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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by 아마도난

페르시아어를 배우려는 독일군 장교 코흐와 유대인 수용소에서 살아남기 위해 페르시아인이라고 거짓말을 한 질. 질은 코흐에게 페르시아어를 가르치기 위해 수용된 유대인의 이름을 교묘하게 짜 맞추어 매일 페르시아 단어를 만든다. 전쟁이 끝나고 연합군 조사관은 구조된 질에게 수용소에 있던 사람들 가운데 기억나는 이름을 알려달라고 요청한다. 질은 잠시 조사관을 바라보다 2,840명의 이름을 천천히 불러준다. 영화 「페르시아어 수업(Persian Lessons)」의 줄거리다.


베를린의 브란덴부르크 문에서 걸어서 10분쯤 되는 곳에 커다란 사각형 콘크리트가 질서 정연하게 놓여 숲을 이루고 있는 곳이 있다. 콘크리트는 다양한 방법으로 놓여 있다. 가로로, 세로로 어떤 것은 눕혀져 있기도 하고 세워져 있기도 했다. 어떻게 놓여 있든 일렬로 줄지어 있는 모습이 아름답기까지 했다. 콘크리트 숲의 지하에는 홀로코스트 기념관이 있다. 나치에 의해 학살된 유대인들을 추모하기 위해 만든 곳이다. 이 콘크리트 숲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지만, 웃음소리는커녕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기념관에 들기 전에 잠시 콘크리트 사이를 걸었다. 단단한 콘크리트 사이를 걷는 줄로만 알았는데 까닭 없이 가슴이 먹먹하고 머리는 텅 비워지는 것 같았다. 짧은 시간 동안 사람과 삶을 생각했던 모양이다. 기념관의 여러 방 가운데 Room of Names가 있다. 나치에게 학살된 유대인 600만 명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주는 방이다. 커다란 방의 네 면에는 희생된 사람들의 이름이 나타나고 스피커에서는 낮고 느린 음성으로 그 이름을 읽어준다. 이름을 모두 읽으려면 6년 7개월 하고도 27일이 걸린다고 한다.


나치에게 희생된 사람의 이름은 체코 프라하에서도 볼 수 있었다. 유대인들의 예배당인 핀카소바 시나고그에서였다. 나치에 의해 테레진 등 24곳의 수용소에 감금되었다가 희생된 체코 유대인은 77,297명. 그들은 대부분 생체실험실로 보내져 마루타로 죽어갔거나 사형당했다고 한다. 그들의 이름은 핀카소바 시나고그 내부의 벽에 유대 알파벳 순서로 적혀 있다. 깨알 같은 크기로 벽을 가득 채운 유대인 이름들. 처음 보았을 때는 아름다운 벽지를 붙여놓은 줄로 알았다.

프라하의 스페인 시나고그 앞에는 프란츠 카프카의 동상이 있다. 유대계 체코인 작가인 프란츠 카프카의 유해는 겹겹이 쌓인 시나고그 공동묘지에 묻혀 찾을 수 없다고 한다. 그래도 ‘카프카’라는 이름이라도 남겼으니 다행이다. 대다수 유대인은 이름조차 변변히 남기지 못했으니까.


사람이 태어나서 처음 소유하는 것이 이름이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자신의 이름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이름과 자신을 동일시하기도 한다. 그래서 자신과 이름이 같거나 비슷한 사람을 만나면 반갑고 친근함을 느끼는지도 모른다. 이름을 처음 지을 때는 소망이 담기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사람의 삶도 담기기 시작한다. 이름은 사람이 갖게 되는 첫 번째 소유물이고, 그를 기억하게 하는 마지막 기록물인 셈이다.


내 이름도 많은 사람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길 수 있을까? 그보다는 내 이름을 많은 사람이 기억하게 하고 싶다면 지나친 욕심일까? 그런 소망을 꿈꾸며 장민호의 노래 「내 이름 아시죠」를 흥얼거렸다. ‘…내 이름 아시죠 한 글자 한 글자 지어주신 이름 / 내 이름 아시죠. 가시다가 외로울 때 불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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