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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님 Jul 03. 2023

2023.7.3

230703 #일일일그림


“진짜 잘 챙길 수 있지?” 설거지하는 남편의 등에 대고 물었다. 아침에만 벌써 다섯 번째 똑같은 질문이다. 한 달 전,  남편은 아는 형 두 명과 함께 아이들을 데리고 1박2일 캠핑을 다녀오겠다고 했다. 처음부터 어딘가 내키지 않는 제안이었다. 남편은 내게 혼자 있는 시간을 선물해 주겠다고, 하고 싶은 것들을 미리 생각해 두라고 했지만 내 정신은 온통 다른 데 팔려 있었다. 같이 간다는, 나는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그 아저씨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아이들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있을지, 안전하게 놀 수 있을지, 뙤약볕에 선크림은 꼼꼼히 발라줄 것인지, 삼시세끼 라면만 먹이는 건 아닌지, 오가는 길에 사고라도 나는 건 아닌지, 너무 재미있게 다녀와서 엄마보다 아빠가 좋다고 하는 건 아닌지 등등. 약속한 날이 다가올수록 나의 짐작과 예상은 점점 파국으로 치닫고 있었다.


결과부터 얘기하자면 아이들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시간을 보내고 왔다. 뜨거운 한낮엔 마침 개장한 어린이 수영장에서 물장구쳤고, 불멍용 장작을 도맡아 넣었으며, 숯불 향 물씬 나는 고기를 구워 먹고 아침에는 내복 바람으로 캠핑장에서 키우는 개들을 산책시켰다. 그리고 나는 이걸 모두 남편이 실시간으로 보내주는 사진을 보고 알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같이 갔던 형들은 오만 사소한 것까지 찍어대는 남편에게 ‘어디서 사찰 나왔냐?’고 했단다.


내가 과하다 싶을 정도로 걱정이 많다는 걸 진즉 알고 받아들인 남편이지만, 매번 이러는 게 골치 아프고 이해가 안 되기도 할 거다. 그래도 그는 나를 타박하지 않는다. 도대체 왜, 라며 가슴을 치지도 않는다. 사진으로 찍어 보여주고, 목소리를 들려주고 짜증 내지 않는다. 나는 그게 미안하고 겸연쩍으면서도 늘 좋았다. 그가 보내주는 사진들을 보면서 씩 한번 웃고 가벼운 마음으로 시선을 돌릴 수 있었다.


일주일 후 둘째 아이가 성당 캠프를 가는 날이었다. 9시 집합 시간에 맞추기 위해 분주한 토요일 아침, 남편은 속을 꽉꽉 채우다 못해 밥알이 번져 나오는 유부초밥을 열 개 넘게 빚었다. 그 많은 걸 다 먹고 집을 나섰다는 소식을 들은 나는 대번에 걱정이 밀려왔다. 적당히 먹이지, 가다 멀미하면 어떡해. 몇 분 후 남편의 문자가 도착했다. 담담하고 담백한 투였다. [괜찮아요. 멀미도 여행의 한 부분이죠] 손가락으로 꾹 눌러 마음에 자국을 남기는 듯한 문장이었다. 걱정이 많으면 어때, 걱정도 삶의 한 부분이지. 괜찮다. 다 괜찮다.





#1일1그림

#목표는목표일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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