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피어라 Oct 11. 2024

어느 출근길

휴일 다음 날 아침. 맙소사, 늦잠을 자버렸다. 평소보다 30분은 늦게 일어나버렸다. 씻기만하고 뛰쳐나왔다. 보통 8시 15분 이전에 교실에 앉아있는데 오늘은 30분은 되어야 할 것 같다. 버스 창 밖으로 등교하는 아이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일찍 나와 조용한 학교에서 업무를 시작하는 것도 좋지만 가끔은 이렇게 아이들과 같이 등교하는 것도 즐겁다.


버스에서 내리는데 앞서 내린 여학생이 멈춰서있어 비켜 걸었다. 마중나온 친구와 인사하느라 길을 막고있는 걸 몰랐나보다. 그럴만도하다. 마중나온 아이가 남자친구인걸. 손을 잡지도 못하고 마주 안지도 못하고 바라만 보고 있지만 그 가까운 거리와 숨기지 못하는 미소가 연인사이라는 걸 느끼게 해줬다. 등교길 기다리고 있는 남자아이도 반가워 어쩌지못하는 여자아이도 보기 좋았다.


횡단보도를 건너 학교 앞으로 향하는데 내 앞에 2,3학년 쯤 보이는 두 아이가 걸어가고있었다. 그런데 왼쪽의 키가 살짝 큰 남자아이가 오른쪽 여자아이 어깨에 팔을 두르고 살짝 뺨을 만지작 거린다. 웃으며 이야기하는 저 아이들도 혹시 커플인가? 스킨십이 지나쳐보였다. 걱정스런 마음이 들어 얼른 앞서 걸으며 뒤돌아봤는데 얼굴이 하나도 안 닮았다. 초등교사 오지랖이 발동했다. "어린이, 혹시 둘이 무슨 관계에요?" 낯선 어른이 길다가 물어서 당황할 법도 한데 두 아이는 해맑게 웃으며 나를 보고 말했다. "남매에요, 얘가 오빠고요." 순간 웃음이 터지면서 황급히 변명을 해야했다. "어머, 둘이 무척 사이가 좋구나.!" 했더니 여자아이가 얼굴을 구기면서 소리쳤다."아니에요, 집에서는 하루 종일 싸워요!" 보기좋은 남매라고 칭찬(?) 한 마디 하고 돌아섰다. 씩씩대는 여동생 표정을 생각하니 웃음이 새어나왔다.


"선생니이임!"

운동장에 들어서는데 나를 보고 몇몇 아이들이 뛰어왔다. 작년에 가르쳤던 아이였다. 올해 3학년이 된 꼬맹이가 내게 자그만 비닐봉지를 들이밀었다. 선생님 주려고 가지고 다녔어요. 숨을 고르며 캬라멜코팅된 팝콘이 담긴 꼬깃한 비닐을 건네는 아이를 꼬옥 안아주었다. 그 뒤로 우리 반 여자 아이들 대여섯이 오더니 다짜고짜 9시 종칠때까지 연습하다 들어가면 안되냐고 물었다. 내일 있을 3반과의 피구시합을 위해 아침부터 연습하고 있는 중이었다. 아직 8시 30분 정도인데 벌써 땀이 송글하다. 열심히 하고 들어오라고 말해주고 교실로 향했다.


불을 켜고 창문을 연 다음 자리에 앉았다. 컴퓨터 전원을 켜는데 책상위에 올려둔 팝콘 냄새가 풍겨왔다. 오늘 하루가 달콤하고 고소할 것 같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