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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세미 Nov 01. 2021

편도티켓의 여행

7. 마지막 엄마

한 달은 금방 지나갔다. 그동안 고양이들은 알아서 먹고, 알아서 싸고, 알아서 잤다. 고양이는 강아지와 다르게 산책을 하지도 않는데다 스스로 세수와 샤워까지 할 줄 알아서 항상 뽀송뽀송한 냄새가 났다. 거의 대부분의 시간에 잠을 잤기 때문에 사고를 치거나 시끄럽게 우는 일도 없었다. 그동안 내가 한 일이라고는 아침저녁으로 밥그릇에 사료를 채워주고 하루 한 번 모래가 깔린 고양이 화장실에 딱딱하게 굳어있는 소변과 대변을 치워준 것뿐이었다. 조용하고 깨끗하고 스스로 알아서 살아가는 생명체다. 고양이는 손이 많이 가지 않는 구나….


책상 위 키보드 바로 위에 누워 잠들어있는 하루의 얼굴을 본다. 처음 온 날 겁을 먹고 케이지 밖으로 나오지도 못했던 하루는 고작 열흘 만에 책상 위로 올라와 친한 척을 하며 애교를 부리더니 한시도 내 곁을 떠나지 않는 껌딱지가 되었다. 동그랗고 빵실한 얼굴, 녹색의 눈동자, 짙은 갈색에 검정 줄무늬털, 보라색 발바닥, 가장 귀여운 부분은 입주변의 동그란 하얀 털. 눈 맞춤을 좋아하고 엉덩이를 팡팡 쳐주면 골골대며 신기한 진동음을 낸다. 고양이가 이렇게 귀여운 동물이었나?


그러는 동안 하리는 한 번도 책상위로 올라오지 않았다. 하루처럼 나를 쫓아다니지도 않았다. 언제나 그림자처럼 조용히 뒤에 있을 뿐이었다. 동생에게 물어보니 “하리는 그동안 주인이 바뀐 경험이 여러 번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했다. 주인이 여러 번 바뀐 경험. 그건 어떤 기분일까? 문득 엄마가 여러 번 바뀐 아이의 기분을 상상해봤다. 사랑하면 떠난다. 혹은 사랑하고 싶었는데 사라졌다. 앞으로 사랑 따위 하지 말아야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걸까? 물론 고양이가 사람처럼 생각할 순 없겠지만 마음이라는 건, 감정이라는 건 본능적인 거 아닐까? 하루는 귀엽고, 하리는 안타깝다. 그리고 무엇보다 뭐든 스스로 알아서 잘 하는 생명체니까.


“내가 계속 키울게. 또 다른 집에 보내는 건 내키지가 않아.”

동생에게 나의 결심을 전했다.

“그럴 줄 알았어.”

“정말? 왜?”

“요즘 언니가 더 행복해 보였거든. 사랑에 빠진 것처럼.”


동생은 내가 요즘 틈만 나면 하리와 하루 얘기만 하고, 평소보다 작업실에 일찍 나갔다가 집에 늦게 들어오는데다 뭔가 들떠 있는 것처럼 보였다고 말했다. 내가 그랬나? 나는 일상 속의 내 얼굴을 볼 수 없다. 들떠 있는 표정이란 건 어떤 거지? 화장실로 달려가 거울을 봤다. 평소의 얼굴 그대로다. 딱히 웃고 있지도 찡그리고 있지도 않음 무덤덤한 표정. 그때 거울 속으로 쏙 하루의 얼굴이 나타났다. 열린 화장실 문 뒤 책상위에 앉아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루야.” 이름을 부르며 거울에 비친 하루와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그 순간 알 수 있었다. 들떠 있는 나의 표정이 어떤 건지. 그 표정이 마음에 들어 사진으로 찍어 간직하고 싶었다.




12월 중순.

작업실 창밖으로 싸라기눈이 내리고 있었다. 예쁘게 펑펑 쏟아지는 함박눈은 아니지만 나름의 정취가 있는 눈이다. 겨울에만 볼 수 있으니 떨어질 때 마음껏 봐두어야 한다. 하루와 하리도 작업실 창가 턱에 앉아 싸라기눈을 바라보고 있다. 나란히 앉아있는 뒷모습이 꼭 닮아 웃음이 나왔다. 살며시 다가가 하리 옆에 서서 나도 창밖의 싸라기눈을 바라보았다. 나도 너희와 뒷모습이 닮아질 수 있을까? 우린 이제 가족이잖아. 조용히 내리는 눈처럼 하리에게 약속해본다.


“첫째 엄마는 될 수 없었지만, 너의 마지막 엄마가 되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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