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고양이처럼 늙고 싶다.
집고양이의 기대수명은 평균 13년~15년이라고 한다.
하지만 사람도 백세시대가 왔듯 고양이도 아주 건강하게 잘 자랄 경우 20년까지도 살 수 있다고. 나는 하리와 하루가 15살까지는 당연하고, 어쩌면 20년까지도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리하루와 함께 살기 시작한지 5년 6개월이 지났다. 그동안 하리와 하루는 거의 병원에 갈 일이 없이 건강했고, 엄마의 항암도 무사히 끝 난지 몇 해가 흘렀다. 촬영을 마친 드라마는 편성을 받지 못해 표류중이라 그걸로 내 인생이 드라마틱하게 변하지는 않았다. 다시 적당히 행복하고 적당히 불행한 미온적인 내 인생으로 돌아왔다. 달라진 점이라면 미온한 인생이 사실은 가장 행복한 인생이구나 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사실이다. 평범하고 평온한 하루하루에 감사한 나날.
“엄마, 사람도 고양이처럼 늙으면 얼마나 좋을까?”
“왜?”
“사람은 노인이 될수록 모습이 변하는데 하리를 봐봐. 12살이 넘었는데 모습이 그대로잖아. 사람도 스무 살 모습에서 멈춰서 나이만 먹다가 그 모습 그대로 죽었으면 좋겠다. 고양이처럼.”
“그러네. 나도 하리처럼 늙었으면 좋겠네.”
엄마는 항암을 하느라 아기처럼 얇아진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하리는 부드럽고 풍성한 털을 세심히 그루밍을 하는 중이었다. 어쩌면 저렇게 변함없이 예쁠 수 있을까. 시간이 멈춰버린 것처럼. 영원히 늙지 않을 것처럼.
2020년, 크리스마스이브 밤.
하리가 난데없이 코피를 터트렸다. 아무런 전조증상 없이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에 나는 허둥지둥했다. 고양이나 강아지도 사람처럼 코피를 흘릴 수 있나? 다급한 마음으로 인터넷을 켜 고양이카페에 ‘고양이 코피’로 검색을 하니 하나 같이 응급상황이라고 했다. 그 길로 바로 택시를 타고 24시간 동물병원으로 달려갔다. 병원에선 기본적인 각종 검사부터 시작해 CT까지 권했다. 처음으로 벌어진 응급상황에 병원에서 권유하는 검사들을 거부할 수 있는 선택지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저 고개만 끄덕끄덕. 인생 최악의 크리스마스 밤이 밝아오고 있었다.
하리가 코피를 터트린 이유는 만성비염 때문이었다.
병원에서 강조했던 종양이 아님에 심장을 쓸어내리고 있는데, 문제는 코가 아니라 귀라는 말이 나왔다. 하리가 중이염에 걸린 상태라는 것이다. 의사는 하리의 왼쪽 귀를 다 적출해 내는 수술을 권유했다.
“고양이에게 고통이 따르는 수술이고, 후유증도 크지만, 이후에 생길 문제를 가장 깔끔하게 없앨 수 있는 수술입니다. 하시고 나면 보호자님들도 다 좋아하세요. 금액은...”
의사의 말이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한쪽 귀가 없는 하리, 수술 후 고통스러워하는 모습만 떠올랐다. 고양이의 기대수명… 13살에서 15살. 어느샌가 당연히 20살까지 살 수 있을 거란 생각은 사라지고 하리의 남은 생이 얼마나 될까를 생각했다. 그 남은 시간 동안 한쪽 귀가 없는 채로 살아야 할까. 이렇게 멀쩡해 보이는데. 이렇게 아기 때와 똑같은 모습인데….
하리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택시 안.
코로나가 덮친 거리에는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없다. 캐럴도 들리지 않고 반짝이는 조명도 없다. 까만 밤의 허전한 거리만 존재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