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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어라 Mar 28. 2024

관람등급 13세의 즉흥 로맨스 소나타

요즘 우리 반 6학년 아이들은 국어 시간에 이야기의 구조에 대해 배우고 있다. 오늘은 발단, 전개, 절정, 결말을 배우고 주어진 이야기를 구조에 맞게 요약해야한다. 요즘 초등아이들은 책을 많이 읽지 않고, 읽더라도 분석하며 읽지 않기에 이야기의 구조를 파악하고 요약하는 활동은  가르치는 것도 어렵고, 아이들도 이해하기  힘들어한다. 아이들이 쉽게 이해하면서도 흥미를 끌 수 있게 쉬운 이야기를 예를 들어 설명하고 싶었다. 마침 우리반 선남선녀가 앞자리에 앉았길래 두 아이의 허락하에 구고 둘을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를 즉석에서 만들어 들려주었다.



"자, 여기 순이하고 돌이가 있는데, 순이가 돌이가 마음에 들어. 그래서 자꾸 쳐다도보고, 준비물도 빌려주고 말도 거네? 둘이 썸이 막 시작되는거야. 이게 발단이야.


그래서 순이가 결심하고 용감하게 돌이한테 고백을 해. 나, 너, 좋아한다, 사귀자! 그래가지고 돌이도 좋다고 받아들여. 둘이  사귀게 된거지. 사랑이 좌악 펼쳐지는거야, 이런 걸 전개.


그런데 둘이 그냥 사귀기만 하면 심심하지? 로맨스에는 뭐가 있다? 뭐 바람? 아니, 항상 위기가 있다.


알고보니 돌이한테 이미 여친이 있었던거야!! 어머!!!(여기저기서 탄식 소리가 터졌다!)

옆자리 영이가 그러는데, 글쎄 돌이가 다른 여자애하고 데이트하는 걸 목격했다는거야!! 그래서 어떻게 됐겠어?당연히 영이가 순이한테 얘기해줬겠지? 반 여자애들이 이 사실을 순이한테 얘기하고 다같이 돌이한테 쳐들어가. 자, 이제 어떻게 될까? 큰일났지? 이 커플은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이렇게 위기가 아주 극에 달하는게 절정이라그래. 긴장되고 집중이 되지. 이걸 잘 풀어내야 결말인거야.


과연 돌이는 나쁜남자, 바람돌이였던걸까? 순이의 사랑은 어찌되는걸까?

(거짓말 않고 진짜 여기서 우리 반 절반은 숨을 죽였다.)

이걸 해결해야 결말이 훌륭한 이야기야. 여기서 대충 끝내버리면 아주 시시하고 감동없는 이야기가 되고, 그럴듯하게 밝혀야 사람들이 좋아하는 명작이 되는거지. 그래서 과연 이 이야기의 끝은?


알고보니 돌이가 쌍둥이였던거지. 아이들이 목격한 커플은 바로 쌍둥이 형과 여친이었어.이렇게 오해는 풀어지고 돌이는 순이만 좋아한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결국 둘이는 알콩달콩 잘 살았다더라...이게 결말."


지루한 국어 시간에 난데없이 등장한 대하순정청춘로맨스물에 아이들은 열광했다. 둘의 로맨스 이야기에 혹 빠져 듣던 우리 반 아이들이 마지막 반전과 결말을 듣자 감탄하며 박수를 쳤다. 아, 귀여운 열세 살 아가들을 어쩌면 좋을꼬.


아무튼 무성영화 시대 변사 저리가라할 솜씨로 이야기를 구성지게 뽑아낸 나 스스로도 매우 뿌듯했고 아이들도 즐거워했다. 창의적인(?) 담임의 열정적인(?) 수업이 아닐 수 없다. 설명을 마무리하고 나니, 문득 수업시간에 썰 풀듯이 글쓰기도 이렇게 마구 뽑아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나불대는 입을 느릿한 손가락이 못 따라가니 아쉽기만할 뿐이다. 언제쯤 맛깔난 글을 유창하게 써낼 수 있을까.



증거사진 첨부!!!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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