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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마도난 Jul 01. 2024

그리움과 함께 사는 법

원제 : I’ll see you in my Dreams

14년을 함께한 늙고 병든 반려견 헤이즐을 안락사시킨 후 캐럴(블라이드 대너 扮)은 상실감에 마음이 뒤숭숭했다. 오랜 친구들과 함께 동네 영감들과 즉석 만남도 시도해 보지만 맘에 드는 사람을 찾을 수 없었다. 집에 딸린 수영장을 청소하러 오는 로이드(마틴 스타 분)를 말벗으로 삼고 싶었지만 아들뻘 되는 젊은이랑 어울린다고 소문날 것이 부담스러웠다. 그러던 참에 오랜 떠돌이 생활을 끝내고 캘리포니아 해변의 고급 실버타운에서 살며 ‘So What (그래서 어쩌라고)’이라고 이름을 붙인 요트를 타며 자유인으로 늙어가는 멋쟁이 영감 빌 영(샘 엘리엇 扮)을 만난다.


캐럴은 적극적인 빌과 몇 차례 데이트를 하다 20년 전 사고로 죽은 남편과 이름은 같고 성격은 딴판인 그에게 끌린다. 어쩌면 캐럴은 ‘은퇴한 사람들은 기껏 모은 돈을 쓸 줄을 몰라요. 멍하니 앉아서 TV나 보고 골프나 치죠. 싸구려 저녁을 사 먹고 영화관이나 카지노에 가고요. 그렇게 살긴 싫었어요. 난 사람이 좋아요. 혼자 있는 걸 싫어하죠. 하지만 이것도 좋아요. 한적한 곳에 나와 고요함을 즐기는 거예요.’라고 말하는 빌에게 매료되었는지도 모른다.


혹은 반려견을 잃은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캐럴에게 ‘떠나보내는 건 힘들어요. 사람이든 짐승이든. 큰 구멍을 남기니까. 아내는 날 떠났소. 그리고 죽었죠. 더 나빴을 수도 있어요. 나였을 수도 있으니…. 당신이 좋아지는 것 같아요. 그래요. 당신은 괜찮은 사람이에요.’라고 말하는 빌에게 끌렸는지도 모른다. 마침내 캐럴은 남편과 사별한 지 20여 년만에 처음으로 이성에게 빠져든다.

빌과 불꽃같은 사랑을 나누며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다고 믿었던 캐럴은 인생이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빌이 심장마비로 갑자기 사망한 것이다. 이미 사랑하는 이를 잃어봤고 반려견과도 이별해 본 캐럴은 ‘해야만 할 것 같은 일들에 얽매이지 않을 때 이 순간을 살 수 있어.’라며 빌을 잃은 슬픔을 이겨내려고 한다. 이미 ‘상실’에 익숙해져 있기에 감정의 흔들림을 훌훌 털어내고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려고 한다. 수영장 청소부이면서 싱어송라이터인 로이드가 불러주는 신곡 「I’ll see you in my Dreams」을 들으며 그를 떠나보내고, 유기견 보호소에 들러 자신과 여생을 함께 할 12살 강아지를 입양한다. 익숙했던 자기의 원래 삶으로 돌아간 것이다.


영화에서 블레이드 대럴을 처음 마주하는 순간 낯설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알고보니 기네스 펠트로의 친어머니란다. 모전여전이랄까? 딸보다 더 예쁘고, 연기도 뛰어난 것 같았다. 그러면서 캐럴이 만난 두 남자, 젊은이와 동년배의 남자 가운데 동년배의 남자와 사랑에 빠지는 장면에 나를 슬쩍 끼워넣어 보았다. 내게 젊은 여자인 기네스 펠트로와 동년배 여자인 블레이드 대럴이 다가온다면 누구를 택할까? 육체는 나이가 들었지만 마음은 청춘이라며 젊은 여자를 택할까? 아니면 세월에 순응하며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동년배 여자를 택할까?


수컷 본능과 갈등하면서 영화의 주제가를 입속으로 되씹었다. ‘~ I’ll see you, I’ll see you. I’ll see you in my Dreams, Dreams, Dreams.’ 캐럴이 빌을 택했듯 나도 블레이드 대럴을 택하는 게 옳겠지? 나이가 들어가면서 필연적으로 만나게 될 상실을 담담하게 이겨내는 노년의 삶을 멋지게 그려낸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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