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홋카이도(북해도) 여행기(2) - 하코다테
신치토세를 떠나는 기차는 밤과 눈, 흑과 백만이 존재하는 길을 따라 움직였다. 휘몰아치지 않고 살며시 내려앉는 눈들과 밤하늘과 바다는 꿈길과 같았다.
신치토세 역에서 하코다테 역으로 가는 기차는 4시간이 넘는 여정이었다. B군은 비행과 갑작스러운 노곤함에 잠들었고 나는 시작된 여행의 여운을 좀 더 가져가고 싶어서 낡은 태블릿PC로 영화 '러브레터'를 보았다. 수많은 정보들을 수집해왔다고 생각했지만, 머릿 속에 맴도는 것은 혁오의 공드리, 이와이 슌지의 러브레터, 삿포로 맥주였기 때문일까. 삿포로 클래식 맥주 한잔 속에 고요한 밤기차 속에서 집중하여 러브레터를 시청했다. 밤과 눈, 차창에 비친 남자의 모습과 러브레터가 교차되고 기차는 내리는 눈과 함께 묵묵히 길을 갔다.
도서카드 속 소녀의 그림이 나올때쯤 열차는 도착했다.
저녁 7시의 하코다테는 분주한듯 고요했다. 이 곳의 사람들은 늦은 퇴근을 서둘렀고, 어둠이 도시에 내려앉기 시작했다. 일상과 밤 속에 우리만이 풍요로운 설렘이었다. 탄성과 카메라 셔터소리로 대화를 나눴을 뿐이었다. 숙소로 걸어가는 내내 카메라에서 손을 놓지 않았고 입김도 감성을 북돋아주는 그날의 공기였다. 누군가들의 일상을 우리는 개척자처럼 거닐었다. 도착한 숙소의 비좁은 방마저도 그토록 보고 싶었던 설국의 감성이라며 행복해했다. 짐을 놓고 내려가 우리는 어딘가에서 봤던 것처럼 따뜻한 정종에 식사를 하자며 찾아 나섰다. 하지만 오후 4시경이면 해가 저물고 금새 어두워지는 겨울의 홋카이도는 우리에게 쉽게 길을 내어주지 않았다. 가난한 여행객인 우리에게 이자카야의 물가는 턱없이 높았고 평소처럼 눈이 오는 하코다테에서 우리는 방황했다. 하루를 마감한 상가들 사이로 내려앉는 눈들의 무게가 무거워질때쯤, 외로이 따뜻하게 켜져있는 한 가게로 향했다. 우연하게도 지역에서 유명했던 프랜차이즈 식당이었고, 그렇게 우리는 첫 북해도의 식사는 스시, 우동, 라멘이 아닌 버거였다.
우연치 않게 찾아온 이곳의 맛과 하코다테의 첫 밤은 왠지 모를 기분 좋은 예감으로 눈이 감겨왔다.
내일의 꿈과 같은 하루를 기다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