘기했다.
다행히 우리 집에 오신 도우미 아주머니는 좋은 분이었다. 아주 따뜻하거나 차갑지도 않은 미지근한 모습으로 필요한 것들은 해주시는 스타일. 우리와 같은 아파트에 거주해서 근무환경도 서로 좋고. 집안일과 아기 돌보기 이것저것 2주 간 충분한 도움을 받았다. 퇴근하고 집에 가면 아주머니와 아내가 같이 짠짠이를 보고 있고 저녁은 이미 차려져 있는 아름다운 모습.
아내와 조리원에서 초기 육아 계획을 세우면서 대략 50일까지는 도움의 손길을 구하자고 합의했다. 20일쯤 집에 들어오면 2주는 도우미 아주머니가 채워주고 나머지 2주는 장모님께서 도와주시기로. 많은 사람들이 선택하는 코스지만 전혀 고민이 없었던 건 아니다. 도우미 아주머니를 고용하는 것에 대한 고민은 앞서 언급했고, 장모님께 도움 요청하는 것도 꽤 고민이 있었다.
첫째는 연세가 있으신 장모님에게 이런 고생을 시켜도 되는 것인가. 아내는 삼 남매를 키우신 엄마에게 이제는 손주까지 봐달라고 하기가 영 미안하다고. 우리 세대에 맞벌이가 대세가 되면서 부모님 세대가 황혼 육아로 힘들어한다는 뉴스도 본 것 같고. 다른 누구보다도 당연히 친정엄마가 도와주는 것이 가장 좋지만 마음에 부담이 되더란다.
둘째는 친정엄마, 장모님과의 공동 육아에서 갈등이 있지 않을까. 부모님 세대와 우리 세대는 아이 키우는 방식이 아주 많이 다르다. 엄마의 오랜 경험이 도움이 될 때도 있지만 지금 시대에 맞지 않을 수도 있고 옳고 그름이 아닌 방식의 차이로 인해 갈등이 생길 수도 있다. 온전히 선의로 같이 고생하며 도와주시는 엄마에게 원망 섞인 소리를 하진 않을까, 차라리 불편한 고용주-피고용자 관계가 낫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주변의 사례를 들어봐도 친정엄마와의 공동 육아에 대한 의견이 갈렸다. 그리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갈등이 아예 없는 경우는 없었다.
사람이 참 간사하게도, 첫째 이유보다는 둘째 이유가 더 크게 다가왔다. 부모님이 힘드실까 보다는 내 자식 키우는 데 힘들거나 불편할까가 더 신경 쓰인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친정엄마, 장모님의 도움이 가장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이런 고민을 하는 걸 보면, 자식이란 게 이렇구나 싶기도 하다. 이렇듯 부모님께 도움을 구하는 것도 고민이고 그걸로 고민한다는 것도 뭔가 마음이 편치 않고. 하지만 현실적으로 가장 최선이었기에 결국은 부탁드리기로 했다. 다행히도 장모님은 첫 손주에 대한 애정과 열정이 넘치셔서 선뜻 도와주시기로 했다. 그리고 우려했던 것에 비해 별다른 갈등 없이 도움만 잔뜩 받았다. 다행스럽고 감사한 일.
조리원, 도우미 아주머니, 장모님의 구호로 짠짠이는 50일이 다 되어갔고 이제 슬슬 독립할 때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야말로 온전히 셋이서 사는 생활, 아내와 나 둘이서 짠짠이를 키우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