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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치레몬 Jun 17. 2021

녹색 어머니회와 어머니 폴리스

다시 적게 되는 워킹맘의 소외감


큰아이 딸기가 지금 중학교 2학년, 15살. 90일간의 출산 휴가와 둘째 랑이 임신 때 열 달의 퇴사 기간을 제외하면 단 하루의 육아 휴직도 없이 풀타임 직장맘 생활을 이어 왔다. 그간 숱하게 겪었던 직장맘으로서의 말 못 할 고충이나 애로 사항을 이제 와서 구구절절 늘어놓고 싶지는 않다.



굳이 워킹맘이 아니더라도 어른으로 사는 건 대부분 힘들다. 전업맘도, 워킹대디도, 어떤 사람에게도 매일 똑같은 하루가 주어진다. 하루하루는 하나의 실처럼 길게 연결되며, 우리는 일단 각자의 시간을 살아내야 한다. 각자의 긴 날들이 핑크빛으로만 채워질 수 없다는 것은 아마 아이들도 알고 있을 것이다.






오랜 직장맘의 경험으로 이제는 어지간한 일에는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늘 그렇듯 예상대로 되는 일은 없다. 이 글을 쓰게 된 이유와도 같다. 결국은 워킹맘의 고단함에 대해 또 적게 될 것 같다.



    


학기 초, 둘째 랑이 학급의 학부모 단체 채팅방이 개설되었고, 언제나처럼 녹색어머니회와 어머니 폴리스 일정이 공유되었다. 차례는 하필 직장에서 매주 회의가 있는 요일이었다. 아직 기간이 많이 남았지만 나중에 바꿀까 싶던 참에 어머니가 날짜 변경을 문의하셨다. 바꾸면 좋을 같아서 교체하기로 하였다.



7월 초가 어머니회 활동 기간이라 미리 달력에 적어 두었다. 날짜가 점점 다가오면서 각종 업무와 약속은 어머니회를 감안하여 일정을 조정하면서 당일에는 연차를 쓸 계획이었다.



며칠 전, 약간의 변경이 있다며 단톡방에 수정된 녹색어머니회와 어머니 폴리스 일정이 새롭게 공유되었다. 보다가 두 눈을 의심했는데, 어머회는 월요일, 폴리스는 화요일, 각각 다른 요일에 배정된 것이 아닌가. 두 활동이 다른 날로 배정된 엄마는 나 외에도 여럿이었고, 한 활동을 2회나 참여하도록 짜인 분들도 있었다.



어떤 분이 질문을 해서 담임선생님께 사유를 확인해 보니, 숫자가 정확하게 떨어지지 않아 어쩔 수 없는 상황임을 너그럽게 양해해 달라는 답변이 공유되었다.



별 수 없이 단톡방에 톡을 올렸다. '안녕하세요, 랑이 엄마입니다. 이틀 연차를 내기가 어려워 하루 변경했으면 하는데 가능하신 분 계실까요?' 고맙게도 바꿔주시겠다는 분이 한 분 계셨는데, 그분의 날짜는 바로 매주 직장의 '주간 회의'가 있는 요일이었다.



이후에는 다른 답변을 듣지 못한 채로 그대로 시간이 흐르고 있다. 녹색어머니회를 위해 하루 연차까지 쓰려는 원대한 계획은 이미 김이 샜을뿐더러, 어쩐지 힘이 빠지고 하루 종일 기분이 좋지 않았다.






학부모가 된 이후로 어떻게 해서든 학교에서 아이의 엄마에게 주어진 역할을 해내려 노력했다. 딸기가 반장일 때는 휴가를 내고 소풍에 따라갔고, 녹색 어머니도 휴가를 써서 참석하거나 남편이 가기도 했다.



직장맘이라고 녹색을 빠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회사를 다니든 그렇지 않든 다들 분주하고 바쁘기는 매한가지일 테니. 다만 왜 허탈한 기분이 드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굳이 표현하자면 아마도 '소수에 속하는 이유로 배려받지 못하는 소외감'이 아닐까 싶었다.



내가 어떻게 해서든 학부모 역할을 하려고 노력하는 반면, 학교는 한 학부모의 사정을 봐주지 않는다. 당연하지만 어떤 단체나 사회에서 소수집단이나 일개 개인의 상황을 하나하나 다 받아들일 수는 없다.



이론적으로는 상황을 이해할 수 있지만, 하루도 아닌 이틀간 연차를 내야 학부모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참석을 못하게 되면 다른 엄마들에게 폐를 끼치는 셈이라는 점도 염려가 된다. 



그렇다고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이틀 내내 휴가를 낼 수는 없다. 직장이 연차 사용이 어려운 분위기는 아니지만, 팀장이라는 직책을 맡고 있어 이틀 연속 연차를 쓰는 것은 상당히 무리가 있다. 나보다 더한 환경에서 일하는 남편 (=연차가 없음) 또한 업무일에 자리를 비울 수가 없다.






20년 넘게 일했던 업계를 떠나신 전 직장 상사와의 통화 내용이 떠오른다. 임원으로 퇴직하신 그분은 회사일 때문에 아이들 학교 졸업식에 참석하지 못하셨다고 했다. 그게 두고두고 아쉬웠는데, 이제 아이들에게 좀 더 신경 쓰며 살고 싶다고 하셨다.



생각해 보면 나도 학창 시절 졸업식 때 아빠가 오신 적이 없다. 아빠는 늘 바쁘신 시즌이었고 부모의 자리에는 엄마가 계셨다. 그 시절에 아빠의 불참이 서운하거나 이상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30년이 지났다. 아빠와 마찬가지로 나는 아직까지 열심히 일을 하고 있다. 그런데 아빠가 아닌 엄마여서 그런지 아이의 학교 행사에 빠지는 것이 스스로도 당연하다고 여기지는 못한다. (녹색어머니와 졸업식은 빈도와 중요도가 매우 다른 이벤트지만) 아이들 졸업식에 무조건 참석한다고 장담할 수 없는 것은 해가 가고 연차가 높아질수록 더할 것 같다.



하루하루 날짜는 다가오는데, 단톡방에 다시 물어본다고 요일을 바꿔줄 수 있는 랑이 반 친구 엄마가 갑자기 나타나지는 않을 것이다이 상황이 너무 답답하고, 무엇보다 다른 엄마들께 미안하지만 이번에는 어쩔 수 없이 하루만 참석할 수 있다는 얘기를 해야할 것이다.



그때까지 뭔가 체한 것 같은 느낌으로 지내게 될 것 같다. 이 불편한 감정이 싫다.



https://brunch.co.kr/@richlemon/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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