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miely Dec 30. 2020

8. 볼레 바깔라우 까우

현지 언어 익히기


 말레이시아에서 처음에는 사바 주에서 살았고, 지금은 쿠알라룸푸르에서 산다. 말레이시아의 주마다, 지역마다, 같은 말레이어라도 억양이나 쓰는 단어가 매우 다르다. 그래서 쿠알라룸푸르로 생활권을 옮긴 뒤 반도의 말레이어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처음에 말레이시아로 이주하기 전에, 말레이어를 하나도 모르는 상태였다. 여행 다녀온 후 말레이시아로의 이주를 결심하고서, 서점에 가서 말레이어를 배우기 위한 책을 샀다. 처음에 인도네시아어 책을 잘못(?) 구매했다. 물론 말레이시아어와 인도네시아어의 경우 서로 통하고 이해할 수 있어 ‘마인어’로 통칭할 때도 있으나, 세부적으로 쓰이는 단어와 억양이 꽤 다르다. 여전히 내 말레이어에는 인도네시아 억양이 남아 있다. 이후 말레이어만을 담은 책을 새로 구매했고, 시간 날 때마다 듣고 공부했다. 회사 퇴사하기 전에도 점심시간에 언어 공부를 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름대로 준비에 열심이었던 듯하다. 이후 말레이시아 사바 주의 코타키나발루로 이주하면서, 사바의 억양이 담긴 생활 말레이어를 익히게 되었다.





 처음에는 ‘좋은 아침’과 ‘잘 자’에 해당하는 짧은 단어를 말하는 것도 헷갈리던 내가, 현지에 살면서 점점 말레이어를 배우고 사용하는 것을 더 즐기게 되었다. 어설픈 한국식 말레이어를 시전 하던 나는 어느새 로컬들로부터 로컬이냐는 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사바 주의 여러 민족 중 하나인, 두순이 아니냐, 아니면 말레이시아 차이니스겠지. 라고들 생각해서, 시장에서 물건을 사거나 할 때 한국인인 것을 우연히 들키게(?) 되면 다들 놀라곤 했다.

 

  현지에서 ‘잘 지냈니’에 해당하는 ‘아빠 까바ㄹ’, ‘밥 먹었니’에 해당하는 ‘수다 마깐?’ 이라는 말이 모국어처럼 들릴 즈음이었다. 사바에서 유난히 많이 쓰이고, 때로는 농담으로도 쓰이는 말이 있다. ‘볼레 바 깔라우 까우’가 그것이다. ‘볼레’는 ‘물론, 가능하다’라는 뜻으로, 말레이시아에서 인사말 못지않게 흔히 들리는 말이다. ‘바’는 사바에서 말끝에 붙는 지역만의 추임새라고 보면 되며, ‘깔라우 까우’는 ‘만약 너라면’이라는 뜻으로, ‘당신이라면 물론 가능하지’가 된다. 코타키나발루에서 살면서 ‘볼레’를 하루에 몇 번 듣는지 셀 수 없을 정도였다. 어떤 제안을 했을 때나, 대화하면서, 사람들은 상대방과 대화할 때 열린 마음으로 듣고, 정을 기반으로 상대방을 도와준다. 한국보다 느슨하다고 해야 할까? 한국에서는 안 된다고 누군가는 단칼에 자를 수도 있는 내용이 ‘된다’가 되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예로 사바 주 식당에서 친구들과 저녁 콧바람을 쐬며 식사를 하기로 했던 적이 있었다. 당연히 1인 1  메뉴를 시켜야 하는 게 식당 방침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친구 한 명이 낮에 사서 싸 놓은 음식이 아직 남았다고 했다.  친구가 가게 주인분께 여쭤봤더니 흔쾌히 ‘볼레 바깔라우 까우’라는 대답이 왔다. 놀란 표정은 나만의 것이었다. ‘된다’라는 긍정형의 단어가 ‘안 된다’라는 부정형보다 많이 쓰인다는 건, 그만큼 사람들이 열려 있다는 것이 아닐까.

 

  물론 많은 것을 허용해준다는 것이 꼭 좋다는 것만은 아니다. 거절할 땐 해야 하고,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게 맞다. 그러나 일상적인 대화에서 상대를 허용하고 소통한다는 느낌에서, 자주 쓰는 언어에서부터 그런 느낌이 묻어난다고 생각한다. 이런 허용되는 느낌과 편안함은, 사바 주가 완전히 번화한 대도시들이 밀집한 주가 아니어서, 좀 더 시골의 정 같은 게 묻어나기 때문에 생긴 것이기도 할 것이다. 언어에서부터 느껴지는 여유는 내가 마음의 방어막을 한 겹 벗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


이전 05화 7. 내가 게을러진 건 날씨 탓일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